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들 위한 공개적·강권적 오순절 임재 주장해
오늘날에도 분명히 필요에 따라 역사하신다 이해
말씀 전파 떠나 남용 말라는 것, 은사 중지 뜻 아냐

기독교학술원 85회 월례포럼
▲전대경 박사(왼쪽)가 발표하고 있다.
‘케직운동과 피어선 영성’을 주제로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85회 월례포럼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화평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김영한 박사의 개회사 이후 전대경 박사(평택대 및 성결대 강사, 편안한교회 담임)가 발표하고 이은선 박사(안양대 교수)가 논평했다.

전대경 박사는 ‘케직(Keswick) 사경회의 은사 지속론적 성령이해에 대한 개혁신학적 정당성 탐구: 칼빈, 루터, 어거스틴의 기적 및 방언 이해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전 박사는 “1905년 케직 사경회를 기점으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케직 운동은 오순절과 성결 운동의 모태가 됐다”며 “피어선 선교사는 이 새롭고 논쟁적 문제인 방언에 대해 성경에 입각해 입장을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많은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피어선은 방언을 다른 은사에 비해 높이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방언이 성령세례의 표시(the initial physical evidence)라는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을 거절했다”며 “1900년을 전후로 케직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던 피어선을 통해 본 케직 사경회의 성령 이해는, 좁은 의미에서의 (프린스턴 학파의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보다 넓고 오순절 성령론보다 좁지만, 웨슬리안의 완전성화론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성결의 영성을 추구했다”고 정리했다.

전대경 박사는 “칼빈, 루터, 어거스틴이 기적을 초대교회 사도 시대에만 국한된다고 말한 것은 그 이후 성령의 은사와 기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며 “이는 정경 이전에 불신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공개적·강권적으로 임하신 오순절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성령 하나님은 국지적으로 교회를 위해 당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하신다고 이해했다. 즉 은사를 ‘말씀의 전파’와 떠나 남용하지 말라는 것이지, 은사가 완전 중지됐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전 박사는 “칼빈, 루터, 어거스틴의 ‘기적’과 ‘방언’에 대한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은 (오늘날 기적이 완전히 중지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적중지론’과 (방언이 구원의 유일한 표식이라고 주장하는) ‘은사지상주의’ 양측을 모두 꼬집어 지적하는 듯 들린다”며 “후자 입장에서 전자는 방언도 못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전자 입장에서 후자는 마귀 방언을 하는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하지만 칼빈, 루터, 어거스틴은 양 극단 모두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칼빈을 진정 따른다면, 중지론적 칼빈주의 개혁신학에서 더 이상 ‘오늘날에 성령의 은사와 기적은 중지됐고, 방언을 포함한 이적은 마귀가 주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이는 칼빈으로 하여금 마귀방언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칼빈을 사랑하는 칼빈주의자로서 칼빈을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오순절 신학(특히 은사지상주의)에서도 ‘방언이 구원과 성령 세례의 유일한 초기적(the initial) 증거’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았다는 유일한 표식이 방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방언을 하지 않으셨는데, 그러면 우리 주님도 구원받지 못한 것인가”라고 밝혔다.

기독교학술원 85회 월례포럼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전대경 박사, 김영한 박사, 이은선 박사.
전대경 박사는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정통주의 신학자들로부터 단편적 부분들만 편집해 교리체계를 만들고 이를 무기로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정신에서 동떨어진 주장을 지속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며 “무분별한 열광주의 역시 (무당 같은) 기복적 토속 신앙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영적 교만에 취해 자칫 방종하게 되기 쉽다”고 꼬집었다.

