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글
▲지난 2002년 방한해 강연한 故 조지 오글 목사. ⓒ크투 DB
국내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조지 오글(Geoge E. Ogle) 목사가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91세 나이로 지난 15일 별세했다.

조지 오글 목사는 미국 듀크대학교를 졸업하고 연합감리회(UMC)로부터 1954년 선교사로 파송받아 인천에 정착했다. 그는 인천 산업선교를 시작했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으며, 가난과 비움, 헌신의 영성을 보여줬다.

특히 1974년 NCCK 10월 첫 번째 목요기도회에서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결국 그해 12월 14일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그는 미국에 추방당해 있는 중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2002년 제5회 인권문제연구소에서 한국 인권상을 수상했고, 2020년 6월, 국민포장을 수훈했다.

NCCK 측은 조지 오글 목사의 삶이 지역과 경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하면서, 부인 도로시 오글 여사과 유가족에게 위로와 애도 서신을 발송했다. 이 서신은 미 연합감리회(UMC), 기독교대한감리회(KMC), 미국 그리스도교협의회(NCCC-USA) 등에도 발송된다.

NCCK 측은 오는 24일 오전 11시 서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이제홀에서 추도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다음은 서신 전문.

도로시 오글 여사님께,

본회는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목사님께서 지난 15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91세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1954년 미연합감리교회의 선교사로 한국 인천으로 파송된 오글 목사님은 소외 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 예수의 삶을 본 받아 노동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롬 12:15) 삶을 사셨습니다. 인천산업선교를 시작하셨고, 늘 ‘노동자들의 인권보장 없이는 민주화가 실현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의 가난과 비움, 헌신의 영성은 당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투쟁하였던 많은 이들을 깊은 영감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진실을 말하기 두려운 시절, 1974년 본회의 10월 첫 번째 목요기도회에서 목사님은 인혁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중 가장 보잘것없고 약한 자를 통해 오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1974년 12월 14일, 불의한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셨지만, 미국에서도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셨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억울한 이들과 함께 하면서 불의에 저항하신 목사님, 우리 모두에게 참된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를 돌아볼 때, 목사님의 삶과 영성이 참으로 큰 가르침으로, 큰 은혜로 다가옵니다. 목사님의 삶이 지역과 경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유가족 위에 하나님의 평화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11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안재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