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어학사전에서 ‘길’이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합니다. 가나안이란, 성경에 나오는 옛 나라의 이름이며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쪽지역을 말합니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스라엘 민족이 이곳에 거주하던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치고 정착한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하신 약속의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 대부분 지역은 날씨가 건조하고 산과 바위가 많은 반면, 바다를 따라 어우러져 있는 해안 평야와 강 유역에는 비옥한 농지가 풍부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던 때, 그 땅을 정탐하러 보냈던 사람들이 가져온 과일( 포도, 석류, 무화과)은 가나안 땅의 비옥함을 증명해주는 실과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남쪽 이집트에서 시작해 북쪽으로는 시리아와 페니키아, 그리고 동쪽으로는 옛 바벨론 제국에서 뻗어있던 무역로 가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작은 면적의 땅이었으나 고대 많은 나라 중 비교적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비슷한 면이 많은 나라들입니다. 외적의 침입을 많이 받은 나라이고, 미신과 우상들이 많았던 나라라는 점도 어쩌면 비슷합니다.

하지만 민족성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외적의 침입을 많이 받았지만, 오래도록 억압 가운데 신음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비롯하여 애굽에서 고단했던 종살이를 무려 430년 동안 했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억압과 구속 가운데 늘 피곤한 삶을 살았던 민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종살이 430년 동안 민족의 해방을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신음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50년쯤 넘어갔을 때는 아마도 포기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같이 기도하고 매달린 끝에, 고단했던 아픔인 430년의 종살이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모세는 유아 시절부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40년이란 궁중 생활 속에 애굽 문화를 체험하면서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배웠지만, 40년이란 광야 생활을 통해 철저히 낮아진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 시기까지 80년이라는 세월을,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오래도록 연단하시며 철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의 생활을 통하여 430년이란 애굽의 때를 지우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신뢰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문화와 관습에 젖은 이스라엘 민족을 개혁하기 위해, 정탐꾼을 세우셨습니다.

이를 통해 여호수아와 갈렙이라는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 2명을 발견합니다. 그 두 사람은 긍정적인 믿음과 용기 있는 추진력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십계
▲광야로 나서는 모세와 히브리 민족의 모습. ⓒ못생긴나무 제공
하나님께서 아끼고 사랑했던 모세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느보산에 이르러,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사모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바라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모세는 철저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집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 가나안에 입성하기 위해 열하루 길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40년이라는 긴 노정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겪는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맛보는 참담함이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출애굽 역사를 알고 있지만, 출애굽에 담겨져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낸 소설 같은 이야기로만 기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에는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인 모세의 지도력을 의심치 말고 순종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의심하며 심지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까지 만들어 숭배하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물욕에 눈이 어두워 갖지 말라는 전리품을 몰래 숨기는 사태로 말미암아, 아간은 가족들과 함께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피곤한 역사도 만들어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늘 부정적인 사고와 참을성 없는 성격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위를 시키기 위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추운 밤에 이동을 위해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를 따라 만나를 제공하시고, 고기를 달라고 소리치는 백성들에게 메추라기를 지겨울 정도로 주시기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요구와 거침없는 난폭한 행동들을 거침없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땅, 약속의 땅에 이르기 전, 십계명을 비롯하여 제사장들이 해야 할 사명과 병을 얻었을 때와 죄를 지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법과, 이스라엘 민족들이 해야 할 사명의 법들을 준비하시고 실천하도록 명령을 하십니다.

열두 정탐꾼들 중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매우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자신 있게 말합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은 교회 안에서 소수의 목소리라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소통은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품고 나누어야 합니다. 때론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옛 우리 어른들의 지혜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특히 가나안 땅을 알기 전부터, 인간은 땅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의 첫 이름인 ‘아담’은 땅과 흙을 뜻하는 ‘아다마’란 히브리어를 뿌리로 합니다.

이 땅 위의 삶은 먹고 살기 위해 서로 으르렁대며 미움을 쌓아놓고 시기와 질투도 하며, 심지어는 남이 잘 못되길 바란다는 기도 아닌 기도도 바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참으로 지저분하고 동물의 세계도 보다 못한, 얄미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씻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땅 위가 아닌 다른 곳을 필요로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늘, 그리고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늘은 머리 위,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박혀 있는 물리적인 하늘만이 아니라, 속된 땅 위에 사는 인간을 정화시켜 주는 고결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속에 나라와 민족의 억압을 한탄하며 하루 속히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인처럼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다짐하며 ‘우러러’ 보는 숭고한 하늘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에게 하늘은 또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머무시는, 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거룩하고 고매한 영역입니다.

이런 하늘 아래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인간의 삶은 땅 위에서 펼쳐지지만,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아야 살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하늘이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그 곳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그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40년의 긴 세월 가운데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감내하며, 가나안의 축복을 맛보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확실히 믿는 신앙입니다. 부정과 부패,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모함하는 것들을 배척하는 것만이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등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가슴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임을 반드시 배워야 하겠습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출 23:1-3)”.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들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촉구하고 사회 정의와 사회 복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회 정의를 추구해 나가는 일은 개개인의 올바른 도덕과 공정한 처신을 기초로 하며, 사회 복지를 구현해 나가는 일은 경제적 고통과 신체적 압박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물질과 따뜻한 배려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요 사랑입니다.

한국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하면서, 그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오늘도 감사하며 서로 사랑하는 신실한 믿음으로 축복의 땅을 차지하여 늘 기쁜 찬송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특히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과정들의 교훈을 잊지 말고, 매일 자신을 뒤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아파하는 세상을 위해 믿음을 모아 축복의 땅, 가나안을 함께 차지하며 누려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