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위로
희한한 위로

강세형 | 수오서재 | 230쪽 | 13,500원

코로나19 시대, 가장 필요한 것 ‘위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 필요해
겉으로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더 필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위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서정의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위로의 말》에 이런 글이 있다. “나의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누군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합니다. 나의 작은 손길로도 누군가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합니다. 나의 뜨거운 눈물로 누군가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했지요. 그 모든 것들 또한 다 지나간다고! 맞습니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삶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이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다가온 고통이나 불안, 아픔, 절망 등을 이겨낼 위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지고 힘들어 엎어질 때 따스한 손을 내밀거나 어깨를 감싸줄 그 어떤 위로야말로 지금 이 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치유가 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다 위로받고 살아야 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강한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겉으로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더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감추기 위해 더 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겉으로는 행복하게 보이지만, 아픔과 상처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정 생활에서 일어나는 부부간에 갈등이 있다.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이 있다. 사업의 어려움과 직장생활의 어려움이 있다.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 대인관계로 인해 오는 상처가 있다. 이 외에 남모를 아픔과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위로다.

부족함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살아가는 이야기 자체가 위로 되기도
힘든 시간 스스로 위로하려 써내려가

세상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유명 연예인들도 종종 하고, 대기업의 회장도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소년들의 자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유야 다를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이 혼자 죽음의 길을 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자살까지는 가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위로라고 하면 내가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자체가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의 삶의 아픔을 그냥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강세형 작가는 《희한한 위로》에서 바로 이런 위로를 전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이후에 라디오 작가로 활동했다. 첫 책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로 30만 독자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공감의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발간한 책들을 통해서도 때로는 위안을, 때로는 먹먹함을 독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저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제법 힘든 시간을 보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책이 《희한한 위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저자는 이 책을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위로해 주고 싶었고, 자신이 발견한 위로의 순간들을 스스로 잊지 않도록 기록하고 싶어 쓴 것이다. 이 취지로 쓴 책이지만 책 제목처럼 이 책을 읽으면 희한한 위로를 받는다.

‘다 잘 될거야’ 말에 위로받은 적 없어
농담처럼 툭 뱉은 말이 오히려 위로가
자신이 발견한 ‘희한한 위로’ 전달되길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화두를 던진다. “‘다, 잘 될거야.’ 이 말에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아 본 적이 있을까?” 저자는 이 말에 한 번도 안도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조금 상처가 되었다고 말한다. 상처가 되었기에,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무턱대고 ‘다 잘 될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하고 엉뚱한 곳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따뜻하고 자상한 미소와 함께 “다 잘 될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 앞에선 배배 꼬인 심보를 보이다가도, “어떻게든 되겠지!” 농담처럼 툭 내뱉어진 친구의 말에 오히려 위로받았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무심한 작은 배려 하나에 눈물이 핑 돌 때도 있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기나 하고 싶어서 틀어놓은 코미디 영화가 뜬금없이 감동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한 저자는 위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에서보다는,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저자는 자신의 약함을 포장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나름 위로를 발견하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낸다. 저자의 바람은 자신이 발견한 희한한 위로가 독자들이 위로를 발견하는데 조금이나 도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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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xels
저자는 전하는 희한한 위로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역량 껏,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이 아무렇게나 돼도 상관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픈 게 좋은 사람, 힘든 게 좋은 사람이 정말 있긴 할까.

이미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서로에게 ‘노력’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이제는 나도 좀 알 것 같다. 안 그래도 아픈데 이게 다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아픈 거고, 안 그래도 힘든데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힘든 거라니.

노력. 그 말이 주는 무력감, 자괴감, 그리고 상처를 안다. 그래서 나는 희귀병(베체트) 진단을 받고도 기뻤고,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 이 긴 글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참, 힘들죠? 하지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왜 꼭,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 세상에는 뒤에서 묵묵히 커다란 기계의 톱니바퀴 한 축처럼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아니 실은 그런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결코 소홀하게 흘려보내며 살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심지어 한없이 게을러 보이는 타나카군(만화 주인공)마저도 최적의 나른함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 나는 사실, 욕심이 없는 게 아니다. 욕망의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 되어 대화를 이끌어가고 싶은 욕망보다는, 조용히 듣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할 뿐이다. 누가 날 알아봐 주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쪽이 더 즐거울 뿐이다. 나처럼 조금 다른 형태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그 욕망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도움을 받는데 조금 더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도와달라는 말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받은 도움으로, 조금 더 밝은 사람이 되고 싶고, 조금 더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이, 꿈이 더 작아지고 삶이 더 초라해지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언제쯤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알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초라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달라지는 것뿐이었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아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물론 20년 전의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지금의 이 ‘다른 삶’이 마냥 행복하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시절의 나는 몰랐던 다른 기쁨과 행복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수박을 베어 물으며 생각했다. 참 좋은 계절이라고, 내일은 물론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직도 왜 꼭 사계절이 다 있어야 하는지, 왜 매일매일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왜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올해의 첫 수박은 참 맛있었다. 운이 좋았다. 두 달 후면 이 맛이 또 그리워질테니, 그전에 많이 먹어야지. 이제 곧 여름, 아니 어쩌면 이리 여름은 시작했으니.”

위로는 진통제… 계속 맞을 수 없어
하나님 위로는 부작용도 한계도 없어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연약함 아신다

위로는 마치 진통제와 효과가 비슷하다. 병원에서 수술 후에 그렇게 아프던 사람이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나면 얼마 후 그 아픈 것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통제의 약 효과가 떨어지면 또 아픔은 찾아온다. 진통제는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계속 맞을 수가 없다.

인간의 위로는 진통제처럼 부작용도 있고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이런 부작용이 없다. 한계가 없다. 바울은 하나님이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하나님이 위로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힘들고 위로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아시고, 누구에게 말 못하는 실수와 잘못도 다 아신다. 기도할 힘조차 없는 연약함도 아신다. 절망으로 답답해하는 마음도 다 아시고 다가오셔서 안아주신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위로를 받았다면 위로하는 자가 돼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위로해주시는 목적이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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