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존중하는 사이 아니면서
사과할 생각 없는 남 대신 사과?
그런 사과 오히려 무례한 것일 뿐
전체 교회 대표하는 듯한 오해도

교회언론회 예배 포럼
▲송평인 위원(오른쪽)이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일반 사회와 언론의 입장에서 본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독교의 대응에 대해 언급했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먼저 광화문 집회와 전광훈 목사에 대해 일부 교회에서 대신 사과한 것을 거론했다.

송 위원은 “개신교는 독립적 분파(sect)들로 이뤄진 성좌(星座, constellation)와 같다. 더 밝게 빛나는 별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독립적인 별들의 모임”이라며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가 속한 분파는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소수 분파”라고 설명했다.

그는 “본래 교회(church)라는 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보편 교회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의 교회는 가톨릭(catholic)에만 있다. 가톨릭 교회와 같은 의미의 교회는 개신교에 없다”며 “이런 의미에서 개신교를 대표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기장 총회가 ‘교회가 사죄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을 때, 그 ‘교회’가 무슨 교회를 의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기장은 한신대를 중심으로 진보 신학을 추구하고 정치적으로 현 집권 세력과 가깝지만, 개신교 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분파”라며 “전광훈 목사가 개신교를 대표할 수 없듯, 기장이 개신교를 대표할 수 없다. 평소 서로 존중하지도 않는 사이인데, 사과할 생각이 없는 남을 대신해 사과하는 법은 없다. 그런 사과는 오히려 무례하고,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은 “기장이 오지랖 넓은 사과 대신 차라리 전광훈 목사를 비판하는 게 나았다”며 “차라리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는 목사가 어떻게 목사냐고 비판했다면, 남탓까지 내탓하는 ‘메아 쿨파(Mea Culpa)보다 더 개신교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한교총도 ‘일부 교회를 통해 지역사회 감염 확산의 통로가 된 것에 깊이 사죄드린다’고 했는데, 이 일부 교회가 한교총 내 교단에 속하지 않은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오지랖 넓은 사과”라며 “최근 소강석 목사의 기자회견 발언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성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나 사과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평인 위원은 “사과는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아니면 사랑제일교회가 속한 교단이나 연합체만 할 수 있다. 이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사과할 방법이 없다”며 “다른 교단이나 연합체는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가 잘못했다고 여긴다면, 사과 대신 더 통렬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장 예배 없는 온라인 예배 강요, 종교의 자유 침해
개신교 지도자들, 너무 쉽게 타협해 버린 측면 있어
흑사병 당시 루터 태도와 현재 코로나 비교, 부적절

이어 ‘예배의 자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개진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는 내적으로 신앙의 자유이면서, 외적으로 예배의 자유이다.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혼동해선 안 된다”며 “북한이나 중국 지하교회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는 있지만 예배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예배의 자유를 통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송 위원은 “예배의 자유가 없는 종교의 자유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종교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온라인 예배는 신앙의 자유에 가까운 것으로, 예배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며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가 가능한 상황에서 보완적인 예배로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현장 예배 없이 온라인 예배를 강요당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고, 이 명제는 쉽게 타협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려스러운 것은 예배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인식과 의지다. 지자체장들이 행정편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태도를 취하는데 있어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옥죄어서라도 ‘K방역’의 성과를 내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며 “그런데도 개신교 지도자들이 너무 쉽게 타협해버린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송평인 위원은 “타협의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것이 흑사병이 돌았을 때 루터가 취한 태도인데, 당시 비겁했다거나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며 “그리고 비유라는 것은 적절해야 한다. 루터 시대의 흑사병을 오늘날 코로나19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없앤 전염병으로 당시 치사율이 50%가 넘었다. 반면 코로나19는 전파력이 강하지만 치사율은 높지 않다. 코로나19를 흑사병처럼 생각해 루터의 태도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송 위원은 “전염병 문제는 치사율까지 고려해 좀 더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오늘날 흑사병 같은 치사율 50% 이상의 전염병이 돈다면, 일시적으로 온라인 예배로 만족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치사율이 2%도 안 되는 전염병에 현장 예배를 포기하고 온라인 예배로 만족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나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더 위험에 처하는 것은 진정한 이웃사랑이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실용적 태도가 아니다”며 “그런 식으로 하자면 아무데도 돌아다니지 말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어야 한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움직이면 어느 정도의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의 모순성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코로나 초기 신천지 사태 때만 해도 치사율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서 일단 조심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8월 사랑제일교회 사태 후 큰 교회들이 정부의 일방적 방역수칙에 굴복해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돌려버린 것은 개신교의 가장 비겁한 순간이었다”며 “그 와중에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작은 교회들은 다 쓰러져 갔다. 고작 1.7%의 치명률을 가진 전염병 앞에서 예배를 포기해 버린다면, 앞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것인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자기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의 허술한 방역을 하고 현장 예배를 강행한 사랑제일교회는 분명 잘못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이웃사랑이 아니라는 식의 절대적 태도를 버리고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한다면, 현장 예배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방역 기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회는 그런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한편으로는 비겁하다는 비판을 받은 루터의 실용적 태도이기도 하다”고 제언했다.

한국교회언론회 코로나 포럼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송평인 위원은 개신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집회와 시위를 방역 차원에서 비판하는 목소리는 있어도, 행정적으로 금지시키는 조치는 없었다”며 “좀 더 정확히 말해,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봉쇄(Lockdown) 조치는 취할 수 있어도, 봉쇄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 집회를 금지하는 조치는 취할 수 없다. 법원이 집회를 불허하고 경찰이 차량 벽을 쌓아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송 위원은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원천 봉쇄하는 정부가 예배의 자유 같은 건 우습게 보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는 만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거꾸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는 만큼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는 구조”라며 “지금 한국 개신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개신교의 정신은 정교분리다. 전광훈 목사의 잘못은 종교 집회 형식으로 정치 집회를 함으로써,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했다는 점”이라며 “현 정권의 행태에 불만을 갖고 개인적으로 정치 집회에 참석하는 개신교인들도 적지 않다. 전 목사는 종교 집회와 정치 집회를 혼동한데다, 방역수칙도 엄격히 하지 못했다. 그가 비난받아야 할 점은 바로 그 점이다. 정부가 전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구소한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