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박사
▲김진혁 박사(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감사, 행정학 박사).
슬프다 한국교회여!

우리가 받는 고통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니다.
미워하고 정죄하며 남보다 낫기를 바라는 교만함의 결과다.
자기 생각 내려놓고, 첫사랑 주님만 바라봅니다.
상처를 감싸 안아주시고, 회복의 영을 주옵소서.

기독교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다. 130여 년 전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민족 계몽운동, 민주주의와 시민의식 고취, 선진 의료와 교육, 여성운동 등의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개신교인이었을 만큼 기독교는 민족과 사회를 위해 앞장섰다.

20세기 기독인 성장률 1위, 인구 대비 선교사 파송 1위, 평양 대부흥 등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지금은 다수로부터 조롱과 질시를 받고 있어 안타깝다. 기독교에 대한 평판 조사에서도 ‘기독교를 불신한다’는 비율이 ‘신뢰한다’는 비율의 두 배다.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사회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비대면 예배와 정치화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급락했다.

일반 성도들, 특히 청소년층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기복신앙, 물신화, 성적 타락, 교조주의 등의 흔들림으로 교회 내의 분열도 가속되고 있다.

이런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기독교의 본질과 가치를 제대로 못 지킨 교회와 교인들의 공동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목회자는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외치지 못했고, 교인들은 거룩함과 순결의 말씀을 생활로써 나타내지 못한 결과이다.

구세주 예수는 알렉산드로스 왕 같은 강력한 지도자로 세상에 오지 않고,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나 치욕스러운 십자가형을 받았다. “원수를 사랑하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직 섭리와 기독교 역사가 모순과 역설로 점철되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의 악행과 노예해방의 선행이 신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천동설과 지동설로 갈라져 싸울 때도 성경에서 근거를 찾았다.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도 성경에서 사고를 모방했다.

예수의 고향 이스라엘에서조차 기독교 전도가 제약받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예수의 사랑과 권능으로 역사의 변곡점마다 기적과 변화를 이끌었다. 지금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에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면죄부 발매와 형식주의에 염증을 느꼈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대중의 지지로 세력을 키웠다. 기독교는 교황주의의 수직적 구조가 아닌 복음에서 출발한‘오직 은혜와 믿음’의 수평적 구조를 구현했다.

이런 개신교가 하나님보다 목사 중심의 목회, 물질 중심의 교회 행정, 불쌍한 이웃을 구제하고 전도하는 공교회 적 사명을 저버리고 성장 우선주의에 빠져 기독교 본질과의 부조화가 야기된 것이다.

누구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모두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 앞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불꽃 같은 하나님 눈에 티끌 같은 죄도 숨길 수 없다. 우리 행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열심히 예배드렸다고 하지만, 과연 하나님 마음에 흡족했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지금이라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한국교회에 회복과 희망을 줄 것이다. 진리의 파편 조각으로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회복하고 감동과 진리의 울림이 되길 바라면서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분이 보이신 본과 가르침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전도와 의로운 행실을 하는 것이다.

이런 선한 싸움 중 하나가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삼위일체 신앙을 가진 기독교를 없애려면 이 땅에서 가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에서 가족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탄은 동성애와 양성애라는 명목으로 성적 자유를 장려하고, 전방위적으로 기독교적 가치를 말살하려 한다.

그리스도의 귀한 몸인 교회의 말씀 선포를 제약하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거부해야 한다. C. S. 루이스는 “태양열이 버터는 녹이지만 진흙은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둘째, 이미 몇 교회가 실천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미자립 중소형 교회를 도왔으면 한다.

6만 교회 중 약 70%는 20명 이하 교인으로 재정 자립이 안 된다고 한다. 비대면 예배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은 극에 달했다. 특히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귀국한 선교사들이 주거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들 한다. 이런 해외 선교사들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주민에게 더 과감한 사랑을 전해야 한다.

셋째, 교회가 새로운 목회 환경을 개척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튜브나 줌(ZOOM) 등 뉴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싫어도 그것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에, ‘뉴 선교’의 길을 열어야 한다.

설교라는 단순한 영상 콘텐츠 제공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로 진일보하여 신세대들과의 눈높이를 맞췄으면 한다. 이제 모이는 교회에서 직장과 가정으로 흩어져 성장하는 교회도 예상된다.

교회답지 않은 교회, 성도답지 않은 성도들로 인해 종교는 타락하고 사회는 갈수록 혼란해질 것이다. 정의와 불의에 항거하면서, 안으로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통한 믿음의 본질과 영혼을 구제했던 이전의 초대교회 모습이 새삼 그립다.

김진혁 박사
시인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