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도올 김용옥 교수. ⓒ크투 DB
금년 전 세계적 재앙이 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원인에 대해, 천재냐 인재냐 하는 의견들이 그간 사회 각층에서 전문가들을 통해 매스컴을 타왔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식별로는 어느 것이라고 100% 꼭 집어 단정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기독교계 내에서도 이를 보는 시각이 둘로 나뉘어진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인재를 주장하는 측에선 천재를 주장하는 측을 성토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을 본다.

재앙에 대해 천재로 보는 관점에선 말씀대로 살지 못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재로 보는 관점에선 이성대로 살지 못한 인간의 무지한 삶의 방식이 낳은 결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해결책에 있어 전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 회개를, 후자는 자연 앞에서 무지적 횡포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입장이 짙다.

후자가 보기에 전자는 현실적인 타개책을 등한시한 채 맹목적인 신앙 탓으로 돌리는 인상을 받는 것 같은데, 예수께서 재난으로 인해 무죄한 자들이 희생당한 것을 언급하신 예도 있지만, 전례없는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재앙의 요인에 이 시대적 상황이 이제껏 여실히 증거해온 바, 총체적 죄악상이 결코 비껴갈 수는 없는 것이리라.

하나님께서 징계의 도구로 쓰시는 것은 비단 역병뿐 아니라 전쟁이나 기근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인간 세상에서 이런 징벌이 일어나는 현상엔 당연히 자연법칙인 인과법칙이 따르기 마련이다.

과학과 교통 등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 이런 자연법칙에 대한 해석이 더욱 용이해지고 다양해져, ‘어떻게’에 대한 과학적 규명 또한 빈번하고 자세히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 즉 하나님을 천지만물 다스리시는 우주와 전 지구적 주인으로 늘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인간의 이성이 발달할수록 자연법칙적 원인 결과에만 눈이 쏠리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앙을 마주해서도, 천지만물에 대한 인간의 도리와 책임론만 전적으로 외치는 부류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이 머리를 숙이고 죄를 자복해야 할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자연’이 되거나 ‘자기 자신’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100% 인간의 책임론만을 주장하는 배경엔 결국 인간이 만든 문제를 인간이 100% 온전히 해결하고야 만다는 자신감이 전제로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아주 적합한 참고문헌이, 최근 도올이 때를 만난 듯 선전하고 있는 바로 ‘노자’이다. 노자 사상 역시 여느 동양사상과 궤를 같이하는, 인간과 자연 본위적 사상이다.

성경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연만물을 잘 돌보고 다스릴 권한을 위임하셨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경우처럼 인간의 다스림에는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할지언정 결과에 대한 완전한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제와 위기 속에서 인간이 의지의 대상으로 구하고 우선적이고 종국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자리는 하나님이 계신 자리일 수 밖에 없다.

자연적 환경을 인간의 ‘대자연 자기결정권’에 예속시키는 것엔 이렇듯 엄연한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와 함께 요즘 절대자를 도외시한 인본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전적 ‘자기결정권’의 부르짖음이 기독교계 한 켠에서 드세지고 있는 현상이 시대적 암울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창조자의 태아의 성(sex) 결정권’을 무시한 채 인간이 자기 성 정체성을 선택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창조자의 ‘생명 잉태 축복권’을 무시한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으로, 이런 류의 비성경적인 기만적 구호를 세상 풍조에 맞춰 보편적 가치인 양 내세워 동성애와 낙태라는 반인륜적 죄를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이들의 단골 표현인바 “‘반공’을 국시로 다른 목소리를 모조리 억압한 시대의 그림자가 ‘동성애’ 프레임으로 교회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뉴스앤조이 기사)”란 주장에서 보듯,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자기들의 동성애 옹호가 ‘용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은연중 힘주어 시사하고 있는 형국이니, 참으로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성경에 나오는 동성 성폭력 장면을 동성애자 행위로 곡해해 설교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뉴스앤조이 기사)”라는 내용을 생각해 보자.

이성 성폭력이 생기는 배경엔 이성애란 보편 상식적 상황이 전제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저들은 이와 똑같은 등식을 동성애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저들은 동성애를 불문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보편 상식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서 동성 성폭력만을 끄집어내 문제시하는 셈이니, 참으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해당 내용을 읽을 때, 얼마나 그 시대에 동성애가 만연했으면 동성 성폭력 사건이 그토록 다반사로 벌어지게 되었나 하는 이성적 추론이 가능하고, 그런 전체적 사회상에서 하나님의 징계가 일어난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들의 이런 넌센스적 주장은 한 마디로 말씀에 대한 콘텍스트적 이해가 없는 소치라고밖에는 달리 납득이 안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동성애 옹호 프레임과 동등한 선상에서 교회와 사회 내 여성 차별의 이슈를 연계시킴으로써, 한국교회 내 개선돼야 할 성경에 바탕한 여성의 인권 존중이라는 건설적 가치를 오도 훼손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사회적으로 비주류적 약자인 소수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동성애자를 여성의 경우처럼 사회적 약자로 시사하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크리스천이라면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지양하면서 동성애자를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동성애자에 대한 진정한 인권 회복이고 사랑의 방법이며 세상을 비추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인권 존중은 이와 전혀 다른 스토리이다.

생각컨대 우리가 요즘 직면하는 기독교 정체성의 위기 요인 중 하나는, 선악의 개념을 미추의 개념으로 치환하여 그릇된 인식의 전환에 열을 올리는 도올 식의 노자적 주장같은 류가 오랜 세월 암암리에 파고들어,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취약한 기독교인들의 의식 저변에 개념 실종과 붕괴를 가져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결과는 사랑도 의무도 책임도 양심도 도덕도 진실도 선함도 영원한 실체도 결국 다 없어지고 마는 개념적 아나키즘이요, 신앙적 아나키즘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는 말씀의 체험과 능력이 요청된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7-8)”.

박현숙 목사
인터넷 선교 사역자
리빙지저스, 박현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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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료 후 뉴욕 나약신학교와 미주 장신대원을 졸업했다. 미주에서 크리스천 한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