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the Guest
▲종교개혁자 칼빈(1509-1564).
4.2. 칼빈의 섭리론에 담긴 교훈들

고난과 재해를 경험한 칼빈은 이 모든 사항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연계시켰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게으른 관찰자로 우주 만물을 바라보는 분이 아니라, 열쇠를 쥐고서 모든 사건들을 통치하시는 분이라고 칼빈은 강조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1권 16-18장은 섭리를 다루고 있다.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서 칼빈은 우연적으로 보이는 사건들까지도, 심지어 자연재해까지도, 모두 다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시는 일환이라고 보았고, 다만 우리의 지식과 판단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필연적 목적과 원인들이 담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치하고 주관하시는데 어찌하여 흑사병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먼저 흑사병을 포함한 재난과 질병에 대하여 칼빈의 섭리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종교 개혁시대에 섭리에 대한 사상은 크게 발전해 왔고, 하나님의 권능과 간섭에 대해서 강조했다.

하나님은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보존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단순히 통치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유지시키고, 영양을 공급하고, 보호하신다. 심지어 참새까지도 다 포함된다 (마 10:29, 시 33:6, 13-15, 시 104:27-30).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제한된 지식으로 다 파악할 수 없기에, 모든 일들의 참되고 정당한 원인으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 40:5). 또한 경솔하게 판단하지 말고, 함부로 따지려 들려하거나, 반대로 공포에 질려서 두려움에 빠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의 순결한 빛으로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를 통제하시고 주관하셔서 올바른 목적을 향하여 질서있게 나가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칼빈의 섭리론은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첫째는 우주만물에 대한 일반적 섭리이고, 둘째는 인간사에 대한 특수한 섭리이자 일반은총이고, 셋째는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 대한 특별섭리이자 구원하시는 은총이다.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세상만사에서 우연이나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무한한 능력에 의한 통치이며, 특별한 구원이 포함된다. 날씨 (시 107:25-29)와 생명의 잉태 (창 30:2, 시 113:9), 음식의 제공 (신 8:3, 마 4:4, 6:11, 사 3:1, 시 136:25) 에서도 간여하신다.

인간사에 관련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성경에 강조되어져 있다.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도다” (렘 10;23). 솔로몬은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 20:24). 모든 일이 사람들의 뜻대로 되는 듯하지만,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 16:1)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결정 없이는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악행들을 혼란스럽게 뒤섞어서는 된다. 즉, 도둑질이나 간음이나 살인 같은 범죄행위를 자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그분의 뜻을 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자들은 불순종이요, 완악함이자 범죄이다. 비록 이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로 사용되었을지라도,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칼빈은 역경 중에도 역사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정의롭고 유익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를 짓누르는 파괴와 비참한 상황들이 사람을 통하지 않고 일어날 경우에도,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비롯된 것이요,
모든 환난은 그의 저주라고 하는 율법의 가르침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신 28:2 이하, 15절 이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육신적인 생각으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로 치부해 버리며,
그리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감격하여 그를 경배할 줄 모르고,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재를 무릅쓰고 회개할 줄도 모른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사 45:7)

세상의 환란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됨을 인정하고 올바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 경건한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평안이 주어진다. 인생의 삶을 위협하는 무수히 많은 상황들과 죽음의 위기들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우리 몸은 수천 가지 질병을 담는 그릇이므로, 죽음으로 포장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질병이 두려움과 공포가 항상 함께 깃들여있는데, 재난에 대해서 칼빈은 회개를 촉구했다.

하나님께서 전쟁이나 전염병이나 어떤 재난으로 나를 치시는 일이 간혹 있다.
이처럼 모두에게 임하는 채찍을 받으면, 모든 백성들은 자신을 책망하고,
죄를 고해야 한다.

이 부분은 1543년 증보판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기에, 그가 체험했던 제네바 교회의 흑사병에서 절망적인 두려움을 기억하게 하는 부분이다. 칼빈이 이 부분을 추가했을 때에, 그는 흑사병이 어느 정도 쇠잔해지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칼빈은 국가적인 재난과 환란을 맞이하여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고, 회개의 기도를 올려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모든 인간들이 당하고 있는 갖가지 고난들은 결국 사람들의 약점들과 죄악들을 상기시켜준다. 현대 사회가 극심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후로, 인간이 처한 상황이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칼빈은 일반적인 전염병에 대해서 금식하며 회개할 사건이라고 보았다.

필자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사태를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회개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교회의 권징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고난당하고 있는 시대의 교회는 금식과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권면한다:

큰 질병이나 기근, 혹은 전쟁이 발생하려 하거나, 어느 지역에나 사람들에게
재난이 발생하여 위협할 때에는 주님의 진노를 피하도록 교회로 하여금
함께 금식을 하며, 간구하도록 하는 의무가 목회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주님이 위험을 드러내시는 곳에서는 주께서 징벌을 내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시대에 정죄를 당한 자들이
흔히 긴 수염에다가, 머리를 단정히 하지 않고, 검은 의복을 입고
간청을 올림으로서 자신을 낮추어서 재판관의 자비에 호소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비천한 모습으로 기도하며,
그의 극심한 징계가 지나가기를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그의 백성들에게 덕을 세우는 일이요, 또한 우리에게도 유익이 된다.

따라서 현대 교회에서도 금식과 기도주간을 선포하여, 다함께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금식이나 기도가 무슨 공로나 업적으로 칭송을 받아서도 안 되고, 사람들끼리 무엇인가 고상한 일을 했다고 자랑하려는 성대한 교회 행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 금식행사에 대해서 정도에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규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비참한 중에 처할 때마다 언제나 우리의 죄악들이 마음에 떠올라야 하며,
그런 처지를 징벌로 여겨서 회개가 나와야 할 것이다.

칼빈은 흑사병이 죄로 오염된 인간들로 하여금 회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흑사병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의 용어는 나오지 않지만, 기근이나 재앙이 내려질 때에는 항상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죄악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였다. 21세기 지금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 전염병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적인 도구임을 인정한다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교훈과 지혜를 따라서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결과로서 재앙이 확산되었던 사건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염병”이 일어났었고 (민 16:46), 다른 나라들에서도 발생했으며 (창 12:17, 출 8:2), 일반적으로 모든 세상에서도 발병할 것이다 (계 6:8). 계시록에서 자주 등장하듯이, 온역이나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물론 구약성경 시대의 이스라엘이나 이집트나, 출애굽 과정에 있던 사건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흑사병과 같은 질병들을 죄를 억제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도구로서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예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재앙에 대해서 설명하셨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것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과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었나?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떨어져 죽은 열여덟 사람들은 어떠할까? 보통 사람들보다 더 악한 자들인가? 예수님은 각 사건들의 원인이나 분석들을 하지 않으신 채,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 이러한 재앙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요, 죄를 멀리하고,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교훈을 주셨다.

재난이 닥친 이 시대에 모든 지구상의 나라는 각국의 질병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노력해야만 한다. 지진이 발생하고, 폭풍우와 태풍, 산불, 폭설, 홍수 등 자연재해가 극심한 피해를 주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경각심을 갖고 교회를 찾아온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불행과 아픔에서 깨우쳤던 것들을 곧바로 잊어버리고 만다.

김재성 박사
▲김재성 박사(조직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