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특수성 해체하고 다원주의 옹호하던 감독
과학 진보와 종교적 맹신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
성경을 과학적 상상의 요소들로 무너뜨리는 방식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창세기 기반 서사를 선보이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TV 시리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과학과 종교: 종교의 가치에 도전하는 SF의 달인, 리들리 스콧

지난 주 목요일, 미국 HBO에서 제작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TV 시리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가 첫 시즌을 마쳤다.

이 작품은 성경 창세기, 요한계시록, 고대 로마 제국에 전파된 미트라교, 중세 십자군 전쟁, 현대 과학주의 무신론 등 갖가지 종교적 모티프와 설정들을 풍부하게 담아낸 점 때문에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그동안 <에일리언>(1979), <킹덤 오브 헤븐>(2005), <프로메테우스>(2012) 등의 작품을 통해 기독교 교의의 특수성을 해체하고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준 스콧 감독의 종교 이해를 집약해 놓은 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스콧 감독이 종교들,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과 같이 특정한 중보가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이른바 배타주의 종교들을 비판하고 그 교의를 해체하는 방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자연과학, 둘째는 외계인 혹은 외계생명체, 셋째는 종교전쟁이다. <에일리언>과 <프로메테우스>에서 스콧 감독은 인간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외계인 ‘엔지니어’를 선보였고,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종교의 배타성과 비윤리성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보이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재현했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의 서사는 이 세 작품을 하나로 합쳐 놓은 인상을 준다. 미트라교 추종자들과 과학주의 무신론자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인한 미래 지구의 멸망이라는 요소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멸망한 지구에서 빠져나온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다른 행성에 새로 자리잡아 문명을 건설하는 과정은 <프로메테우스>의 인간창조 모티프를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서사 요소 전체를 개연성 있게 묶어주는 요소는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가치, 과학적 진보와 종교적 맹신이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 활용된 여러 SF적 요소들, 예를 들어 인간에 거의 가까운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인간 배아를 보관, 이동, 양육할 수 있는 생물학 기술,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한 우주선 등은 과학적 진보에 대한 스콧 감독의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반면 성직자들의 독단과 범죄, 종교 교의 때문에 벌어지는 전쟁과 파괴, 종교인들의 신념을 아득히 넘어서는 자연적 신비 등은 종교적 맹신에 대한 스콧 감독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표현한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서 인류의 눈부신 과학적 진보는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종교 교의로 인해 인간을 살리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데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는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인간이 뛰어난 능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자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본성 때문에 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을 타자와 자기를 파괴하는 데 사용한다는 근대 계몽주의 무신론 혹은 반종교론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중세 십자군을 모티프로 삼은 미트라교 군인과 성직자들.

◈과학과 신화: 창세기로 창세기를 공격하는 반종교 서사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나 TV 시리즈는 지금까지 그 수를 다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제작됐다. 그러나 스콧 감독의 작품들은 서사의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이런 개연성은 바로 설정과 서사 요소의 세부적이고 디테일한 묘사로부터 나온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의 예를 살펴보면, 첫 장면에서 ‘아버지(아부바카르 살림 분)’와 ‘어머니(아만다 콜린 분)’로 불리는 두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외계 행성 케플러-22b에 도착한다. 이 두 안드로이드는 그들의 창조자인 지구인 캠피온으로부터 인류 부흥 임무를 받고 멸망하는 지구를 탈출했다.

케플러-22b는 현실에 실제 존재하는 행성으로, 지구와 많은 측면에서 유사한 환경적 특징을 보인다. 드문드문 식물이 자라고 동물도 있지만,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황량한 곳에 남녀 두 안드로이드가 인간 배아 12개체를 가지고 정착하는 장면들이 이 시리즈의 서두를 구성한다.

이는 명백히 성경 창세기를 참고한 장면들인데, 스콧 감독은 그가 신화라고 생각하는 성경의 인간 창조기사를 과학적으로 번안, 또는 오마주해서 이야기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러한 설득력은 특별히 기독교인이나 기독교 문화 배경을 지닌 서구인들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리 속에 깊이, 혹은 익숙하게 자리잡은 성경 기사가 SF적 근거를 가진 영상으로 재현되고 직관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기독교적 서사 요소를 활용해, 역으로 기독교 신앙에 상충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교묘한 방편을 채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시리즈 초반 장면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다. 작품에 묘사된 지구 멸망 장면들 역시 유사한 표현 방식에 따라 전개된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서 지구의 멸망은 태양신을 섬기는 미트라교 광신도들과 과학주의 무신론자들 사이의 세계대전 때문에 초래된다. 이 세계대전에서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은 비행가능한 안드로이드 병기 ‘네크로맨서’를 개발해 미트라교 신자들을 학살한다.

이 인류 마지막 전쟁 장면은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계 16:1-21), 특히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이 재앙을 세상에 쏟는 장면을 각색해 영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의 안드로이드 병기 네크로맨서.

이런 성경의 번안, 혹은 오마주를 통해 스콧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이 일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과장되게 꾸며진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성경의 창세기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스콧 감독 입장에서 설명한 작품이나 다름없다.

작품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그는 인류가 진화를 통해, 혹은 고도로 발전된 외계 문명의 개입에 의해 출현했으며, 인류의 수가 지극히 미미했을 당시의 기억이 하나님에 의한 인간 창조라는 신화로 꾸며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시작이 모두 이와 같은 신화 창작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종교 경전들이 묘사하는 초기 인류에 대한 대략적인 정황은 인정하되 세부적인 내용과 가르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전반적으로 꾸며진 이야기에 불과한 종교들의 인류 기원에 대한 믿음, 특히 기독교의 창세기를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로 받들면서 인류 본연의 지적, 도덕적 진화 가능성을 제한하고 가로막는 일이 극히 어리석은 일임을 변증하는 데 주력하는 작품이다.

비기독교인들, 혹은 종교가 없는 이들 입장에서는 성경 창세기보다 스콧 감독의 서사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성경 기사의 세부 요소들을 과학적 상상의 세부 요소들로 무너뜨리는 방식이 그들에게 주효할 것이다.

반면 복음적인 기독교 신앙은 성경 전체의 내적 일관성과 문맥 속에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기록들을 분명한 사실과 진리로 이해하고 믿는 유기적 영감설을 대전제로 삼는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계속>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성경의 인류 창조기사를 주된 모티프로 삼은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