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교회
▲백성훈 목사가 시무하는 이름없는교회에서 ‘교회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잊었습니다. 겸손히 스스로를 돌아보겠습니다’라는 글이 담긴 현수막을 달아놓은 모습. 이 사진은 방송인 문천식 씨가 자신의 SNS에 공유하면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신약 시대 장로들에게는 ‘고르반’이라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율법을 더욱 실제화·구체화하여 더 세부적인 율법을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그 중 ‘고르반’은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선언하고 서약하는 일입니다. 이 서약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니 소유를 미리 드리고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서약이 변질되어 나의 재산은 하나님께 드려졌으니, 더 이상 이웃에게 드릴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부모를 공양하지 못하고 이웃을 구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장로들이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면 그 소출의 일부를 부모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밭을 ‘고르반 서약’에 의해 하나님께 드렸다고 선언하고는 부모님께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만든 율법이 성경의 율법으로부터 얼마나 변질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르반 서약’처럼 변질된 신앙이 존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세상과 나누지 않고, 성도는 자신의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에서 많은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교회를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런 교회를 보며 실망했고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 억울함을 토로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세상을 적대시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또한 성도들은 이런 교회를 오히려 미워하고 야단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과 또 성도와 다투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어떤 교회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목숨 걸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하면서도,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서로 다투며 싸웠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상황과 정해진 기간으로 요청된 이웃의 하소연에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렇게 못한 게 많은 교회가 세상을 계속 야단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와중에 성도들은 예배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평소에도 그토록 예배를 목숨 걸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늦잠을 잔다고, 여행을 간다고, 장사를 한다고, 시험에 들었다고, 우울해졌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변질되었다고 교회를 떠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예배하며 은혜가 안 된다고 교회를 떠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서운하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평소에 예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교회를 야단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문제가 많다고 분노하는 시기에, 오히려 아직도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은혜로 세상을 품는 교회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드러내 세상에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 속에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는 자신이 죽음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죄인일 수도 없는데, 스스로 실패의 상징인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 속에 죽으셨으며,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변질된 ‘고르반의 서약’이 새 계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면, 이웃을 위해서도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성도는 이웃을 사랑한다면 예배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예배를 위해서도 묵숨을 걸어야 합니다. 바로 한 가지를 붙잡는데 급급했던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희 교회 주일 설교 중에,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모두 사랑하고 있는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목숨 걸고 있는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드리고 있는지, 그렇게 살고 있는지.

우리 성도들에게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웃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할 필요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약하지만, 교회에 현수막 하나를 달자 했습니다. 제작과 설치에 들어가는 금액으로 구제를 할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모으는 결단과 약속이 먼저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주었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붙잡고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그 크신 사랑 앞에 우리도 목숨 걸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목숨 걸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축복합니다.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팀사역의 원리>, <시편의 위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