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친밀한 관계는 다 동성애 관계로 간주하는 경향
음란 프레임 갇혀 성서 해석하니 모든 것을 음란하게?
성경 속 다수 인물 상상적 해석해 동성애자 간주하면서,
동성애 죄악 단정한 성서구절들은 왜곡 해석이라 강변

위중한 문제의식 속에서 퀴어신학 대책 마련 서둘러야
퀴어신학 이단성 규명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막아야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
▲학술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본지는 지난 9월 25일 열린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 출범 기념 학술포럼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신학교육 개혁’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곽혜원 박사의 ‘젠더주의의 도전에 봉착한 21세기 한국 기독교의 과제’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3. 젠더주의가 기독교계에 끼친 퀴어신학의 폐해와 신학계/신학교육 갱신의 위급성

젠더주의가 기독교계에 끼친 심각한 폐해는, 바로 친(親)동성애적 퀴어이론(queer theory)을 발판으로 퀴어신학(queer theology)이라는 이단적인 신학 분파를 만들어낸 일이다.

퀴어신학은 모든 만물이 유전(流轉)한다고 주장하는 후기 현대적 생성의 철학에 근거하여, 인간의 성(性)도 남성이나 여성으로 고정되지 않고 양성이 자유롭게 유동(流動)한다는 사상의 기반 아래 해체주의적 세계관·인간관이 가세하여 만들어낸 신학 사조이다.

특별히 퀴어신학은 낯설고 이상함을 뜻하는 ‘퀴어(queer)’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정통 신학에서 낯설고 이상한 것, 괴기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배제되어 변두리로 밀려났던 테마를 신학의 중심에 내세우고 이를 억압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여기서 낯설고 이상한 것은 전적으로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퀴어신학은 생소하고 괴이한 대상으로 혐오되어 왔던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비정상적인 동성혼을 정상화하는 데 종국적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퀴어신학자들은 보수주의 성서학자들의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을 통해 동성애가 죄악시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성서에 기록된 동성애를 역사 비평적으로 재해석한다.

퀴어신학 대부이자 로마가톨릭 신부요,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다니엘 헬미니악(D. A. Helminiak)은 성서가 동성애자들의 도덕성이나 윤리성에 대해 아무런 직접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동성애에 관한 한 중립적 견해를 취한다고 책의 서두에서부터 시종일관 강변한다.

시카고 신학교의 퀴어신학자 테오도르 제닝스(T. W. Jennings) 또한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관점이 잘못된 동시에 왜곡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수의 성서 텍스트들이 동성애 관계와 행위를 긍정함은 물론 찬양까지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성애라는 것이 저주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라고 결론짓는다.

심지어 동성과 가까워지려는 욕망이 축하받을 만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라는 퀴어신학자들의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퀴어신학자들은 동성애가 죄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기도 하는데, 특히 복음서에서 예수가 동성애에 대해 한 번도 명시적으로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성애가 죄악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주장인데, 즉 동성애가 심각한 죄악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께서 동성애에 대해 논쟁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이는 ①구약의 동성애 정죄에 대한 율법적 교리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것이다.

②이방 문화와 달리 성에 관해 매우 보수적이고 일찍이 동성애에 대해 엄격한 교육이 이뤄졌던 팔레스타인의 유대 문화에서 동성애가 큰 사회문제로 드러난 적이 없기 때문에 복음서에서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③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고대 유대인 사회가 성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폐쇄적 사회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동성애와 같은 패역한 행위에 대해 직접적 언명을 피했다고 말할 수 있다.

퀴어신학자들은 동성애가 죄악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성서 안에 동성애자들이 많다고 유추하면서,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그들이 기본 텍스트로 채택하는 헬미니악의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에는 다윗과 요나단(삼상 18:1, 20:20; 삼하 1:26)의 애정관계를 위시하여 다윗과 사울(삼상 16:21)의 관계 역시 연인관계로 묘사되어 있다(요나단-다윗-사울의 삼각관계).

