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10월 첫주
▲가을 산 속 기도원을 찾은 소강석 목사.
“가을 산에서 겨울 산을 봅니다.

겨울의 노래도 부르고요.”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원에 가니까 홍 장로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본 홍 장로님과 기도원에서 본 홍 장로님이 너무 다르게 보였습니다.

홍윤기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한 달 동안 있었는데, 홍 목사님에게 “자네가 너무 부럽다”고 했더니 이런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이라고 했는데, 담임목사님은 정말 인자이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시지만 저는 산에 질려버렸습니다. 저는 인자가 아닌 듯합니다.” 정말 저는 원 없이 한 달 동안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가을 산을 생각하면, 저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한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 대추야 /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저는 기도원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알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고요한 가을 산에서는 알밤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을 산의 알밤에도 햇볕이 스미고 이슬이 젖고 별빛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아니,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초승달 몇 날이 남겨서 둥글게 익어갔을 것입니다.

가을 산에서 알밤을 주우면서 유년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알밤을 줍고 나니까 허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알밤 안에 담겨 있을 햇볕을 느끼고 이슬을 만지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도 그렇습니다. 저는 잘 정돈된 정원에서 핀 꽃이 아닙니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에 젖고 천둥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피어난 외로운 야생화와 같습니다.

농부들이 작물로 키운 알밤이 아니라 야산에서 혼자 이슬에 젖고 벼락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익어간 산밤과 같습니다. 변방의 비주류로 출발해서 세계 최대 장로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산의 알밤 속에 햇볕과 이슬이 담겨 있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의 기억이 다 담겨 있는 것처럼, 제 안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습니다. 아니, 야생마처럼 거친 황야를 달려온 사명자의 땀과 눈물과 혼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성도만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앞으로도 오직 주님의 영광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

아직 중년이긴 하지만 더 깊은 가을로 접어들고, 언젠가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올 것입니다. 그때 눈 내리는 겨울 산을 바라보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는 햇볕이 스며있고 이슬이 젖어있고 천둥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아니, 외로운 초승달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인내와 아픔, 슬픔과 기쁨, 희로애락은 주님의 영광과 교회 세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제 안에는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충만하고, 저의 인생은 주님 한 분만을 위한 사명의 길이었으니까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예장 합동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