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 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창세기 3장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영적·도덕적으로 무죄한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가 끊어지고 각종 저주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창조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구속 계획이 이미 계시되었으며, 언제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회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라 안과 밖은 우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 달과 이달 초까지 긴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홍수 사태까지 찾아와, 백성들은 서서 하늘만 쳐다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아름다운 낙원에서 오래도록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아담과 하와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간교한 사탄의 꾐에 빠져 인류 역사에 크나큰 불행을 안겨주고 말았던 참혹한 사건입니다.

또 다시 타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질병과 전쟁, 그리고 홍수를 통해 또 다시 일깨워 주셨지만, 여전히 타락한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 인간들은 늘 참혹한 교만과 탐심의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린 아담과 하와의 뒤를 이어, 노아 시대에 인간들의 참아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악한 죄로 말미암아 창세기 6장 11-12절에 기록된 말씀에는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노라(창 7:1)”, “홍수가 땅에 사십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위에 떠다녔으며(창 7:17-18)”,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창 7:20)”.

그러나 창세기 9장 1절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후손들, 그리고 모든 생물들에게 약속하신 보편적인 은혜가 기록된 것입니다. 세상을 어떤 시점까지 보존하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역사가 무의미하게 계속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계시하신 인류 구원의 언약을 이루시기까지 이 세상에 대해 오래 참음을 보이신 것이며, 그 구원의 때에는 이 세상을 새롭게 회복하시겠다는 의도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특히 비는 40일 동안 내려졌지만, 홍수가 난 지 1년 10일 만에 노아와 그 가족들은 아라랏산에 정착을 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일 년을 넘게 배 안에서 지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가족들을 위해 단 며칠이 아닌 하루 만에 물을 다 물릴 수도 있었지만, 창조의 질서를 위해, 그리고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맞추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도록 스스로 따르시며 지키시는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가족들은 오랜 시간과 나날 속에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에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그들이 당대의 의인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의 참된 의도는 심판이 아니라, 악의 제거를 통한 긍휼의 재확인이라는 것을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신앙인들과 비신앙인들은 노아 홍수에 대한 기록을 대충 자신의 상식선에서 읽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과 생물을 무자비하게 홍수로 진멸하는 잔인한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세밀하게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때 진노하셨다는 말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육신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분들은 하나님이 진노하여 세상을 진멸하시는 분으로 착각하며 오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학사전에서 홍수라 함은 “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불어난 물”이라고 합니다. 홍수의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천 수위가 평년보다 높게 상승한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하천 수위가 높아져 제방을 월류하거나 파괴하여 주변이 범람하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달 긴 장마와 홍수로 인해 몸살을 앓았습니다. 농사 짓는 농부들은 수확을 앞두고 홍수로 인해 큰 낭패를 겪었으며, 산사태로 인해 집이 붕괴되고 도로가 유실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강 수위가 높아 다리가 붕괴되고, 논과 밭은 처참할 지경으로 물에 잠기며, 도시 안에서 역시 넘치는 물난리로 고통을 겪고,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로 수많은 이재민들이 고통의 대참사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견되었던 사건입니다.

나무가 없던 시절, 한 지도자의 탁월한 선택으로 온 산과 들에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만들어 홍수를 예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탐심의 결과로 울창했던 나무들이 훼파되어 골프장, 펜션, 그리고 위락시설이나 공장, 심지어 짐승을 키우는 곳까지 만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잘못된 행정의 결과, 오늘날 대홍수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요?

분명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경고를 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탐심이 작동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생산하므로 인류 역사에 크나큰 범죄로 고통의 쓰라린 아픔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욕심과 타락한 본성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역하는 인간들 때문에, 지구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고에는 예고가 있는 법, 사전에 이를 감지하여 축대를 쌓아야 할 곳은 반드시 쌓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리고 정비를 해야 할 곳은 경비를 따지지 말고 우선순위로 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내 탓 네 탓’을 하며 교묘히 피해가려고 하는 꼼수의 지도자들 때문에, 백성들만 여전히 고통의 몫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백성들이 민원을 넣어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인력 부족, 장비 부족이라고 묵살하는 것입니다. 핑계만 대는 정부 공직자들의 한심한 잣대입니다.

공무원은 해마다 넘치게 뽑고 있는데, 어떻게 그리 매번 인력이 부족하고 장비가 부족한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사고가 나면 여야를 불문하고 향후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태양광 탓, 4대강 탓으로 돌리는 참상을 겪다 보니 비싼 세금으로 그들에게 일을 맡겨서 될 일인가 싶습니다. 차라리 국회의원 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이 분노하는 백성들의 요구 아닐까요?

특히 사고가 터지면 내 구역, 네 구역 하며 ‘구역 싸움’을 하다 보니 사고의 본질은 사라지고, ‘내 탓 네 탓’으로 싸움질만 하는 모양새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공무원들만 바로 서면 이 나라의 부정부패는 사라질 것이며, 참혹한 홍수의 재앙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정치는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만, 내로남불과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 고집과 아집으로 일관하며, 탐심에서 오는 부패의 고리는 끊어질 줄 모르는 이 정부의 무능의 결과는, 그들을 선택한 백성들의 참혹한 아픔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또 방송국과 언론은 정부의 나팔수라도 되는지 진실한 보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정부의 대변인 노릇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요!

심지어 “나라가 니 꺼냐?”는 말이 백성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정부의 책임자들은 여전히 소통 부재로 인한 고집과 아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노선을 바꿔야 함에도 여전히 함구하며 자화자찬만 하고 있으니, 이런 지도자들은 간교한 뱀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꼼수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백성들은 바로 재난지원금의 꾀임에 빠져 ‘공돈’이라면 그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도 같지 않습니까?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될 뿐입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옳지 않은 길로 가고 있다면 비서실장부터 청와대와 각 부처장관을 비롯하여 여당 국회의원 그리고 지자체와 공직자들은 소신 있는 사명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도록 건의를 하거나 진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모습은, 부패와 비리, 직무유기로 5천만 국민과 5천년 역사의 이름으로 반드시 징계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후 하나님께서는 비록 인간의 마음의 생각이 악한 것이 전혀 변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마음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악한 마음과 끊임없이 고통을 느끼시며 뜻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신데, 하물며 나약한 인간들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무례한 행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고집불통의 결국은 아름다운 낙원에서 퇴출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복음 사업에 몰두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에스더의 때를 기억하여, 나라를 위해 소리치며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주일 설교 때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때가 왔음을 깊이 인식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신앙인들과 백성들을 향해 외치며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뱀의 간교한 자와 다를 바 없는 목자임을 깨달읍시다. 이 땅에 하나님의 창조된 에덴의 낙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목숨 다해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