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 이슬람 유입에 분명한 정책 수립 필요
한국 문화, 사회질서와 충돌하는 요구는 사전 차단
개종자들 난민 신청과 신앙의 자유 위한 협력 사역

FIM국제선교회
▲FIM국제선교회
FIM 선교회(이사장 천환 목사, 대표 유해석 선교사) 창립 24주년 기념예배 후 이사 세미나가 16일 오후 서울 노량진 CTS 기독교TV에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성욱 교수(총신대 통합대학원 원장)가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이슬람에 대한 교회의 과제 변증’을 강의했다.

김성욱 교수는 “21세기 한국교회의 마지막 선교사역은 지상 최대의 미전도종족이 있는 이슬람권에 사는 무슬림 선교이다. 하나님 은혜로 한국교회는 세계 2위 선교사 파송국이 되어, 세계 선교의 선두주자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이슬람권 선교의 중요성은 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슬람 선교는 오늘날 한국교회 사역 가운데 무엇보다 선교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 2007년 아프간 피랍사태 이후 한국교회의 선교와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관심은 과거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이슬람권 선교사역은 더 많은 기도와 연구, 후원과 관심, 철저한 선교준비가 필요한 분야”라고 전했다.

그는 “개혁주의 선교신학 정립을 위해 존 칼빈의 신학과 목회사역을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칼빈의 제네바 개혁신학과 목회실천은 선교센터로서 브라질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 개혁교회를 전파했다”며 “칼빈의 유럽 선교사역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존 낙스, 프랑스의 위그노 운동, 독일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1563), 네덜란드 벨직 신앙고백서(1561), 영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9) 등으로 영향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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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성욱 교수는 “존 칼빈은 마르틴 루터만큼 실제적 이슬람 선교를 하진 않았지만, <기독교 강요>와 설교에 나타난 이슬람 선교에 대한 대응을 통해 칼빈의 이슬람 선교를 볼 수 있다. 칼빈은 이슬람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면서 무함마드는 배교자이자 우상숭배자임을 지적했다”며 “칼빈은 이슬람을 유럽 기독교에 대한 위협적 존재일 뿐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지만, 무슬림이 회개하고 바른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증오가 아닌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는 이슬람 선교에 있어, 다문화 시대를 맞아 이슬람 유입에 대해 분명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문화 다원화 시대를 준비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근절하는데 힘써야 한다”며 “외국인들의 문화와 언어는 존중해야 하지만, 한국 문화와 사회질서와 충돌하는 요구는 사전에 차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일방주의적 선교를 지양하고, 해당 언어가 가능한 전문 사역자를 확보해 다문화선교를 감당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날 선교 역사에서 나타난 이슬람의 주장들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해 그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이슬람의 변증은 꾸란과 성경의 내용이 상이한 경우, 꾸란 내용을 정당화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며 “무슬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선교의 걸림돌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유럽 성서비평학의 연구결과는 무슬림들의 변증을 더욱 공세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어 주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욱 교수는 “이슬람 포비아에서 선교 대상으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이슬람 자체의 교리적 모순과 한계의 틈새를 이용해 대응하고, 종교적 광신주의나 맹목적 열심의 문제점과 여성 인권과 자유 제한, 숙명론적 철학 등 이슬람의 약점 연구도 있어야 한다”며 “현지인들의 공허함이 복음으로 채워지도록, 조용하지만 체계적·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전문인 선교(Tentmaker)와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 난민 선교 등 다양한 접근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무슬림 개종자들의 난민 신청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협력 사역도 필요하다”며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대주의적 가치관으로 시작된 종교다원주의는 어떤 세력보다 선교 사역에 치명적 해악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성경 계시의 유일성을 변증하는 주제를 더욱 강조하고 관심을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슬람 선교를 위해 인내하며 기도하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 선교 후원 교회뿐 아니라, 현지 선교사들부터 기도해야 한다”며 “한국교회는 점점 증가하는 이슬람 선교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더욱 신실하게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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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석 선교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후 대표 유해석 선교사가 ‘이슬람의 확장과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화된 원인’에 대해 강연했다.

유해석 선교사는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세워진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노플은 1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으나, 1453년 콘스탄티누스 11세 때 오스만 투르크 메헤메드 2세에 의해 멸망했다”며 “기독교 지역은 모두 이슬람으로 대체됐고, 그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은 일부만 남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됐다. 동로마를 잃은 유럽은 동쪽 최전선을 잃고 자신들이 위협을 느끼게 되자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고 설명했다.

유 선교사는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 이슬람화된 것은, 먼저 오랜 전쟁으로 국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632년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 사망 후 이슬람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비잔틴 기독교 제국을 정복해 나갔다”며 “비잔틴 제국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636년 비잔틴 제국 영토였던 시리아를 정복했고, 637년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641년 전의를 상실한 채 고통받다 죽었다”고 전했다.

그는 “둘째로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네스토리안이나 이집트 콥트교 등 단성론자를 비롯한 많은 이단들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슬람 군대를 해방군으로 맞이했기 때문”이라며 “이단들은 비잔틴 제국에서 많은 세금을 내고 억압을 당하다 아라비아 반도로 이주했고, 이슬람 형성에 거름이 됐다. 존 위클리프는 이슬람의 발흥 원인이 다름 아닌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악행 때문이라고 여겼다. 가톨릭의 자만과 탐욕, 소유욕 때문에 이슬람이 시작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해석 선교사는 “셋째로 이슬람에는 ‘보호받는 백성’이라는 뜻의 ‘딤미’가 있다. 이슬람 치하에서 살며 이슬람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뜻하는 말”이라며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치하에서 ‘딤미’ 백성이 되어 영원히 2등 시민으로서 제한과 차별을 받아야 했다. ‘딤미’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이슬람 개종 아니면 죽음이었다. 이것이 이슬람권 전역에서 일어났기에, 기독교인들이 실리를 택해 개종하거나 과도한 인두세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개종했다”고 했다.

유 선교사는 “넷째는 십자군 전쟁 여파다. 비잔틴 제국은 이전보다 훨씬 비참해졌고, 십자군의 약탈과 횡포를 경험한 동방 사람들은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교황보다 차라리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십자군과 베네치아인들은 메헤메드 2세에 의해 함락될 때보다 더 많은 동로마 사람들을 죽이고 라틴 제국을 건설했다. 제4차 십자군은 비잔틴 교회와 라틴 교회의 동맹 가능성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개탄했다.

그는 “초대교회는 눈물과 기도, 헌신과 순교와 연합으로 예수의 삶을 실천해 거대한 로마 제국을 기독교 제국으로 변화시켰으나, 제도화되고 정치화된 교회는 권력과 힘을 얻기 위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기독교인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역사적 파행 국면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서 로마는 이슬람 군대가 몰려올 때까지 분열하고 서로를 이단시하며 돕지 않았는데, 이 또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동유럽은 약 200여년 동안 이슬람 치하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다”며 “오스만 투르크의 유럽 침공이 종교개혁의 배경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비잔틴 기독교 제국의 멸망은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됐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