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존재하는 사회 그것이 온전한 사회이며,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이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종교가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이러한 전통적 역할은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바람같이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 교회, 성당, 사찰 어디에도 ‘죽음’을 위한 공간은 없다. ‘죽음’은 살아있는 자의 명예와 복을 위한 비즈니스일 뿐이다. 종교가 오로지 ‘살아있는 자의 욕망’으로서만 존재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복권시키고자 하는 역할은 더없이 소중하다. 죽음을 온전한 삶의 일부로 돌려놓는 것, 그것은 곧 인간 회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조성택(고려대 철학과)

메멘토모리
▲깃발을 들고 유쾌한 반란을 시작한 SD(Social Designer)들. ⓒ하이패밀리 제공
‘죽음의 성찰과 생명 회복’의 길을 모색하고자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이하 메멘토모리)가 지난 10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행사는 줌(Zoom)과 SNS(페이스북) 공유로 국내외 수백 명이 함께 참여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권영걸(전서울대 미대학장, 소셜디자인), 유현준(건축가), 하태경(정치인), 이만수(체육인), 박효진(교도선교), 김형석(철학자), 신은경(방송인), 장제국(학계), 박선주(미술), 석창우(화가), 채수일(신학자), 김신(법조인), 김종회(국문학), 이규현(목회자), 정은상(창직가),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4기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장), 김재평(한국방송장비산업진흥협회 회장), 이동춘(시인 목사, 샘문학회 부회장), 전창림(홍익대 교수), 한성열(고려대), 문용호(화이통 방송대표), 홍경일(양탕국아저씨, 문화선교사역자) 등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미국, 캐나다, 뉴질랜다, 남아공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케냐, 말라위 등 해외에서도 참여했다.

출범식 당일, 행사를 이끈 메멘토모리 상임대표 송길원 목사는 “더 이상 죽음은 기피해야 할 주제가 아니며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며 “이번 출범식은 목회자만이 아닌 평신도 리더들이 각 분야를 망라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1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문화 운동인 것이 특징이다. 깃발 들고 구호를 외치는 광장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 없이 삶 속에 스며드는 새로운 대안모델”이라고 했다.

이날 발기인으로 참여한 박상은 원장은 “이제는 시민운동으로 승화되어 생명이 꽃피우고 부활의 소망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소망한다”고도 했다.

메멘토모리는 죽음과 상장례 등 개인사로 치부돼 소외된 목회적 돌봄을 반성하고 상·장례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민운동에서 시작됐다. 메멘토모리는 이 운동을 목회자 뿐 아니라 학계, 경제계 등 일반 평신도들이 함께해 전 교계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아울러 메멘토모리는 추후 <메멘토모리 스쿨>을 통한 죽음교육, 엔딩플래너와 함께하는 <해피엔딩의 상·장례>, 웰다잉을 넘어서 <힐다잉(Heal-dying)의 생태환경>을 가꾸는 일을 목표로 한다. 출산휴가와 같은 임종휴가의 법제화도 계획하고 있다.

메멘토모리
▲줌으로 진행되는 행사 진행 장면. ⓒ하이패밀리 제공
메멘토모리 측은 “무염습 장례가 나왔다. 작은 결혼식에 이어 품격 있는 가족장이 늘었다. 코로나19는 신풍경이다. 조용하면서 진정한 애도와 치유의 해피엔딩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국적 없는 장례식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가족들의 갈등 증폭제 구실을 하기도 했다”며 “우리나라 한 해 사망자는 내년 30만 명(3조 6천 억), 2035년 50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1인당 장례비용은 1200만원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2~5배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50년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장례비용은 640조원(12조 8천 억)에 이를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의 죽음지수는 OECD에 가입한 나라 가운데 최하위에 가깝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죽음의 질은 주요 40개국 중 32위로 평가되었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다.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년에 1만 3,670명이 자살한다. 사망원인 5위다. 유언장 작성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유언장이 부재하니 유족 간 재산분쟁이 끊이지 않고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를 떠안고 빚을 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어 “교회는 죽음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상장례조차도 개인사로 치부되어, 목회적 돌봄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반성을 기초로 시민운동이 시작되었다”고도 밝혔다.

또 “삶과 죽음은 한 묶음이어야 옳다. 인생 최고의 스승은 죽음이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에게서 멀어진지 오래다. 코로나(Covid 19)는 일상 속에 죽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한 묶음이란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바라보면 한없이 슬프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들여다보면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코로나 19가 던져준 ‘죽음의 성찰과 생명 회복’의 길을 모색해 보려 한다. 거기, 보다 야무지고 풍성한 삶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라며 “초기 기독인은 ‘나그네’로 불렸다(벧전 1:1, 17; 2:11). 나그네는 오늘을 살지만 오늘에 머물지 않는다. 영원(본향)을 사모한다. 죽음에 겁먹지 않는다. 지구별 소풍을 끝내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죽음이 바르게 회복되는 자리에 인간 존엄과 품위가 있다. 그 때 삶은 예술이 된다”며 “우리는 기독교 상·장례 모델을 찾아내고, 죽음교육을 통해 죽음지수를 높이고,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안내하는 지팡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죽음의 사회·생태 환경을 일구는 일에 활동목표를 둘 것”이라며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한 개의 실로는 천을 짜지 못한다. 이 아름다운 일에 우리 모두 함께하자.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신다(시 116:15)”고 했다.

이밖에 메멘토모리는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위로를 빕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등으로 용어 개선을 제안하며,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가는 곳을 ‘저승’이라 하고 그곳을 ‘명부(冥府)’라고 한다. 명복(冥福)은 ‘어두운 곳에서의 복’을 뜻한다.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이다. 용어 뿐 아니라 잘못된 관습을 바꾸어가는 일을 하나하나 발표해 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