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투데이는 (사)한국역사진흥원의 강사빈 이사장의 [강사빈의 역사와 오늘]을 격주로 10회 연재합니다. 강사빈 이사장은 인천포스코고등학교 재학 중이며, 현재 청년김영삼연구회 사무총장, 한국역사진흥원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BS <미래교육 플러스>, <행복한 교육세상> 등에도 출연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586이라는 이름의 어른들’이 있습니다.

강사빈 제공
'건국일'은 한 국가의 생일을 말한다. 그 나라의 뿌리를 찾고 피와 땀으로 일궈낸 선조들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언제일까? 필자는 대한민국의 건국일이 논란의 여지가 없이 1948년 8월 15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이 건국일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일고 있어 이번 칼럼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지금껏 우리는 1948년이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이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① 국가의 성립요건

사실 건국일에 대한 논쟁은 소모전에 불과하다. 그리고 단순히 한 인물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고 역사에서 지워내기 위한 논쟁일 뿐이다. 건국일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국가의 성립요건에 대해서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국가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국가란 일정한 영토를 차지하고 조직된 정치 형태인 정부를 지니고 대내외적으로 자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적 실체를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것처럼, 통상적으로 국가는 '주권', '영토', '국민'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존재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1933년에 논의되어서 발표된 몬테비오 협약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몬테비오 협약에서는 '국민'과 '영역', '통치조직과 국제관계의 설정권능'의 요소들을 갖춰야 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볼 수 있는지 따져보아야 하는 것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에 여러 임시정부들이 생겨났다. 그해 3월 블라디보스토크의 전로 한족회 중앙 총회를 확대 개편하고 손병희를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국민의회'가 수립되었고 4월에는 상하이에서 신한 청년당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또 서울에서는 13도 대표의 명의로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하여 '한성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다 임시 정부의 통합 운동이 전개되며 '한성 정부'의 정통을 계승하되 여러 외교 활동과 독립운동을 펼치는데 유리한 상하이에 정부를 두는 '통합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역시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대한국민의회', '상하이임시정부', '한성정부', '통합대한민국임시정부'까지 어느 하나도 국가의 성립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없었다. '주권'과 '영토'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결론이 난다. 임시정부는 통상 국가가 갖춰야할 조건을 모두 갖추지 못했으므로 절대로 건국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3요소를 모두 갖춘 시점에서 건국된 1948년의 대한민국을 진정한 건국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그러면 왜 이들은 1948년 건국을 역사 속에서 지우려고 하는 것일까?

② 이승만의 정통성

헌법 전문
▲[제헌헌법 전문]

1948년 건국을 지우려는 사람들이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제헌헌법'이다. 먼저 1947년 7월 17일 제정되었던 '헌법 제 1호', 그러니까 '제헌헌법'을 살펴보자.

여기서 그들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던 이승만 대통령조차 1919년에 건국했고 이를 1948년에 재건했다는 것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쉽게 말해 1919년은 '정신적인 건국'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해방 직후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남한 단독 정부의 정통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헌법 전문에 나타나있다고 한들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국가의 성립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부분에서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1919년이 건국이라면 1944년 당시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던 여운형이 왜 '건국동맹'을 만들었을까?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던 독립운동가들도 1948년 이전에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국'의 이름을 내건 단체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에 대해서는 나오지만 건국일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또한 건국이 아닌 단지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 등을 이용하고 있다. 이번에 바뀌게 되는 역사 교과서도 역시 이와 같다. 때문에 역사에 관심이 크게 없는 이들은 북한 정부, 나아가 공산주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역사를 위해 건국일까지 부정하는 이런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생일인 1928년 8월 15일을 기억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한 우리의 선조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사빈 (사)한국역사진흥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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