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스토아 동상 생각 지식 헤로도토스 Herodot
▲그리스 역사가·철학자 헤로도토스 동상. ⓒ픽사베이
요즘 사회 안엔 기독교 신앙의 기준에 월등하게 미치지 못하거나 성경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서구 관념론의 언저리를 정통 신학으로 혼동한 채 강의를 하면서, 귀동냥한 신학적인 용어들을 동양 사상에 억지춘향식으로 꿰맞추는 말의 잔치가 한창이다.

이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צֶלֶם אֱלֹהִים, 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명료한 성경적 진리로, 모든 다양한 사상들의 편린들이 포괄적으로 통합되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무형의 형상이신 하나님의 속성에 따라 인간이 창조된 사실 하나로, 본체니 형상이니 상이니 인식론적이니 우주적이니 가치론적이니 하는 모든 다양한 관점들과 파편적인 표현들이 다 맞춰진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임을….

이성과 영성은 아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성은 잘 연마될수록 영성의 기본을 다지는데 도움을 준다. 영성은 이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이성을 초월하여 이성을 완성하는 놀라운 신비이다.

히브리서 8장 5절과 10장 1절을 읽을때마다, 대부분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 사상을 아는 이들은 짐짓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성경에 쓰여 있는 ‘모형과 그림자(a copy and shadow)’나 ‘참 형상(the realities)’이란 표현이 플라톤 학파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그리스적인 웅변술이나 수사법, 심오하고 다양한 구성과 함께 유대교적 의식에 정통하다는 점에서 저자가 잘 교육받은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의 헬라적인 유대 크리스천이었을 거라는 추측을 낳게 되었는데 바울이 가장 유력하다.

그런데 이성적인 철학과 영성에 따른 묵시적 신비는 차원이 다르다. 플라톤 학파에 있어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세계는 원형적 이데아의, 영원한 하늘의 영역에 놓여 있는, 진실한 실재(true reality)의 그림자(shadow)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의미는 플라톤 학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성경의 그림자와 모형은 플라톤적인 항변(恒變)하고 비진리적 그림자로서의 속성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모형, 즉 그림자적 진리로서 구원의 예시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도올이란 이가 주장하듯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유계와 감관계를 이분하는 인식론에서 감관으로 보는 세계를 허망하고 나쁜 것, 버릴 것으로 보고 영원한 이데아를 지향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그림자와 실재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즉 현세의 것을 단지 하늘의 것의 그림자로 비춰진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고 구현될 미래의 실재에 대한 예표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세에서의 섬기는 삶, 예배적 삶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들어가기를 고대하는 하늘 성소,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광스런 영원한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그림자’는 플라톤의 ‘그림자’처럼 헛된 환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생명력을 지닌 귀중한 가치이다.

기독교는 이 세상을 결코 허망하게 보거나 땅에 뿌리 내리길 두려워하고 붕떠있는 헛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영적 전쟁터로 보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고자 전력을 다하는 삶의 신앙이다.

모든 인간 세상의 과제와 해답이 성경에 들어있다.

성경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똑바로 깨닫지 못하면 부쟁(不爭) 사회나 막시즘류 같은 도올식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역사의 방향을 모르고 목적 없이 헤매다 한평생을 헛되게 마감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 눈을 뜨고 싶습니까? 성경을 숙독하십시오!

박현숙
▲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인터넷 선교 사역자
리빙지저스, 박현숙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9awEs_qm4YouqDs9a_zCUg
서울대 수료 후 뉴욕 나약신학교와 미주 장신대원을 졸업했다. 미주에서 크리스천 한인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