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진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들어가는 말

미 대선이 지난 11월 3일에 진행되고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현재까지 북한은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과거에 미대선 후, 보통은 10일 이내(부시 당선시 4일만, 오바마 때는 2일, 트럼프는 9일)에 반응을 보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한 달이 거의 다 돼가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해외공관원들에게 사견이나 미국을 자극하는 대응을 하지 말라고 하고, 문제발생시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에게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그리 달가울 리 없다. 그렇다고 자기 패를 쉽게 내보이기는 쉽지 않다.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면서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은 미 대선의 결과가 확실히 나지 않았기에 경거망동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속앓이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트럼프 현 정부와는 삐그덕 거려도 그동안 쌓아올린 탑이 있었는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마당이다. 무엇보다 차기 바이든 행정부의 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에 머릿속만 복잡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자.

바이든의 ‘싱가포르 합의문’ 불인정

중국의 외교부장인 왕이가 지난 달 25일에 방한한 가장 큰 목적은 미국의 바이든 새 정부에게 2018년 제1차 미·북정상회담시 채택한 ‘6.12 싱가포르 합의문’ 이행을 주문하기 위해서이다.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한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하는 이유도 명백하다. 싱가포르 합의문(제3조)에 판문점 선언(남북정상회담, 2018.4.27.)을 재확인 한다고 명시함으로 한국도 해당 당사국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왕이의 싱가포르 합의문 이행 주장의 속내는 문정부로 하여금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바이든 당선인 측에게 강력하게 전달하여 그 내용을 관철시키라는 촉구이다. 왕이의 “남과북이 (한반도) 주인이다. 건설적 노력을 계속해주길 바란다”는 언사 또한 판문점 선언을 각인 시키고자하는 화법이다. 판문점 선언문 1조 1항인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을 복기시킨 것이다.

판문점 선언의 주요골자는 무엇인가. 하나는 ‘종전선언’이라는 목표설정이다. 왕이의 ‘비핵화와 제재완화의 동시적 조치’라는 발언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국이 이미 전부터 내세웠던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동시추진)의 다른 식 표현이다. 문재인정부식 표현은 ‘비핵화 입구로써의 종전선언’이다. 또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을 표방하면서 중국의 개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판문점 선언문에는 분명히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관련해서 시진핑 주석은 분명한 의사전달을 한바있다. 지난 9월 9일, 북한정권 수립일을 기념해서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내면서 차후 중국이 동북아 지역 안정의 촉진자가 되겠다고 표명했다. 이번 왕이의 방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중 신 냉전 구도 속에 한국을 자국 쪽으로 편승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로 비춰진다. ‘싱가포르 합의문’, ‘판문점 선언문’ 카드로 한국과 함께 대미 협공을 펼치려는 전략이다. 한국이 그 어느 때보다, 중국과 긴밀한 협력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한 노림수가 엿보인다.

중국의 요청이 있기 전에 이미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당선자 측에 ‘싱가포르 합의문’ 카드를 내세우고 있었다. 여당 대표의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합의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발언은 바로 ‘싱가포르 합의’를 염두 한 것이다. 앞서 기술했지만, 싱가포르 합의는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 하는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군사훈련 중단 및 종전선언의 수용, 중국의 한반도 문제 개입을 수용한 시그널을 준바 있다.

차기 바이든 행정부는 과연 어떨지 좀 더 두고 볼일이지만, 싱가포르 합의 당시 바이든의 ‘모호한 약속’, ‘동맹 약화의 신호’라는 혹평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모호한 약속’은 분명하게 ‘북한의 비핵화’(북핵 포기)라고 선을 긋지 않고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뭉뚱그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동맹 약화의 신호’는 아무런 조건없이 한미군사훈련중단을 지적한 것이다. 바이든은 당시 이 두 가지 점을 크게 우려하며 정상 간의 합의문으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크게 입장 변화가 없다면, 선제적으로 한미군사훈련 재개를 꾀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라고 분명한 선을 그을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중에도 북 핵만을 강조한바 있다. 중국과 한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비핵화 문제를 선점했던 북한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이든의 ‘민주주의 국가 정상간 회의’ 모색

