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한 세상의 비판적 시선 확인할 수 있어
신앙의 가치, 어떻게 현실 가운데 변증할 것인가
성도들 믿음의 지적 일관성 확립, 윤리적 실천을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기독교 신앙을 고대 밀교인 미트라교에 빗대어 묘사한 TV 시리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기독교와 이방종교: 고대 미트라교에 빗대어진 기독교

성경의 요한계시록과 창세기를 SF로 각색한 TV 시리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는 로마 제국에서 유행했던 고대 밀교, 미트라교가 등장한다.

물론 작품 속에 등장한 미트라교는 이름만 같을 뿐, 역사상 실존했던 고대 종교와는 그 내용이나 성격이 크게 다르다. 실상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 등장하는 미트라교는 중세 가톨릭교회와 그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무슨 이유로 미트라교라는 이름을 가져왔으며, 왜 이 고대 밀교의 이름으로 중세 기독교의 모습들을 표현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려면, 먼저 미트라교가 어떤 종교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이빗 월쉬의 저서 <고대 후기의 미트라교>(The Cult of Mithras in Late Antiquity)에 기록된 미트라교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기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페르시아 지역의 고대 종교적 요소들(신 이름 미트라, 해와 달 숭배)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1세기 말부터 5세기 초까지 주로 로마 제국 서부, 오늘날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믿었다. 군인들과 세관원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각지에 그들의 소규모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2. 최고신 미트라와 하위신 솔(Sol, 태양), 루나(Luna, 달)를 숭배했다. 3세기까지는 오직 남자만 신자가 될 수 있었다. 7단계로 나뉜 계급이 있었고, 각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는 ‘아버지(pater)’로 불렸다.

3. 정기적으로 소를 잡는(소가 없는 경우 닭이나 돼지를 잡는) 희생제사를 거행했다. 소의 피를 흘려 죽이는 것은 소의 생명을 힘입어 우주 전체가 재탄생하는 것을 의미했다. 피, 생명, 우주 만물의 재생을 믿었고, 그것을 주관하는 이가 미트라 신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4. 기독교와 달리 황제에 대한 숭배도 병행하고 허락했기에, 로마 제국 정부와 특별한 충돌이 없었고 별다른 핍박도 받지 않았다. 4세기경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를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트라교인들이 직접 남긴 경전이나 교리 기록이 발견된 적 없고 오로지 외부인들이 미트라교에 대해 묘사하고 기록한 자료들만 남아있기 때문에, 미트라교의 자세한 교리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위에 기록한 내용들은 외부인들의 기록과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유추한 미트라교의 특징들이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서 태양신 솔을 섬기는 미트라 교도들. 중세 기독교 십자군을 비유한 캐릭터들이다.
서로마 제국 말기에는 기독교와 미트라교가 간혹 서로 충돌하기도 했을 것이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내세운 후, 미트라교는 제국 정부로부터 이교의 일종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와 미트라교는 로마 제국 내부에서 별 충돌 없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제국, 특히 서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당시 크게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니교 같은 이방종교들에 대해 별다른 제한이나 억압을 가할 여력이 아예 없었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글에서 미트라교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을 유념해 본다면,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미트라교는 여러 종류의 흔한 이방종교 중 하나 정도로 여겨졌던 듯하다.

초대 교부들, 특히 어거스틴의 글에서 볼 수 있듯, 초기 기독교계에서 경계했던 이방 사상이나 종교는 주로 플라톤주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영지주의 이단이나 페르시아의 종교지도자 마니가 창시한 마니교였다.

◈기독교와 다원주의: 가속화되는 종교의 혼합 세태

기독교에 대해서는 그저 소원한 이방종교에 불과했고, 5세기를 지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미트라교를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서 되살려낸 이유, 그것도 중세 가톨릭교회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재현한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기독교의 배타적 진리 주장이라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주장처럼 계시된 진리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세 기독교인들이 보였던 이방 종교에 대한 배타성과 적대감을 미트라교라는 이름을 붙여 작품 속에 선보임으로써, 기독교나 미트라교의 믿음의 수준이 허황된 종교성 이상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작품 속 미트라교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에 대해 전지구적 차원의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결국 지구 자체의 멸망과 소멸을 초래했다.

