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뿌리내린 두레나무
▲바위에 뿌리내린 두레나무.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조선장로교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 총회에서 일본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여 절하는 신사참배(神社參拜)가 애국 행사라 하여 통과시키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였습니다.

그 대회에는 조선교회의 각 지역 교회에서 파송되는 총대로 목사 88명, 장로 88명, 선교사 30명, 합하여 20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이날 행사는 불행히도 긴 칼을 찬 일본 형사들이 늘어선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행사가 열리기 전 이미 조선장로회 총회 소속 27개 노회(조선 내 23개 노회, 만주 4개 노회)의 총대들에게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경우 가하여질 핍박과 투옥 등의 위협이 지속적으로 가하여진 상태였습니다.

평양경찰서에서는 총회 회의에서 신사참배 통과를 저지할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당일 경찰을 대거 회의장인 서문밖교회에 투입하였습니다.

평양노회장 박응률 목사는 노회 참가 총대들 중 32명의 대표로 신사참배가 국민정신 총동원운동에 참여하는 애국 운동이라는 요지로 긴급동의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동의안에 대하여 미국 선교사 블레어를 위시한 인사들이 반대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하여 제지당하고 의장이 가부를 묻자 회의 출석자 159명 전원의 찬성으로 통과 되었습니다.

이 회의가 있은 지 정확하게 10년 후인 1948년 9월 9일, 같은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김일성 정권이 창건되었습니다.

나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말합니다. 10년 전 1938년 9월 9일에 조선장로교 총회에 참석하였던 목사 장로 160명 중 단 10명이라도 반대하여 감옥 가고 또 몇 이는 순교까지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 사건이 세계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미국의 식자(識者)들의 마음을 움직여 10년 후 평양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하였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 특히 조선장로교의 후신인 한국장로교회는 해방 후 조국 분단에 대하여 일정 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책임이 있기에, 앞으로 통일한국을 이루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 역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