(다니엘 헬미니악은 성서가 다섯 군데에서 동성 성교를 공공연히 다룬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로 든 사례로 ‘요나단-다윗-사울’ 사이에 추정되는 삼각관계, 남성 간 섹스를 언급한다. 그는 성서를 매우 음란하게 자기 방식대로 번역하면서 성서 인물들의 동성애를 정당화한다.)

또한 룻과 나오미(룻 4:16)의 관계를 문학작품에 최초로 등장한 레즈비언 로맨스로 추정하고, 다니엘과 환관장도 동성애 관계였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예수께 병든 하인을 고쳐달라고 청원했던 백부장과 종(마 8:5-13)의 관계 또한 게이 관계라고 주장한다.

듀크대 신학과 리처드 헤이스(R. B. Hays) 교수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혈연적 자매라기보다는 레즈비언 관계였을 가능성도 주장한다.

퀴어신학자들은 성서의 거의 모든 인물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훨씬 더 많이 동성애에 개방적이었을 거라는 무모한 주장도 제기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참람하게도 하나님마저 동성애자로 만들어버린 사실이다. 테오도르 제닝스는 그의 저서 『예수가 사랑한 남자』에서 예수와 어떤 ‘사랑받던 제자(나사로·부자청년·안드레·요한 등으로 추정)’ 사이가 동성애 관계였을 개연성을 제기하면서, 소위 ‘게이적 성서 읽기’를 시도한다.

‘사랑받던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누워있는 육체적 친밀함에서 평범한 사제지간이 아니라, 동성 간에 육체관계를 나누는 모습이 엿보인다는 것이다(요 13:21-26).

뿐만 아니라 제닝스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옷을 벗은 상태였고 제자들은 그의 무릎에 눕거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바짝 기대었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성애적 사랑의 관계를 나타냄은 물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은 예수가 여자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면에 싣기에 대단히 민망하지만, 사태를 냉정하게 직시하기 위해 반드시 지적해야 할 내용이 있다. 이는 곧 동정녀(童貞女) 마리아가 낳은 아기 예수가 남성으로부터 물질적 요소(남성성)를 전혀 물려받지 않고 여성인 마리아로부터만 자양분을 받았으므로, 예수의 몸이 ‘자웅동체(雌雄同體)’라는 주장이다.

이에 예수께서 상황에 따라 남성도 되었다가 여성도 되었다가 유동적으로 바뀌는데, 십자가 상에서 창으로 옆구리가 찔린 상처에 대한 해석이 망령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예수의 옆구리 상처를 여성의 몸으로 변화된 자궁으로 해석하면서, 외부 상처는 여성 성기의 외음부이고, 피와 물은 여성 성기에서 나오는 애액이라는 것이다.

또한 로마가톨릭에서 행해지는 예수의 상처에 수녀들이 입맞추는 의식은 여성화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동성애적으로 구강성교하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가 성매매 여성의 아들 혹은 사생자라거나, 하나님이 남근(男根)을 지닌 남신(男神)으로서 신자들과 성애(性愛)를 나누는 신이라는 참으로 해괴망측하기 이를 데 없는 신성모독적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퀴어신학자들의 성서해석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성서를 읽는지를 간파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우정과 동성애 사이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아서, 모든 친밀한 관계는 다 동성애 관계로 간주하는 경향이다.

음란의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성서를 해석하니까 모든 것을 음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도 든다.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
▲곽혜원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런데 퀴어신학자들은 성서의 다수 인물들을 동성애자로 간주하는 한편으로, 명백히 동성애를 죄악으로 단정한 성서구절들에 대해선 왜곡된 해석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구약과 신약에는 동성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명시된 구절들(레 18:22와 20:13; 신 23:17; 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 롬 1:24-27; 고전 6:9-10; 딤전 1:10)과 함께, 문맥상 동성애와 관련된 성구들(창 19:1-11; 사사기 19:16-30; 겔 16:48-50; 유 1:7)도 있는데, 퀴어신학자들은 그 동안 보수주의 성서학자들이 이 구절들을 잘못 해석하면서 이성애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바라보고(이성애 중심적) 동성애를 죄악으로 정죄(동성애 혐오적)해 왔다고 비판한다.

