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스스로 정치세력화되는 일 경계해야
정치 외에도 기독교 영향력 전파할 길 많아
특정 정치세력 비호, 교회 스스로 고립시켜

트럼프 바이든 미국 대선
▲11월 8일 오후 6시 현재(한국시간) 미국의 주별 대선 개표 상황. 바이든이 선거인단 과반인 270명을 넘어 290명까지 확보했다. ⓒ폭스뉴스 캡처
◈미국의 정체성: 한국민과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갖는 의의

지난 3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뒤, 미국 정국은 내홍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 투표의 신뢰성 문제를 거론하며 각 주 법원에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소송을 걸고 있고, 향후 연방대법원 상고까지도 불사할 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선거 결과는 끝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해진 사실은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 미국의 정신적, 문화적 정체성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리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기를 거친 미국은 더 이상 앵글로-색슨 계열 백인 중심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명백히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제 히스패닉과 유색인종 중심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진정한 ‘이민자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실권은 여전히 백인 엘리트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공유하는 정서와 문화는 거의 확실하게 전통적인 백인 중심 정체성을 탈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구 구성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인종은 여전히 백인(74%)이다. 하지만 이 백인들 가운데 주로 도시 지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이 스스로 백인 중심 문화와 정체성을 포기하고 인종과 문화의 다원성을 수긍하면서, 미국 민주당이 표방하는 정치적 방향성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미국 내 이촌향도, 도시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점진적으로 더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바이든 미국 대선
▲바이든 후보의 지지기반 중에는 히스패닉, 흑인 및 기타 유색인종 외에도 점차 늘어나는 백인 지지층이 포함되어 있다. ⓒ페이스북
이번 미국 대선에서 확인된 미국 내 인구지리학적 변화는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단 미국으로의 이민, 이주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내 인종차별이 줄어들고, 거기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성은 국내에 거주하는 한국민 다수에게도 유리한 점이 많다. 우선 한국 집권여당이 진보정치를 표방하고 친중 성향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역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중국과 보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민주당 후보 바이든이 집권하게 될 경우 우리 정부의 정책적, 외교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이 지금보다 훨씬 강경한 입장을 펼치면서 남북관계가 더 심하게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 기독교인들은 민주당의 정치적 가치가 점점 더 크게 환영받는 미국의 현실에 다소간의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이래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가치는 그들을 지지하는 진보정치 성향 시민들의 사고에 영합해,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점차 외면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교관계: 네오콘의 실정(失政)으로 본 정교분리 원칙의 중요성

현재 상황으로만 보면, 미국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성이 마치 오래 전부터 기독교적 가치를 외면해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도 1990년대 이전까지는 미국의 전통적인 개신교적 가치와 문화를 중시해 왔다. 당시 민주당이 추구하던 인종 간 평등과 이민자 보호 정책은 모두 기독교적 인권 및 평등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최근 공화당을 지지해온 플로리다, 조지아, 아칸소, 미시시피, 테네시, 사우스 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텍사스 등 남부 지역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한결같이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1976년까지만 하더라도 독실한 남침례교 신자로서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이력이 있다.

트럼프 바이든 미국 대선
▲1976년 지미 카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선거 결과. 당시 바이블벨트 전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다. ⓒbritannica.com 캡처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미국 민주당은 기독교적 가치를 외면하는 진보 성향 정치를 표방하기 시작했고, 이에 남부 바이블벨트에 속한 주 상당수가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1980년대 민주당 내부의 우익 보수 세력으로서 남부의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신보수주의자들, 소위 네오콘(neocon) 멤버들의 대거 당적 이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이 공화당에 합세하면서 공화당 내부에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기독교적 소명을 실천하는 미국 정치”라는 개념이 점차 득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상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본격적으로 현실화된다.

딕 체니(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국방장관), 존 볼턴(UN 대사) 등 네오콘 멤버들이 부시 행정부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지지가 공화당으로 집중되었다.

네오콘의 득세는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양날의 검과 같았다. 네오콘이 장악한 미국 정부는 여러 측면에서 기독교적 가치들을 정책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네오콘 인사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미국우월주의를 내세우고 이슬람 국가들과 종교적 갈등을 심화시켜 테러와 전쟁 상황을 초래하는 등 미국과 전세계에 큰 불행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불행한 사태는 미국의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가 호전성과 배타성을 가지고 정권과 결탁하는 세력이라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적인’ 기독교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정교분리 원칙을 깨고 전쟁마저 불사하는 믿음을 고수한다는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트럼프 바이든 미국 대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담화 중인 빌리 그래함 목사. 빌리 그래함 목사는 ‘대통령들의 목회자(Pastor to the Presidents)’라 불리울 정도로 다수의 미국 대통령들에게 신앙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다. ⓒGEORGE W. BUSH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이러한 이미지는 백악관에 자주 출입하며 역대 대통령들에게 신앙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빌리 그래함 목사에 의해 강화되었으며, 그를 통해 삶이 변화되었다고 소회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물론 빌리 그래함 목사는 미국의 위정자들이 신앙의 양심에 합당한, 공의와 평안을 중시하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도록 조언하려 했을 뿐이다.

전쟁과 종교갈등을 조장한 책임은 빌리 그래함 목사나 보수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 있지 않았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오해를 증폭시킨 것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지지를 악용하고 신앙의 양심에 위배되는 정치를 주도한 네오콘 인사들의 책임이다.

이처럼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한 네오콘 세력의 호전적 성향 때문에 복음주의 기독교, 기독교 우파에 대한 세계인들의 시각은 회의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세간에 널리 퍼지게 된,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와 반감은 이번 선거 결과를 초래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종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전면 불복하고 있는 이상 대선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은, 교회가 정교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 못하고 정권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일 때, 해당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짊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실책은 교회가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 역시 주지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바이든 미국 대선
▲지난 6일 당선이 유력해지자 부통령 해리스 후보와 함께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는 조 바이든 후보. ⓒ페이스북
교회는 스스로 정치세력화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이전 논평에서 언급한 대로, 종교개혁 당시 유럽과 같이 일상의 삶 전반이 특정 정치세력이나 종교 집단에 강력하게 지배되던 시대에서조차 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앙과 정치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했다.

하물며 사회가 다원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정치만이 아니라 각종 사회적, 문화적, 공동체적 가치들에 의해 다각적으로 영향을 받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굳이 교회가 정치세력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교회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기독교적 영향력을 전파하는 길은 과거보다 훨씬 넓게 열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성경적 가르침을 거부하면서까지 특정 정치세력을 과도하게 비호하는 것은 교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관심과 지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분별있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한국과 미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대다수는 교회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상황을 바라고 그를 지지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신앙의 삶을 영위하고 교회의 책무를 담당하는 데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적 방향성을 따르는 지도자를 원했을 뿐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