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이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 우니라 하시니라 듣는 이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5-27)”.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정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가 불의한 재판관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함을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특히 기도 생활에 있어 인내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거듭되는 교훈에도 영적인 우매를 떨치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천국 시민의 생활 원리와 구원의 원리를 강력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의 무엇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헤쳐 나가기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던 성도들이 마귀 사탄들의 훼방에 못 이겨 믿음을 포기한다거나, 낙심하여 주님 곁을 떠나는 경우를 볼 수 있어 실로 안타깝습니다.

올 한 해를 시작할 때 믿음을 키우고 희망을 탄탄히 하여 충만한 사랑을 살고자 다짐했던 성도들의 설렘이 기억나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일들을 미루고 뒷걸음쳐야 했던 아픔이 아직도 고스란히 마음을 괴롭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거리두기’와 더불어 ‘(비)대면 예배’, ‘온라인 예배’ 등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들이 출현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까지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교회 지도자들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난리통에 작은 교회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믿음의 좋은 본과 전통들도 사라져 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한탄하시는 주님의 눈물이 오늘 비가 되어 천둥번개까지 울리며 진동하는 슬픈 하루입니다.

뜻하지 않았던 ‘거리두기’는 이웃과의 만남을 단절시켰고, ‘비대면’이라는 생경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웃들을 사랑할 기회를 접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습니다. 이 불행한 환경에도 더 많은 분들에게 더 큰 영혼의 갈증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외부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했던 만큼, 주님과의 해후는 더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웃 사랑은 결코 슬로건이나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따뜻한 가슴과 행위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우한 코로나19라는 대참사를 통해, 세상이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도들의 삶이 재정비되어야 하는 시기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삶에서 가장 우선시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는 결단을 요구하는 다급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왕이신 예수님을 뵙고 영광과 찬양으로 영광을 드리는 오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살아왔는지 세밀히 따져보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기 아닐까요?

매주 드리는 공적 예배에서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믿음의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충신의 자세로 전심을 다하여 주님의 군병으로 품위를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걸맞은 삶을 살았는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 작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품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대단하고 훌륭한 것인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고, 온전히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감격을 누려야 합니다.

코로나19를 통해 교회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적잖은 애로를 겪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전진해야 했지만, 오히려 퇴보한 것 같은 올 한 해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23일 비대면 예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당시 1만석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20명이 앉아있는 모습(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크투 DB
이 어려운 시기에 교회 지도자들은 더욱 분발하여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양들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기도와 행위로 전심을 다해야 하는데, 오히려 휴식에 잠겨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애가 마릅니다.

총회와 노회, 그리고 각종 기관에서 임원이 되고자,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물든 물감처럼, 겉으로 화려한 명예와 권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지금 이 시간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한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방향을 선회하셔서 참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성도를 위해 전력을 다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세속주의’와 ‘물질중심주의’의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마저 세상적으로 공동체화됨에 대한 반성과 절실한 회개가 요구되는 시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교회다움’은 삶의 근본 의미, 신앙의 보화가 주는 소중한 가치, 영성적 삶을 추구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과 소망을 통해 하나님과 일치하는 그 분의 사랑을 나눔으로써, 신앙공동체 본연의 모습을 지닌 ‘영적 공동체’로 거듭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하늘나라의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눈으로 시선을 옮기며, 사물을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초청되지 않은 질병이 우리를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롯이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길을,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세상 속에서도 힘차게 걸어가며,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