위 성구들에 대해 퀴어신학자들이 재해석한 내용을 살펴보노라면, 매우 비논리적 억지 주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들은 성서 전체를 문맥을 따라 읽으면 충분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막무가내로 왜곡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사건(창 19:1-11)이 명약관화하게 동성애와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데, 즉 이 사건이 약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집단적 강간을 저지르려는 불법을 지적한 것일 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류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고 역공격하는 식이다.

과거엔 동성애자들이 자연적 순리에 위배되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은폐하기 급급했지만, 오늘날엔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난 동성애자들의 비윤리적 행태보다 이성애자들의 혐오가 훨씬 더 심각하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오히려 이성애자들에게 돌림으로써 논점을 흐리기도 한다.

퀴어신학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혐오를 비판하는 강도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이성애와 대립각을 세우는데, 특히 성애와 생식(출산)을 관련시키는 이성애 중심주의가 전통 기독교적 성윤리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면서 이것이 동성애 혐오의 뿌리라고 역설한다.

그들은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미화하는 만큼 이성애에 기반한 결혼과 가족제도에 적대감을 드러냄으로써, 결혼과 가족적 가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퀴어신학자 중에서 특히 제닝스는 복음서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가 명백히 성적 비규정성에 크게 문제가 없었던 사람, 성적으로 부정한 행위에 전혀 충격을 받지 않고 책망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라면서 성 일탈에 개의치 말고 살 것을 넌지시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제닝스의 결혼 및 가족적 가치를 폄하하고 성규범을 괘념치 않는 비윤리적 방종은 성서에 기반한 기독교적 윤리관에 전적으로 배치되는데, 왜냐하면 성서가 독려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족 중심의 성윤리를 지키는 성결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 신학계에서는 퀴어신학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지지부진했지만, 이제는 위중한 문제의식 속에서 퀴어신학에 대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퀴어신학이 다른 이단보다 죄질이 훨씬 더 악한 것은, 성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음란한 인간의 말로 치환시킬 뿐만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음란한 잡신으로 전락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2006년 영국에서 발행된 <퀴어 성서 주석(Queer Bible Commentary: QBC)>의 한국어 번역본이 현재 출판을 앞두고 있는데, 이 주석은 성서 66권을 모두 동성애적 관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성서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퀴어 성서 주석 한글판이 보급되어 퀴어적 해석이 일반화되면, 성서적 윤리관에 대한 강한 충돌과 혼란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농후할 뿐 아니라, 성서적 가치관을 지키려는 교회와 성도들이 사회적·문화적·제도적으로 공격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미래세대에서 동성애 옹호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상당수 크리스천 청년이 주축이 되어 시대조류에 함몰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신학교육 현장에서 최근 일어났던 일련의 친동성애적 행보는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은 퀴어신학의 폐해로부터 한국교회의 청년, 특히 예비 성직자를 보호해야 할 당위적 과제와 책임을 한국교회에 부과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모독하는 퀴어신학에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미래세대가 올바른 가치관과 신앙관을 가진 건전한 사회인이자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류문명이 올바른 정도(正道)를 걸어가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사수하기 위해 대리전(代理戰)을 치루는 위중한 시대적 책임을 짊어진 21세기 한국 기독교는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일념으로 헌신하는 가운데,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연합하여 다각도로 치밀하게 대처함으로써, 대내적으론 퀴어신학의 이단성을 규명하는 한편으로, 대외적으론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막아내야 할 것이다.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übingen) 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공동체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Das Todesverständnis der koreanischen Kultur(한국문화의 죽음이해), 『현대세계의 위기와 하나님의 나라』, 『삼위일체론 전통과 실천적 삶』(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자살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저작), 『제2종교개혁이 필요한 한국교회』(공저), 『관계 속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공저), 『죽음 목회』(공저), 『과학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가』(공저), 『우리는 죽음을 왜 두려워하는가』(공저)가 있다.

역서로는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의 『절망의 끝에 숨어있는 새로운 시작』,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정의이다』, 『희망의 윤리』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