그리고 최소한 남은 탈출 인원들마저 여전히 배타적이고 비합리적인 교리에 붙들려 케플러-22b 행성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줄여가는 모습을 보인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속 미트라교 고위 성직자들은 자주 비합리적 행태를 보이면서 교도들의 생존율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시즌1에서 이 미트라교 생존자들을 이끌게 되는 이들은 실은 성형수술을 통해 미트라교 군인들로 위장한 무신론자 측 군인들이다. 이는 종교라는 것이 무신론자들조차 주도하고 이용할 수 있을 만큼 허점이 많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가 기독교와 미트라교를 혼합한 종교의 모습을 선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기독교 교리의 순수성이라는 것이 실상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환상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실책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후일 국교화하기까지 한 이유는 분명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다. 사회 내부의 질서 붕괴와 이민족 침략으로 인해 멸망 직전까지 이르렀던 로마 제국, 특히 서로마 제국 입장에서는 제국의 종교 통합이 한시라도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때 제국 내에서 가장 큰 확장세를 보이던 기독교를 제국 통합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제국의 황제들 입장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복음적 순수성보다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까지 포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느냐가 더 큰 관심사였다.

그래서 기독교 내부에 기존 유럽 각지에 자리잡고 있던 이방종교 전통이 유입되고 통합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종교의 이런 문화적 융합이 가속화되기를 바랬다.

일부 교부들과 성직자, 신학자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보려 노력했지만, 이런 노력은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주로 효력을 발휘했을 뿐, 일반 민중 차원에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방주를 통해 생존 가능한 행성으로 향하는 미트라교 교도들.
게다가 많은 성직자들의 권력욕은 이런 상황을 더 크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가톨릭교회 고위 성직자들은 이전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그러했듯 그들 스스로가 기독교 신앙을 이용해 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통합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고 발벗고 나섰다.

이런 정황은 유럽 각지의 이교 전통이 기독교 내부에 유입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권력자 입장에서 볼 때는 어느 정도의 종교 혼합을 감수하더라도 기독교가 확장되고 교세가 전파되는 것이 자기 권력의 확대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정치적 정황은 훗날 중세 가톨릭교회 내부에 숱한 이교 전통이 유입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런 이교 전통들은 16세기 초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러 부문에서 개혁되어야 할 것들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이전 작품인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볼 수 있듯, 스콧 감독은 중세 가톨릭교회와 그들이 자행한 종교 범죄인 십자군 전쟁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종교라는 것이 문화를 초월한 영역이 아니라 온전히 인간의 삶에 속한 문화의 한 단면이며, 따라서 종교 간 분쟁은 순전히 문화적인 반성과 고찰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 간 통합의 역사적 현실은 우리가 한 종교의 믿음을 다른 종교의 믿음보다 월등한 진리라고 내세울 수 없는 근거가 된다고 그는 확신하는 듯하다.

이런 의미로 볼 때,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오늘날 종교 간 대화와 종교 내부의 중층성, 그리고 종교의 문화적 본질을 수긍하려는 종교다원주의적 사고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을 비롯해 일정 정도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발전을 이룬 사회들 가운데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종교관과 일치한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미트라교도들과 대립하는 무신론자 공동체. 두 안드로이드에 의해 보호되고 유지되고 있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복음적 기독교 신앙을 가지려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큰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을 다른 문화적 가치들보다 중시하는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어떻게 삶의 현실 가운데서 변증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개개인과 교회들이 종교다원주의가 내세우는 가치를 뛰어넘는 믿음의 지적 일관성을 확립하고 그에 걸맞는 윤리적 실천을 보이지 않는 한, 대중문화를 포함한 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종교 혼합의 세태에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향후 종교적 실존에서 고민해야 할 바들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대중문화 콘텐츠라 말할 수 있다.

세상이 전반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해 보이는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작품 안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이에 대응해 기독교인들이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