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모두에게,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선물
현 교회엔 문학 필요, 고결한 생각 씨앗 심고 키워야
예수님의 생각을 우리 삶으로 드러내는 법도 배워야
미움 가득한 곳 화해의 손, 핍박과 아픔 있는 곳 위로

자신의 생각 깃발처럼 높이 들고 휘젓는 사람 아니다
문학과 만남으로 더 깊은 신앙의 세계 들어갈 수 있길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이정일 | 예책 | 396쪽 | 20,000원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는 비대면 예배를 진행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아직까지 온전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대면 예배가 허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는 교회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게 된 것일까?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흑인 죄수 레드는 이런 말을 했다. “이 담들이 참 웃긴 게… 처음엔 싫지만, 차츰 길들여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게 길들여진다는 거야.” 흑인 죄수 레드의 말대로, 한국교회가 코로나19와 정부에 길들여진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다. 좋은 것에 길들여진다면 긍정적이다. 나쁜 것에 길들여진다면 부정적이다.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은 성경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다. 분명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기준이고 최고의 가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오랜 시간 성경만 읽고 성경에 밑줄을 그은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나 편협하다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품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만 한다.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며 해답을 제시하는 작가가 있다.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를 쓴 이정일 목사다.

저자는 평생 문학을 공부했고 박사 후 신학까지 공부했다. 스스로 문학과 인생 속에 파묻힌 하나님의 이야기를 캐내는 광부라고 말 한다.

저자는 왜 신앙이 좋아질수록 삶이 바빠지는지, 왜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생각이 좁아지는지, 왜 성숙이 아니라 성공을 목표로 하는지, 말씀을 캐며 물었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지만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려면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하며, 믿음은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지만 이것도 배워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은 소박해도 생각은 고결하게’를 인생철학으로 삼고 살았다. 말씀을 따라 살며 작은 이익에 비겁해지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짙은 안갯 길을 걷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매일 내가 한 선택을 의심하며 흔들릴 때, 문학은 성경 말씀을 일깨워주곤 했다.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라’는 시인의 고백이 큰 힘이 되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있을까? 문학이 주는 유익에 대해 알고 있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 문학과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문학을 왜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이 읽어야 하는지 문학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 인간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문학을 모르면 자신의 삶에만 둔감해지는 게 아니다. 사회와 하나님에 대해서도 함께 둔감해진다.

문학은 모든 인생의 끝이 하나님을 향한 여정임을 상기시켜 주지만 우리 가운데서 이것을 이해한 사람은 적다. 바다를 보고 감동하지 않는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문학을 모르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문학을 모른다고 해서 신앙생활에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문학을 알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다.

문학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문학은 등장인물을 통해 잘 사는 인생이 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문학을 읽으며 생각의 자극을 받으면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서 펼치며 살게 된다.”

문학은 단순히 문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나와 이웃을 만나게 된다. 세상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 깊게 알게 된다. 성경도 가만히 보면 여러 가지 문학의 장르로 구성이 되어있다.

한재욱 목사는 “인문학은 명답이고 성경은 정답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문학이 성경처럼 정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세상이 잊어버린 질문을 일깨운다고 말한다.

“문학은 우리에게 삶이란 총합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라고 가르친다. 인생을 불확실하기에 신앙의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문학을 알면 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먹구름을 끼게 하는지, 왜 어떤 이는 누군가의 먹구름 속에 무지개가 되는지를 알게 된다.

문학은 성경처럼 세상에 답을 제공하지 않지만, 세상이 잊어버린 질문을 일깨운다. 그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사람들은 문학을 읽기보다 매스컴에 익숙해져 있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치지 않는다. 매스컴은 팩트만을 알려준다.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하지만 문학은 서사를 들려준다.

“문학은 매스컴이 놓친 것을 서사로 들려준다. 소설은 상상이고 현실과 많이 다르긴 하지만 작가가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독자는 무지에서 깨어난다. 문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발견이고 설명이기에 작가의 시선은 늘 시대와 맞닿아 있다.

이정일
▲푸른 가을날, 이정일 목사가 좋아한다는 괴테 동상 앞에 섰다. 그는 책에서 “우리는 흔히 과거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지만, 미래는 맡기지 못하고 자신이 결정할 때가 많다.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오직 자신의 미래를 주님께 맡기는 사람만이 ‘믿음의 창’을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작가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시대를 들여다보는 창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아파한다. 자신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한, 사람은 이웃의 삶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한 룰을 무시하는 세상 속에서 작가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서사로 펼쳐낸다. 그래서 사람과 시대의 흐름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림으로써 독자들이 삶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과 일상이라는 두 개의 텍스트를 주셨다. 이 두 텍스트를 잘 연결시킬 수 있어야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저자는 문학은 바로 이 일상이란 텍스트를 읽는 연습이라고 말한다. 즉 문학을 읽으면서 작품 속 메시지를 해석할 줄 알게 된다면 평범한 일상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얼마나 섬세하게 살피고 계시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코로나19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은 생각보다 더 빨리 일상의 삶 가운데 파고 들어왔다. 앞으로 인공 지능이 사람의 많은 것을 대신할 것이다.

<에이트>에서 이지성 작가는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의 핵심은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문학을 통해 공감능력과 상상력을 배울 수 있다.

“문학적 상상력을 배우지 못하면 지금도 편할지 몰라도 천천히 도태될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인공 지능이 많은 것을 대신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양보다 질이 중요한데, 그 질은 상상력으로 확인될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성경을 읽지만, 성경도 우리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 성경도 우리를 읽어야 한다. 이것을 놓치면 성경을 읽으면서 늘 교훈만 찾게 된다. 우리에게 영성도 필요하지만 감성도 필요하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부족한 것은 감성이지, 영성이 아니다.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문학은 그것을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문학은 허구적 인물을 통해 각자가 자신의 영혼을 보게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나와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 준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찬밥 신세,
영성이나 성경 지식 부족해서 아니야
타인 이해할 감성 부족, 문학 읽어야

오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영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성경적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감성이 부족해서다. 부족한 감성을 채우기 위해서는 문학을 읽어야 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있다. “아무리 신실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기도의 사람이라는데 깊이가 없다면 문학을 읽어야 한다. 허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신뢰하여 우상처럼 믿곤 한다. 우리의 최애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해석하는 내 관점일 때가 많다. 그것을 에고(ego)의 집착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따뜻한 감성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아픔과 자신의 편견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시대의 변화를 읽는 분별력 있는 눈도 필요하다.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다면 긴장해야 한다.

문학은 이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문학은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으라고 일깨운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용감해지고 너그러워진다는 걸, 더 행복해지고 더 웃음이 많아진다는 걸 문학을 읽으면 알게 된다.”

문학은 특정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아니다. 모두에게 주신 선물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선물이다.

문학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문학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지 못한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 가운데는 아직 문학이 하나님의 선물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지금 한국교회엔 문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고결한 생각의 씨앗을 심고 키울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생각을 삶으로 드러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느 시대건 그리스도인은 이런 삶을 살았다. 미움이 가득한 곳엔 화해의 손을 내밀었고, 핍박과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위로하며 삶을 회복시켰다. 자신의 생각을 깃발처럼 높이 들고 휘젓고 다닌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통찰은 문학에 대한 수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