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하나님의 사람 되심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성탄(Christmas, 聖誕)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God becoming man)’ 성육신(incarnation, 成肉身)을 일컫는다.

영원 전 ‘말씀으로 계셨던 성자 하나님(요 1:1)’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 성탄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을 확정짓고, 죄인은 이 ‘삼위일체 신앙’으로 구원 얻는다(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리고 그 성육신(incarnation)은 성자 하나님이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는(마 1:18, 20)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성취됐다.

‘하나님의 사람 되심(God becoming man)’을 믿는 ‘삼위일체 신앙’은 신․구약 성도를 불문한다. 구약 성도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manna)를 먹으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 사람들에게 먹힐 ‘생명의 떡이 될 것’을 바라보았다(요 6:32-33).

신약의 성도들은 십자가 위에서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으면서 그것이 조상들이 먹었던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만나’라고 믿었다(요 6:49-51). 이 믿음을 근간으로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를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제자 요한(John)은 그를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고 했고, 부활하신 예수님 몸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본 도마(Thomas)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 역시 직접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그러나 이 ‘하나님의 사람 되심(God becoming man)’을 모든 사람이 다 믿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육체를 부정(不淨)하다고 보는 이원론자들(a dualists), 예컨대 가현설자(gnosticist, 假現說者, 요일 4:1-3)와 사두개인이(마 16:11-12)들이 그랬고, 단일신론자(unitarian)인 유대교도들(갈 1:13)이 그랬다.

‘하나님의 사람 되심’에 대한 지식을 모든 사람이 다 공유할 수 없었음은 오직 ‘진리의 사랑(살후 2:10)’을 받고, 삼위(三位)의 가르침을 받은 택자들에게만 그것을 알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여기서 ‘주(the Lord)’는 예수가 ‘참 하나님(Vere Deus)이요 참 사람(Vere Homo)이신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이 외에도 성경은 곳곳에서 다양한 어법(語法)으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심’을 표현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흔히 인용되는 구절이 “말씀이 육신 되셨다(The Word became flesh, 요 1:14)”는 말씀이다.

사람의 출생에 대해선 그냥 ‘누가 태어났다’고 하지 ‘육신이 됐다(became flesh)’고 하지 않는다. 그의 탄생이 ‘하나님의 사람 되어 오심(God becoming man)’이었기에, 그런 독특한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사람들과 같이(human likeness)’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in appearance as a man)’ 나타나셨고(빌 2:6-8)”,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the likeness of sinful flesh)’으로 보내사(롬 8:3)” 등도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다.

이는 가현설자(gnosticist, 假現說者)의 주장처럼 예수가 그저 ‘사람의 형용(形容)’만 가진 유령 같은 존재였다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했다(a body you prepared for me, 히 10:5)“는 ‘성육신’의 표현 중, 그 명시성(明視性)에서 당연 압권이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심‘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다.

더 부연하지 않아도, 그 말에서 육체(body)를 입지 않았던 성자 하나님이 ‘한 몸(a body)’을 입으셨다는 것이 단번에 수납된다.

◈죽음을 위한 출생, 그리고 마귀의 방해

‘하나님의 사람 되어 오심(God becoming man)’에 대한 두 가지 방증(傍證)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성자 하나님이 ‘죽기 위해 탄생했다’는 사실에서 유추된다. 죄 된 인간은 의도적으로 죽으려 하지 않아도 모두 죽게 돼 있다. 따라서 ‘인간은 죽기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부러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다르다. “내가 이를 위하여(죽기 위해) 이때에 왔다(요 12:27)”,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8)”라며, 자기의 출생 목적이 ‘죽음’에 있음을 명백히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이 사람 되어 온 하나님’이심을 간접적으로 선언했다.

물론 그 목적은 자신의 몸으로 택자의 죄를 담당하여(벧전 2:24) 그들을 구속(救贖)하기 위함이다(히 2:17). 죽음이 없으신 하나님이(딤전 6:16) 그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려고 사람 되어 와 죽음을 맛보셨다.

‘하나님의 사람 되어 오심(God becoming man)’에 대한 또 한 가지 방증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방해한 마귀의 궤계이다. 일찍이 사람의 출생에 대해 마귀가 그렇게 집요하게 방해한 일이 없다. 죄인의 출생에 대해 마귀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의 탄생‘에 대해선 달랐다. 이는 그것이 ‘택자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고, ‘죄와 사망과 마귀를 박멸하기(요일 3:5, 딤후 1:10, 창 3:15)’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의 경륜을 대적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사망의 세력을 가진 그가(히 2:14) 자기의 그런 도모들을 무산시키고, 궁극에는 자기에게 파멸을 갖다 줄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심’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당연히 마귀는 ‘성자의 탄생’을 훼방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심’을 막으려는 그의 훼방은 그리스도의 탄생 훨씬 이전, 그의 먼 조상 때부터 획책됐다. 곧 그의 뿌리인 대(代)를 끊어버리므로 그의 출생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일어났다. 애굽 왕 바로(Pharaoh king of Egypt)가 이스라엘 백성을 고역(苦役)으로 탈진시켜(출 1:11) 출산을 억제시키고, 남아(男兒)가 출생하면 산파(産婆)들로 하여금 도륙케 했다(출 1:16).

그리고 신약에선 그리스도 탄생 직후, 그를 죽이려고 헤롯(Herodes) 왕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남아(南兒)들을 다 살륙케 한 것이다(마 2:16).

바로와 헤롯의 이런 잔인한 도륙(屠戮)의 배후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심’을 방해하려는 마귀의 궤계가 작동했다.

영국의 청교도 메튜 헨리(Matthew Henry, 1662-1714)는 이 두 사건을 “용(龍)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계 12:4)”라는 말씀과 연결지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으려는 마귀의 획책’으로 해석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in one vol, p.72).

그러나 이러한 마귀의 도모는 그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오히려 그것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그리스도임을 방증해 주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여기서도 목도한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