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며 읽으며 쓰며
쉬며 읽으며 쓰며

김민정 | 생명의말씀사 | 176쪽 | 11,000원

한 아이가 모래사장에서 열심히 모래성을 쌓고 있습니다. 문도 만들고, 벽도 만들어 제법 성 같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어린 아이의 성 쌓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가끔 가서 도와주기도 합니다. 아이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배도 고프지 않습니다. 저멀리서 조잘거리던 파도는 어느새 아이가 쌓은 성의 문에 부닥칩니다.

성벽 아래쪽이 무너지더니 이내 성문도 무너뜨립니다. 아이는 울상입니다. 온 몸으로 파도를 막아 봅니다. 아빠도 아이와 한 편이 되어 파도를 막습니다.

하지만 몇 분도 되지 않아 성 안에 있던 집들도, 탑도 모두 무너져 내립니다. 애써 성벽에 놓은 조개로 만든 성가퀴도 내려앉습니다. 아이는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을 보며 떠나질 않습니다. 아빠가 아이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가자”

아이는 자꾸 되돌아봅니다. 눈에는 마른 눈물이 아직도 닦이지 않은 채 말입니다. 모래사장은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래성을 쌓기 전 그 모습 그대로, 누구도 오지 않았던 원시적 해변가의 모습처럼 파도는 모래를 하얀 손으로 쓰다듬고 있습니다.

우린 인생을 ‘모래城 같다’라고 말합니다. 종종 인생의 허무를 말할 때 ‘모래성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네요. 아이는 허물어져 가는 모래성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자신이 수고한 것을 사랑했다는 기억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습니다.

해변의 모래성은 사라졌지만 아이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아름답고 멋진 성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는 그 성을 삶이란 해변가에 그려 나갈 겁니다.

기도
▲ⓒUnsplash
김민정 목사의 <쉬며 읽으며 쓰며>를 손에 들었을 때,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책의 전반적인 디자인이 고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 장 한 장 담아낸 글이 삶의 여백을 담아내기에 충분히 고왔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고민도 하고 생각도 합니다. 코로나로 삶은 변했고, 변하고 있고, 계속하여 변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편안함, 그 다음은 두려움, 그리고 지금은 ‘고독’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의 시대는 지정학적 공간에서의 일상적 만남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달은 참 편했습니다. 두 달이 되니 두려웠습니다. 세 달이 되니 고독했습니다.”(8쪽)

언제쯤 이 고독이 끝날까요? 코로나가 사라지면 우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쩌다 한 번 전화로만 만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예전처럼 친절한 미소로 대할 수 있을까요?

오래 만나지 않으면 오해가 깊어진다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해가 깊어지면 다른 해석을 하게 되고, 다른 길을 걸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도 그러한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그동안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모여 예배하고 식사하고 대화하며 지내왔습니다. 그것이 신앙이라 여겼고, 강인한 믿음의 법칙이라 확신해 왔습니다. 그러나 ‘거리두기’가 일상화 되었고, ‘비대면’이 권고되고 있습니다.

홀로 남겨진 시간, 여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예배의 자리’를 ‘OO번길 OO교회’로 인식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다시 믿음이 무엇인지, 예배가 무엇인지 물어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일상의 문제로 고뇌하는 이들을 위해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줄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김민정 목사는 길지 않은 문장들 속에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질문과 하고 있을 고민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지금까지 나는 잘 살아왔나?”

“이 같은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은 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과 동행하기 위해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12쪽).”

평범함으로 덧칠된 일상을 통찰의 언어로 수를 놓은 듯,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평안함을 줍니다. 간과하기 쉬운 일상에 질문을 던지며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작은 신앙 에세이를 넘기면, 독자 자신을 돌아보는 질문을 남겨 두었습니다. ‘나만의 아름다운 공백’을 두어 낙서처럼, 일기처럼, 생각을 적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혹여나 집에서 잉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고 함께 글을 써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삶의 지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들도 자신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추천 드립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가을이 시작하는 9월에 말입니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