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강동희
▲강동희가 용서를 구하는 프로그램. ⓒSBS 캡처
TV 어느 프로에서 과거 이름을 떨치던 농구선수이자 감독이었던 강동희 씨가 출연했습니다. 유명세를 타던 그는 감독으로 재직하던 2012년 승부조작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오랜 후배가 건네주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8년이 지난 지금 마이크를 들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찾아가며 인터뷰를 청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일 이후 농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어머니와 아내, 그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아주었던 옛 스승, 감독 시절 자신만을 믿었던 선수와 팬들을 만나 떨리는 입술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옛 스승은 제자 강동희에게 그 일 이후 무엇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면서 가만히 있지 말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찾고 용서를 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고 말합니다.

하인리히 아놀드는 그의 책 <생각지킴>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분은 서로 죄를 자백하십시오’라는 분명한 말씀을 듣고서도, 자백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너무 가톨릭적 개념이라고 무시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과 비밀스럽고 인격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분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알고 계십니다(히 4:13). 단순히 우리의 죄를 깨닫는 것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서로 고백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 날 수 없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4세기 이전 초대교회는 ‘공적 회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도 길선주 장로의 공적 회개가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사람입니다. 약 1년 전 한 친구가 임종하면서 가족을 돌보아 달라고 맡긴 미화 100달러 상당의 금액을 나는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가 끝난 후에도 회중들은 새벽 2시까지 남아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공적 회개(public confession)의 옳고 그름과 그 폐해를 따지자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일이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말하려 함입니다.

오랜 교회생활을 돌아보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할 때, 죄의 힘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음을 되새깁니다.

맑은 가을날, 가까운 누군가에게 마음 한쪽 담아두었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어떨까요? 그가 누구이든.

서중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다빈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