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자발적인 종

율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그 ‘자유’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방종’을 의미하진 않는다.

율법에서 해방된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진 않지만, 마음의 심비에 새겨진 ‘복음(고후 3:3)과 성령의 권고’를 따라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유를 향유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고후 5:14-15)’을 받아, 하나님을 위한 ‘자발적인 종(출 21:2-6)’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종 됨’이 지향하는 바는 먼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복음’을 위함이다.

이는 그것이 그를 율법에서 자유케 했기에, 평생 그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채무자(롬 1:14)’의식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은 후,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고전 9:19) ‘복음의 경륜’을 이루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의 그의 고백 역시 그런 ‘복음에 대한 채무자 의식’의 반영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0-22)”.

둘째 ‘율법에서의 자유’가 그리스도인을 ‘무(反)율법주의자’가 아닌, ‘친(親)율법자’로 만들어, ‘하나님의 법’에 진심어린 충성을 하도록 만든다. 이는 일부에서의 오해처럼 ‘율법에서의 자유’가 곧,‘반(反)율법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는 말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 ‘동기와 원리’에서 둘은 서로 전혀 다르다. 전자는 ‘구원의 조건’으로 그것들을 수납했다면, 후자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혹은 ‘하나님백성 된 표징’으로서 그것들을 수납한다.

그러나 후자의 동기에서 발분된 열심은 결코 전자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둘이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아니 때론 열정에선 오히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기도 한다.

이는 ‘의무’에서 나온 것이 ‘사랑’에서 나온 것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요일 5: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종됨’으로 방종을 이김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에게는 연약성이 잔존하며, 그 연약성이 ‘율법에서의 자유’를 ‘방종’으로 이끌 위험성을 배태하고 있다. 그렇게 될 때, 그 ‘자유’는 자유가 아닌 오히려 그를 죄에 빠뜨리는 ‘함정’이 된다.

다음 구절들은 그런 ‘자유의 오남용(誤濫用)’을 경계시키는 말씀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자유에의 탐닉’에 빠질 때 ‘육체의 방종’으로 흐르므로, 그 자유를 ‘서로 종노릇 하는’일에 드려 자신의 자유가 지켜지게 하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 6:12)”는 말씀 역시, ‘율법에서의 해방’이 ‘무한 자유’를 보장하지만, 그것이 ‘방종의 올무’가 되도록 하지 말라는 뜻이다.

‘웨슬리안 완전주의자들(wesleyan perfectionists)’은 구원받은 성도가 ‘방종과 죄’에 빠지는 것은 그의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며, ‘제2의 성령 세례(a second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받아 완전해지면 ‘죄 지을 생각조차 갖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성도의 완전’을 말하지 않았으며, ‘완전’을 통해 인간의 연약성을 벗어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육체를 입은 인간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까지도 일생 자신의 연약성과 죄로 인해 고민했다(롬 7:16-24).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사도 바울은 자신들이 받은 ‘제2의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꼴이 되며, 결국 그들이 사도 바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다는 뜻이 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완전’을 촉구하는 대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12)”는 권면을 통해, 아무리 탁월한 신앙인이라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완전히 섰다’할 이가 없으니 ‘조심 또 조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방종’을 막을 한 방편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giving self to the Lord)’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바 된 자신을 하나님께 귀속시키는(행 20:28)’ ‘구속’개념의 구현이기도 하다.

자신을 하나님께 종으로 드릴 때, ‘구속의 목적(고전 7:23)’이 달성될 뿐더러, 그것이 자신을 ‘방종과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는 보호막이 되기 때문이다(롬 6:16).

곧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 6:24)”는 ‘인간 역량 한계의 법칙’에 의거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을 드리면서 동시에 ‘죄의 종’으로 드릴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자유인’과 ‘종’은 외형에 있지 않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從)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전 7:22)”.

이는 ‘외적인 자유의 유예’가 곧 ‘내적인 자유의 유예가’ 가 아니며, ‘외적인 자유’가 ‘내적인 자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란 ‘외적으로는 종의 신분’이지만 내적으로는 ‘자유자’라는 말이다.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씀 역시, ‘외적으로는 자유인’이지만 ‘내적으로는 종(從)’이라는 말이다.

성도는 ‘외적인 자유자’이지만 ‘구약의 귀뚫린 종(출 21:2-6)’처럼, 그 자유를 유예하고 ‘자발적인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이들이다.

사도 바울의 삶 역시 그랬다. 그는 자신의 편지들에서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고 말하며(바울 서신의 ‘종과 자유의 논의’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성도들도 자신처럼 살기를 권면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기독교는 ‘자유자’와 ‘종’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했다. 그것들은 ‘내적’이고 ‘영적’인 것이며, 그의 외적인 신분과 무관하다. 다음 구절들은 그것들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해 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인간의 자유’는 그의 외형적 삶의 형태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진리의 문제, 곧 ‘복음 진리’로 인해 율법에서 해방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외형적(신분적)으로 거칠 것 없는 ‘자유인’일지라도 율법에 매여 있다면 그는 ‘종’이다.

반면 그가 비록 외형적(신분적)으론 누군가에게 예속된 ‘종’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믿어 율법에서 해방됐다면 그는 진정한 자유자이다.

이어지는 유대인들의 우답(愚答)은 ‘종’과 ‘자유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북돋는다.“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요 8:33).”

남의 종이 돼 본 적도, ‘율법에서 해방’된 경험도 없는 그들이기에,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종’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 여기서 말하는 ‘해방’역시 ‘외적인 신분’의 변화가 아닌 ‘복음 진리’로 말미암은 ‘율법에서의 자유’이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스라엘 민족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려고 오신 메시아로 오해했을 때(행 1:6),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을 통해 그가 사람들에게 주려는 ‘자유’는 ‘정치적 해방’이 아닌, 율법아래 매인 자들을 복음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