트럼프 정부하에서 역대 최악으로 추락했던 미중관계의 변화가 점쳐지는 가운데, 내년 초에는 당장 트럼프 행정부의 실정을 드러내기 위해 중국과의 허니문 기간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외교관계자는 ‘미중이 공정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추구할 것’이라고 공언하기 까지 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양국 관계에서 협력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이런 흐름으로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중국에게는 호재로 보여 진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국제 사회의 다자간 협력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종교, 인권 등에 있어서는 더욱 공세적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왕이 부장이 방한을 통해 미국을 압박한 이후, 미국 언론에서는 미국이 다자 협의체 구성을 모색하며 바이든 당선인이 직접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임을 내년 안에 주최한다는 내용이 보도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회의인 만큼 중국과 러시아는 배제 대상국이다. 물론,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국가 정상들 간의 모임인 만큼 한국은 초청대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자리를 통해 한국과 동맹임을 재천명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 당선인에게 당선축하전화를 할 때(11.12)도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며 한국이 동맹임을 재차 강조했던 바이든이다. 이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4개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 들어오라는 문정부에 대한 강력한 싸인이기도 한다. 어쩧든 바이든은 문정정부로 하여금 양국이 혈맹관계임을 주지시켰던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 국가 정상간 회의가 진행되면 미국은 다자 협의체 구성을 통해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북한에게는 악재로 작용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도 어설픈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문제, ‘이란 핵합의 모델’ 모색

바이든이 지난 11월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김정은을 ‘불량배’(thug)라고 지칭한 것을 볼 때, 북한의 핵문제와 더불어 인권문제에 대해 매우 강경한 기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의 김정은에 대한 불량배 표현으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친개는 한시바삐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으로 응수했다. 외교협회에서 바이든은 “트럼프 덕분에 살인적 독재자인 김정은은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고립된 버림받은 자가 아니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를 반격하기 위한 정제되지 않은 화법이지만 북한의 김정은을 불신임하고 있음은 역력해 보인다. 물론, ‘핵능력을 축소한다고 동의’하는 조건만으로도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말이다.

바이든이 새 정부의 외교 사령탑으로 토니 블링컨을 내정한 사실이 북한에 대한 강경기조 예측에 더욱 무게감을 실어준다. 다. 블링컨은 김정은을 ‘최악의 독재자’라고 할 만큼 바이든 보다 더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과거 그의 글을 보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주문하기도 했고 북한의 핵·경제병진노선도 비판 및 북한정권의 인권침해 행위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차후, 블링컨이 대북외교정책노선을 펼 때 ‘이란 핵합의’모델을 적용시킬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은 오바마 정부 시절(당시, 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 ‘이란 핵 합의’ 모델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으며 누구보다도 이란 핵 협상 모델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북한의 핵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2018년에도 북핵 해법의 모델로 이란 핵 합의를 강조했던 그였다.

이란 핵 합의는 2015년 4월 2일, 스위스 로잔에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핵심 사안에 잠정합의 하고 6월 30일에 최종 협상안을 도출함으로써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되었다. 이 모델을 북 핵 협상에 적용시키게 되면 첫째, 남북한과 중국이 추구하는 4자 협상이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도 포함되는 6자, 아니면 그 이상의 다자적 협의체가 구성될 수 도 있다. 둘째, 단계적 해별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즉, 트럼프 행정부처럼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바턴업(Bottom-up)을 추구할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실무협상을 하고 고위급 협상을 거쳐 정상회담으로 가는 수순이다.

문제는 현 트럼프 행정부의 선 비핵화 이행 조건과는 약간 결이 다른 핵 동결 선에서 북핵 협상이 재개되는지가 관건이다. 이란 핵합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면, 핵 동결선상에서 출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핵 합의의 주요골자가 핵 동결 및 핵시설 사찰수용과 그에 대한 대가로 경제재재를 풀어주는 거였다. 당시의 이란 핵무력이 미완성단계였던 것을 감안해볼 때, 북한에 똑같이 적용시키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란 핵 합의는 핵 동결에만 포커스를 맞춤으로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허용해주고 마는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주요 원인이 바로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억제 차원이었다.

당시의 이란과 현재 북한의 핵능력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한은 현재, 미국 본토를 위협할 만한 투발수단을 갖추었고 핵능력도 이미 완료된 상태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모델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북한 상황에 맞게 협상안을 조정할 것이다. 즉, 핵동결이 아닌, 핵 폐기와 더불어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억제 및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 걸 것이다. 북한에게는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훨씬 더 큰 압박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오는 말

차기 바이든 행정부를 대응하는 북한의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들고 나올 이란 핵 합의 모델이 과연 북한에게는 어떻게 적용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 대선이후,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는 이유다. 중국이 분명 협공(중국+남한+북한)으로 가자고 제안을 했을 터인데 김정은은 어느 때 보다 신중하다. 그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너무나 가벼운 감이 든다. 새롭게 전개될 미·중의 신 냉전 회오리에 휩쓸릴까 조마조마하다.

* 이 글은 WORLDVIEW 2021년 1월호에 실린 예정입니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