전 박사는 “양 극단 모두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각자의 처소에서 어두움을 밝히는 거룩한 작은 등불이 되고, 그곳들을 썩지 않게 하는 작은 소금 한 줌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인다”며 “케직 성령론은 그 어떤 것도 새롭게 주장하지 않았지만, ‘기본에 가장 충실하라’고 말한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이 강조한 것처럼, 성령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초자연적으로 일하신다. 우리는 그 능력 앞에 영적으로 더 겸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논평에서 이은선 박사는 “이 논문은 방언에 대한 칼빈의 주장 중 그동안 간과됐던 것들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며 “다만 이러한 것들이 방언기도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러한 기도를 권장했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 박사는 “이를 칼빈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예외적 현상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더라도 그것을 공예배에서도 인정한다고는 보기 어렵고, 사적으로 기도하는 경우 방언이 나온다면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며 “은사를 인정하는데 체험은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그러나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배우고 지금까지 믿어온 교리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것은 신비의 세계이고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이론으로 인정하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순절 운동가들도 개혁주의 노선에서는 개혁주의 입장을, 웨슬리안 입장에서는 웨슬리안의 입장에서 오순절 운동의 근거를 설명한다”며 “그들도 자신들의 자리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오늘 논문이 칼빈과 루터와 어거스틴을 통해 하는 논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발표자의 입장에 동의하도록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기독교학술원 85회 월례포럼
▲참석자들의 기념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성령의 은사, 성화로 열매맺어야

앞서 김영한 박사는 ‘케직 영성은 성령의 은사란 높은 성결의 차원(성화)에서 열매맺어야 함을 강조했다’는 제목으로 개회사를 전했다.

김 박사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동성애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이슈와 더불어 사회적 성화의 노력에 관심을 갖는다”며 “이런 점에서 1875년 영국 케직에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케직 사경회는 더 높은 차원의 성도의 삶을 추구하는 성결운동으로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도 동성애 및 차별금지법 제정 물결을 막아내는 영적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케직운동은 은사보다는 성화를 추구했다. 성화란 회심시 시작돼 일생동안 성장하는 과정으로 봤으며, 성령세례는 이와 별개의 능력부여(Endowment of Power)라고 주장했다”며 “케직 사경회의 성령이해는 자기 부정, 성령 충만,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 체험(성령 재충만), 죄를 이기는 내면의 거룩함과 봉사로 나아가는 외면적 거룩함(성령을 따르는 삶)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전했다.

둘째로 “케직 지도자들은 무질서하게 보여지는 방언에 대해 경계했으나, 나중에 인정했다. 사실 당시 케직 지도자들은 은사주의자들의 예배 중 방언과 무질서를 하나님의 영감이라기보다는 사탄의 영으로 생각했다”며 “피어선도 한때 은사주의를 매우 경계했으며, 현대 방언의 현상들은 진짜 방언을 악마가 모방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후일 스스로 집회 때 설교하다 자신도 모르게 방언으로 설교했다”고 설명했다.

셋째로 “케직의 성령론은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개혁전통의 은사 지속론을 계승하고 있다”며 “로마서 8장 26절과 관련해 칼빈은 방언을 인정하며, 루터도 성령의 역사를 통한 방언을 인정한다. 이들의 입장에서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케직사경회의 성령론은 개혁주의적인 정당성을 얻는다”고 했다.

넷째로 “케직 사경회는 성령의 지속적 역사를 강조하면서 높은 차원의 성결의 삶을 추구했다”며 “피어선은 오순절주의자들의 예배 중 무분별한 방언과 무질서에 대해 계속 경계했지만, 성령 체험은 선교지와 국내 교회의 부흥과 성도의 내적 삶을 풍성하게 하며 끊임없는 힘을 제공하는 영적 샘물이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된다고 역설했다”고 했다.

끝으로 “케직 성령론은 중생과 동시에 성령세례를 말하고 성령 은사의 지속성을 강조함으로써 개혁신학 전통 속에 있다”며 “성화의 사건은 웨슬리안주의자들처럼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생의 과정이며, 인간의 완전 성결론에 부정적 입장이다. 성도의 성화는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고 평생을 걸쳐 이루어지므로, 끊임없는 성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