자유인으로서, ‘세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인간 노예로 추락시킨 법 마련한 세종이 성군?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 재정립해야

미세먼지 광화문 북한산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려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크투 DB

두 왕 이야기

한 왕이 있었다. 온유한 성품을 지녔다. 형제와의 우애심이 깊었고, 부모에겐 효를 다했다. 백성을 사랑하여 어린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 성리학의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도덕정치를 펼쳤다. 중신을 예우하며 반대 의견을 들을 줄 알았다. 서두르지 않는 온건한 성품으로 자신의 뜻을 펼쳤다.

왕은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 지혜로운 외교 정책으로 백성들에게 평화시대를 선사했다. 당대 신하들과 후대 백성들로부터 성군이라 칭송을 받았다.

또 한 왕이 있었다. 기질과 도덕능력에 따라 상하질서를 만들었다. 신분제가 정착됐다. 노비 신분은 정상 인류로 취급되지 않았다.

노비는 그저 주인의 완전한 재산이었다. 양인과 천민의 혼인이 허락됐고(양천교혼), 그의 소생은 노비 신분으로 자동 세습됐다.

조선 인구의 3분의 1이 노비가 됐다. 이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노비살인이 허용됐고, 부당한 주인을 고발할 법적 권리가 박탈됐다(노비고소금지법). 노비제의 전성기가 열렸다. 양반의 나라가 되었다.

나아가 노비는 성접대 역할을 강요당했다. 관비는 곧 기생이었다. 기생 또한 세습의 굴레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종모법). 군사 접대제로서의 기생제가 국경지대 곳곳에 설치됐다.

군대의 기강이 무너졌다. 전쟁 위협으로부터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왕은 이웃 강대국의 노(奴)가 되었다.

도덕정치와 애민정치로 존경받는 왕과 기득권층을 위해 국가와 백성 모두를 노예화시킨 왕. 두 왕은 ‘세종’이라는 한 이름을 쓴다.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의 선택

역사는 강한 자의 행패로 시작된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약소국의 문은 반강제적으로 열렸다. 이방인들의 발길이 잦았고, 끊임없는 침략을 맞아야 했다. 잡아먹힐 위기에 처해졌다.

이 나라는 맹수가 되기로 결정했다. 군사를 증강했다.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정벌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국가의 정통성과 자유를 얻어냈다. 이것이 고려의 선택이었다. 맹수는 나름의 방식대로 국가의 자유를 지켜냈다.

조선의 선택은 달랐다.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맹수이기를 포기했다. 승냥이로부터 지켜줄 파수꾼 맹수를 찾아 기생했다. 온갖 뇌물로 최소한의 평화를 연명해보려 했지만 그 끝은 자유 잃은 피식자로 전락해 버렸다.

조선의 국가체제는 ‘천자-제후-대부-사-서-천’의 위계를 가졌다. “작은 자는 큰 자를 거스를 수 없다.” 세종은 명 황제의 요구에 따라 120여 명의 처녀를 진헌했고,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가의례인 천제를 폐지했다. 천자의 예에 속하는 부월을 내리는 출정의 또한 축소시켰다.

훈민정음은 사대 외교 정책의 연장선이었다. 창제의 본래 목적은 당시 중국 한자의 뜻, 음 형태만 빌리는 조선의 한자 발음과 중국의 그것이 너무 달랐기에, 중국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 독자적인 문자를 개발하게 된 것이었다.

훈민정음에 나온 어린 백성이란 한자를 사용하는 사대부를 가리킨다. 이 어린 백성이 정확한 중국어로 훌륭한 외교문서, 아름다운 시문을 짓기 위함이었다. 통설대로 하층 서민이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개발된 문자가 아니었다.

조선은 독립성과 주체성을 모두 잃었다. 명 황제에 대한 ‘성과 예’만을 위해 존재했다. 나라가 노예로 전락해버렸다. 내부의 사정도 다를 바 없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주인과 노비의 상하질서를 성리학의 도덕윤리로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었는데, 그 목적은 나라의 평화 즉 공동의 평화, 공동의 질서,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상(上)계층’들만이 그 평화와 이익을 누렸다. 그리고 ‘하(下)계층’에 해당되는 희생양들은 노와 비, 그리고 기생들이었다. 백성의 인권은 없었다. 양반의 배부름만 있었다.

도덕을 강조한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조선판 전체주의였다. 이것이 조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종’이 있었다.

현재 우리는 ‘인권’이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반 학문과 문화는 ‘인권’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시대에 따라 그 대상은 가변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개인에게 ‘천부인권’을 명시한 책이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대한민국은 저 멀리 태평양을 건너온 이 기독교 정신을 택했다.

초대 대통령은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선포했다. 이는 인간을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했다.

건국헌법은 국민을 자유인으로 선언했고, 이승만의 ‘제86조 농지개혁 조항’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나라’가 됐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인간 해방이 이루어진 대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선택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자유인인가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현대판 조선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자유사상’으로 세력 잃고 쫓겨난 사대부 양반들이 다시 힘을 키워 나타난 듯하다. 그들의 타깃은 가장 힘이 약한 계층, ‘아동’이다.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탄압당한다. 초등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의 이념을 알려주는 ‘개인, 자유, 독립,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의 개인, 노동, 노동의 고귀성’과 같은 용어를 눈 씻고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공동의 질서를 위한 ‘자비, 사랑, 관용, 책임, 평화’ 등과 같은 성리학의 도덕용어 뿐임을 발견한다.

아이들은 이로써 ‘자유인의 정체성’을 빼앗긴다. 그리고 이들은 커서 세종을 성군이라 부른다. 또 다시 조선판 전체주의가 시작되는 듯하다.

현대의 희생양은 또다시 약자이다. 아이들의 교육권은 부모가 아닌 국가에게, 여성은 남자의 경제권에, 국민들은 국가의 복지에 기생하기 시작한다.

국가는 또 다른 강대국에 기생하는 외교를 시도한다. 국민과 국가 모두 주체성과 독립성을 잃어가는 듯하다. 자유인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자유’가 흐려지고 있다는 위기감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김진
▲김진 청년.

다시, 두 왕 이야기

대한민국의 자유인으로서 우리는 ‘세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세종의 모든 업적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까지 모두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으뜸 이념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인간을 노예로 추락시킨 법을 마련한 세종을, 과연 ‘성군’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의 고찰이 필요해 보이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두 왕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진
청년한국 아카데미 회원
차별금지법 반대 청년연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