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23일 비대면 예배
▲한 교회의 비대면 주일 예배 모습(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크투 DB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7-8)”.

오늘 로마서 14장이 주는 교훈은, 우리 가운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는 사람은, 죄 지은 형제를 대할 때에도 주님과 함께, 주님의 뜻 안에서 대할 것이고, 내가 주님께 탕감 받았음을 기억하며 행동할 것입니다.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는 말씀은, 탕감 받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죄를 지은 형제를 만났을 때, 나와 너만의 관계에서 생각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먼저 떠올려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신앙인들은 오래 전부터 명령하시고 권면하시는 주님의 말씀에는 아량곳하지 않고, 오롯이 세상이 요구하는 편법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은 점점 퇴색되어가고, 이러다 하나님 나라를 영영 불신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아픈 역사가 또 다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듭니다.

지금 세상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은, 오롯이 목회자와 장로의 비윤리적인 행위와 불투명한 재정운영을 우선순위로 꼽고 있습니다. 항존직들의 비도덕적인 행동, 다시 말해 정직하지 못하며,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인해 신뢰도를 떨어트리고 있는 주 원인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데서 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늘 강단에서 강조하시는 말씀 중 “주일예배는 내 목숨같이 여기며 지켜야 한다”고 설파하면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찾아와 어려움을 겪게 되자 교회 소모임을 비롯해 예배까지 비대면으로 드리도록 명령하는 정부의 방침에는 속수무책으로 희생되고 있는 슬픔은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요?

처음엔 온라인 예배를 병행시키고 소모임과 식당 사용을 금지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모든 공예배까지 비대면으로 드리도록 행정명령을 내림으로써, 기독교를 마치 자신들의 품 안에서 좌지우지하려는 검은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통령께서 지난 10월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코로나19사태의 심각성을 말하며,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데 협조를 부탁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초청에 참가한 지도자들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마음으로 비대면 예배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대통령께 강력하게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만남입니다.

이 땅에서는 멀지 않은 과거에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6.25 사변과 4.19 혁명, 5.16 군사혁명을 비롯한 수많은 크고 작은 변고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이 땅에 평화가 임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헌신과 빛나고 아름다운 봉사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무사안일’이라는 나쁜 병이 찾아와 현재의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공예배까지 점령당하는 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대가 되어, 믿음의 선배들에게 후일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참으로 난감할 지경입니다.

무사안일과 함께 정직하지 못한 재정 운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피눈물 흘리면서 드린 헌금으로 호화호식을 일삼는 일부 지도자들, 권력을 향한 일부 교회들의 줄서기 등, 모함과 아부의 현주소인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음성을 듣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19 시대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채찍의 소리 아닐까요?

노회와 총회에서 임원이나 ‘장’을 하기 위해 지교회 성도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이들 때문에 많은 성도들과 한국 기독교에 크나큰 상처를 줌으로써, 비신앙인들에게까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도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그만큼 복음 사업이 더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한 현주소 아니겠습니까?

특히 중대형교회 일부 목회자들은 좋은 옷과 좋은 자동차, 그리고 값비싼 음식으로 늘 VIP 대접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이런 분들의 설교는 신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설교일까 하는 의심으로 마음을 혼란케 합니다.

지금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문드러진 삶과 고통과 수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작금의 크리스천들은 교파와 교단을 모두 초월해, 하나님에게 큰 울림을 선물하는 감동과 믿음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엔 줄서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바라보는 교회다운 교회가 될 때, 비로소 예배는 신실하고 복음의 문은 절로 열리며 살 만한 세상으로 변화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전기 코드를 꽂기만 하면 어두웠던 모든 것들이 밝아지는 것처럼, 기계가 돌아가고 장비가 돌아감으로써 필요한 곳에 제때 에너지를 공급하는 놀라운 사실처럼,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세상은 밝아지고, 믿음으로 죽고자 하면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쁨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세상의 복음으로 빛날 것입니다.

특히 비대면 예배로 인해, 교회를 가지 않아도 어디서나 언제나 참여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과 선택의 예배 문화가 코로나19사태를 통해 형성됐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울 뿐입니다.

용기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즉각적으로 비대면 예배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더 이상 공예배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 앞에서라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세례 요한과 나단, 사무엘 같은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나서서 지금의 시대를 타파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외치며 용기 있게 나아가는 주의 귀한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살아도 죽어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담대한 십자가 군병들로 변화되는,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