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창조, 하나님 인격적 개입하 유일 피조물
인간, 하나님 형상화·가시화하는 존엄한 존재
타락 후에도 하나님 본따 찬란한 문화적 업적

망원경 관찰 관측 우주 은하수 하늘 창조 광활 오로라 천문
▲ⓒ픽사베이
창조신앙과 과학이 벌써 31회를 맞았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회차는 신학자의 창조신앙에 대한 의견으로, 창조과학회와의 의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편집자 주

만물의 기원에 대한 인간의 사유는 본래 철학의 영역이었다. 철학은 기원전 6세기 경 만물의 근원에 관한 사유로부터 시작한 학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아버지로 탈레스를 꼽았는데, 이는 탈레스가 최초로 만물의 근원에 대하여 질문하고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탈레스의 뒤를 이은 아낙시만드로스는 물, 불, 공기, 흙에서, 아낙시메네스는 불에서 만물이 기원하였다고 했다. 이들 밀레토스 학파는 질료, 즉 물질로부터 만물이 기원하였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고대 유물론은 백년 후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으로 이어졌는데, 그는 만물은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원자의 이합집산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고대 원자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질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에 의해 밀려났다가, 근대에 영국의 화학자 돌턴에 의해 재탄생해 오늘날 원자론의 근간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은 질료와 형상으로 이뤄지고,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목적에 따라 운동한다고 보았다. 그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인 답에 만족하지 않고, 물리학 너머(ta meta ta physica)인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모든 것(인과관계, 운동, 정도의 판단기준, 목적 등)의 제1원인으로 상정한 신에게 만물의 기원을 두었다.

이러한 자연철학적 우주론적 유신 논증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기독교 신학에 도입되어 계시신학으로 덧입혀졌다.

근대 이후 기원에 관한 논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출간 후 진화생물학 내에 다양한 형태의 진화론들이 주장되어 왔다.

최근의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진화를 위한 기계로 보는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진화론과 첨단 과학 발전에 근거를 두고 유발 하라리는 과학 기술을 통한 현대판 불로장생을 누리는 호모데우스를 예견한다. 하지만 생물학과 지질학에서 진화론적 가설은 결코 증명된 적이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가설일 뿐이라는 말이다.

생명의 자연발생설과 더불어 종과 종 사이의 대진화의 가설을 뒷받침해 줄 중간 종의 화석이(missing link)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과 생물의 기원을 넘어 물질과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현대 물리학의 영역에서 주로 다뤄지는데, 아인슈타인 이후 양자물리학은 원자 이하 입자의 세계까지 그 탐구를 확장해 유령 같은 전자들의 행동 양식을 발견하기에(양자얽힘 현상) 이르렀다.

이후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라고 부르는 힉스 입자를 2013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강입자충돌기(LHC)를 통해 발견하기에 이른다.

또한 현재 우주물리학에서 가장 유력한 기원이론인 빅뱅이론은 인플레이션 빅뱅이론으로 수정된 후, 2016년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의 중력파 발견과 함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검증됨에 따라 더욱 강력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21세기 첨단 과학인 이 두 영역 입자물리학 연구와 우주 물리학 연구는 그 거대한 스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중첩되고 융합되고 있어 혁명적인 미래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판넨베르크 등 일련의 신학자들에 의하면, 빅뱅 이론은 그와 경쟁하는 다른 우주론인 정상우주론보다 기독교 가르침에 더 잘 부합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설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의 그 어떤 이론도 항상 오류 가능하고 수정 가능하며, 언제든지 또 다른 새로운 이론으로 바뀔 수 있다. 한 마디로 개연성 수준에서의 논의이다.

그러한 과학의 발전으로 실제 세계에서 이루어진 눈부신 각종 기술의 덕을 오늘 우리는 누리면서 살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놀랍고도 위대한 업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의 팬데믹을 마주한 인류는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겸허를 배워야 할 것이다.

기원에 관한 기독교 신학에서의 논의는 철학이나 과학에서의 논의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해 놓은 성경을 근거로 모든 것을 논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가설이나 이론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즉 신앙의 근거 위에서 논의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본질은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확실성(certainty)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가치나 의미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사실로서 믿는 것이다. 신학도 학문이기 때문에 이성의 활동이며, 학문성의 기준에 합하여야 한다.

하지만 신학은 신과 그에 관한 계시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연역적·귀납적 방법 등 여러 논리적 방법론을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권위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특색이다. 한 마디로 성경의 권위에 입각하여 연구한다는 뜻이다.

신학 서론에 관한 논의는 매우 중대하고 많은 논의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쯤에서 생략해야만 할 것이다.

요컨대 이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영으로(시 33:6) 만물을 공허(無)로부터 창조하였는데,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셨다(창 1장).

6일 창조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 중 제4계명의 근간이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 6일 동안 일하고 7일에 쉬어야 하는 유대교의 안식일 준수의 근거가 될 뿐 아니라,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지키는 근거가 된다.

6일 창조의 “날(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그 하루를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24시간 하루로만 해석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애초 이 하루가 얼마나 긴 하루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본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다.

시공 자체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그 상황을 인간의 언어로 다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려니와, 하나님의 계시의 초점은 창조 과정의 사실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하루와 인간의 하루에 대해 인간의 하루 기준으로 확정지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신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유비적 관계가 있으므로, 여러 종류의 날 이론들 가운데 가장 신빙성 있는 이론은 ‘유비로서의 날 이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오경 전체에서, 특별히 안식일 계명의 시각으로 볼 때 적합한 이해라고 할 수 있겠다.

‘창세기 1장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들’이라는 베른 포이쓰레스의 짧고 명쾌한 글은 다양한 이론들을 잘 제시하고 정당한 평가를 해주고 있다.

한편 창조에 대한 유신진화론적 이해도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애초 진화론적 가설이 가지는 자연주의적이며 범신론적(자연 자체가 신적 위치에 있게 되는 의미에서)인 철학 자체가 신본주의적인 성경적 사고와 혼합되거나 섞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주류 과학에서 폭넓게 전제되는 가설이지만, 그것이 이미 기원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면 자연과학의 범주를 넘어 신념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창세기 1장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반복적으로 명시하고 있고,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만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직접 만드셨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창 2:7).

창세기 2장 4절부터 시작되는 톨레도트의 양식과 1장은 문학 장르적으로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조화롭게 이해해할 것이고, 차이가 있는 창조의 순서도 1장은 세계 전체의 창조이고 2장은 개별적인 창조를 말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조화롭게 설명이 가능하다.

김준 교수는 1장의 “각기 종류대로”의 종류를 생물학적 분류에 있어 과(family)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 했는데, 그의 『과학자의 눈으로 본 창세기』는 창세기에 대해 성도들이 가지는 많은 의문들을 과학적으로 흥미롭게 설명하는 유익한 책이라고 본다.

단지 식물, 동물, 사람의 창조를 삼분설적 이해인 육과 혼과 영의 창조로 해석한 것은 본문에다 외적 의미를 부여한, 문제가 있는 해석이다. 또한 성경의 인간론은 영육의 통일체로서 전인으로 보아야 하고, 동물의 혼과 인간의 혼은 서로 기원 자체가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전 3:21).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다루는 기원에 관한 가르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인격적 개입이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고, 인간은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가시화하는 존엄한 존재로서 하나님에게 속한 존재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 보이는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는다(창 1:28).

창조 시 받은 이 문화명령으로 인해, 인간은 비록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을 본따서 그토록 찬란한 문화적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상화
▲한상화 교수.
한상화 교수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 전공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ACTS 신학연구소장, 신학대학원장,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대학원장으로 봉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