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부터 자료 수집, 집필까지 5년 걸린 역작
저자,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에 오래 심취
세계인들 가슴에 정의와 진리와 승리 메시지

쿠오 바디스
쿠오 바디스(전 2권)

헨릭 시엔키에비츠 | 최성은 역 | 민음사 | 각 541쪽 | 각 13,000원

<쿠오 바디스>는 구상부터 자료 수집, 집필에 이르기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역작이다. 이탈리아 사람도 아닌 폴란드 사람인 시엔키에비츠가 네로 시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순교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바르샤바 대학교 문학부에서 문학사를 전공한 시엔키에비츠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고, 평소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을 즐겨 읽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쓴 <연대기(A.D. 56-120)>와 스베토니우스(70-150)의 <황제전(皇帝傳)>은 시엔키에비츠가 특별히 탐독한 작품이었고, 훗날 <쿠오 바디스> 를 집필할 때 참고문헌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후에 시엔키에비츠는 집필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라틴어로 씌어진 고전을 읽는 것은 제 오랜 취미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탓도 있지만, 라틴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적인 훈련이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씌어진 주옥같은 시와 산문을 읽으면서, 나는 점점 더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타키투스의 <연대기>였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네로 시대에 극명하게 대립하던 두 가지 세계, 즉 강압적인 제도와 무력이 지배하던 세계와 영혼과 정신의 힘이 지배하던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강인한 정신력만 있으면 현실의 모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폴란드 사람인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타키투스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 또한 문필가로서 적절한 형식을 도입하여, 두 세계가 팽팽히 맞서던 고대의 분위기를 소설을 통해 예술적으로 그려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가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구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집단 처형당했다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나 있다.

로마 시대에 쓰인 역사책 중 주후 64년 로마의 대화재와 기독교 신자들의 박해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유일하게 타키투스의 <연대기>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엔키에비츠는 미국 작가 월리스의 <벤허(1880)>를 읽으면서 역사와 허구를 적절하게 접목시킨 이 소설에 매료됐다. 시엔키에비츠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한 매체 편집장인 고들 레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벤허>는 예수의 생애와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을 긴밀하게 연계시킨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사실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고, 성경에서 그대로 인용한 대목도 많지만, 제가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대 로마 문명에 대한 시엔키에비츠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로마 방문으로 이어졌다. 1879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최초로 로마를 둘러본 시엔키에비츠는 그의 나이 40세인 1886년 콘스탄티노플과 아테네, 나폴리, 로마 등지를 여행하였다.

1890년 12윌 세 번째 로마 방문길에서 그는 화가 헨릭 시에미라츠키(Henryk Siemiradzki, 1843-1902)와 만나게 된다. 시에미라츠키와의 만남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막연하게 품고 있던 <쿠오 바디스>의 집필을 앞당겼다.

구해줘
▲1876년 시에미라즈키가 그린 ‘네로의 횃불’.
폴란드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에미라츠키는 시엔키에비츠에게 로마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안내해 주었는데, 그중에는 로마 근교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쿠오 바디스 성당’도 있었다. 시에미라츠키는 이 성당에서 시엔키에비츠에게 성당 이름에 얽힌 유래를 들려주었다.

훗날 시엔키에비츠는 시에미라츠키와 함께 쿠오 바디스 성당을 둘러본 것이 소설 <쿠오 바디스>의 탄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곳을 방문한 순간 나는 이 시대에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초기 교회사에 대해 나름대로 지식을 갖고 있었기에,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시엔키에비츠는 로마에서 얻은 예술적 영감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로마에서의 모든 기억은 내 마음 속에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곳에서 본 대리석상, 아름다운 조각과 예술품들, 폐허와 카타콤베. 그 밖에 여러 유적지에서 받은 감상 캄파니아 평윈의 푸른 들판 로마 근교의 아름다운 집들, 길게 뻗은 수도교-내 뇌리에 박힌 이 모든 장면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엔키에비츠가 <쿠오 바디스>를 쓰게 된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리고 절망에 빠진 동포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어야겠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시엔키에비츠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숭고한 모습을 통해, 폴란드 민족에게 정의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쿠오 바디스>를 쓰기로 결심을 굳힌 시엔키에비츠는 1893년 4월 다시 한 번 로마를 방문해 본격적인 자료 조사에 착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있는 주후 1세기 모든 자료들을 두루 섭렵했다.

시엔키에비츠는 그의 집필 습관을 이렇게 언급했다. “종이 위에는 아직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쉴새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작품을 쓸 때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신중하게 뜸을 들이는 습관이 있는데, 막상 집필에 들어갈 무렵에는 이미 작품이 거의 완성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때는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써내려 갑니다. 고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쿠오 바디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리기아와 우르수스, 킬로, 비니키우스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실존인물들이다. 주인공 비니키우스의 경우에는 현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만들어 냈다.

비니키우스와 페트로니우스의 인척 관계를 비롯해 아울루스 플라워티우스의 부인 폼포니아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설정 등 작가가 부분적으로 허구를 가미한 부분도 있으나, 대부분은 꼼꼼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씌어졌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부분의 행적은 문헌이나 사료에 근거한 사실이며, 행동의 동기를 이루는 인물들의 다양한 내면의 움직임과 복잡 미묘한 심리는 시엔키에비츠의 풍부한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헨릭 시에미라츠키 기독교인 디르카에 The Christian Dirce
▲헨릭 시에미라츠키의 ‘기독교인 디르카에(The Christian Dirce)’.
<쿠오 바디스>에서 기독교인들의 수난과 함께 서사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리기아와 비니키우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로맨스의 선형적인 공식을 따르자면, 절체절명의 순간 여주인공 리기아를 구출해 내는 것은 그녀의 연인 비니키우스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쿠오 바디스>에서 아리따운 공주를 위기에서 용감하게 구해 내는 것은 그녀의 동족인 우르수스이다.

이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시엔키에비츠는 일부러 초반부터 여주인공 리기아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녀를 호위하는 충직한 하인 우르수스를 등장시켰다.

슬라브 사람인 우르수스가 게르마니아의 들소를 때려잡고 승리를 쟁취하는 장면을 통해, 프로이센에 의해 지배받던 폴란드 민족들의 사기를 북돋우려 했던 것이다.

이기적인 비니키우스가 열렬한 그리스도교 신자인 리기아로부터 감화를 받아 차츰 인간적으로 변모해 나가는 모습은 낭만적인 플롯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개연성을 갖게 된다.

또한 기독교가 고대 문화에서 새로운 가치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그리고 숱한 박해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류의 보편종교로 인정받게 된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이 소설은 당시의 로마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풍속, 습관, 신앙, 종교의식, 오락 등에서부터 가옥구조, 집기, 의복, 보석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갖는 뛰어난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 “올바른 자는 무력을 쓰지 않아도 꼭 이긴다”, “사악한 권력은 그 사악 자체에 의해서 반드시 멸망한다”는 낙천적인 신념을 담고 있다.

제목 <쿠오 바디스>는 라틴어인데,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물은 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 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에서 따온 것이다.

시엔키에비츠는 1916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적인 고전 역사소설인 <쿠오 바디스>는 박해받는 폴란드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고, 세계인의 가슴에 정의와 진리의 승리를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남아 있다.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