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가 용서를 구하는 프로그램. ⓒ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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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8년이 지난 지금 마이크를 들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찾아가며 인터뷰를 청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일 이후 농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어머니와 아내, 그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아주었던 옛 스승, 감독 시절 자신만을 믿었던 선수와 팬들을 만나 떨리는 입술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옛 스승은 제자 강동희에게 그 일 이후 무엇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면서 가만히 있지 말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찾고 용서를 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고 말합니다.
하인리히 아놀드는 그의 책 <생각지킴>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분은 서로 죄를 자백하십시오’라는 분명한 말씀을 듣고서도, 자백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너무 가톨릭적 개념이라고 무시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과 비밀스럽고 인격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분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알고 계십니다(히 4:13). 단순히 우리의 죄를 깨닫는 것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서로 고백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 날 수 없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4세기 이전 초대교회는 ‘공적 회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도 길선주 장로의 공적 회개가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사람입니다. 약 1년 전 한 친구가 임종하면서 가족을 돌보아 달라고 맡긴 미화 100달러 상당의 금액을 나는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가 끝난 후에도 회중들은 새벽 2시까지 남아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공적 회개(public confession)의 옳고 그름과 그 폐해를 따지자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일이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말하려 함입니다.
오랜 교회생활을 돌아보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할 때, 죄의 힘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음을 되새깁니다.
맑은 가을날, 가까운 누군가에게 마음 한쪽 담아두었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어떨까요? 그가 누구이든.
서중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다빈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