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진리라 말할 권리에 위험
‘진리’에 박수쳐 달라 강요 않겠다
‘혐오’로 읽겠다고 강제하지 말라

정은이
▲정은이 청년.

우리는 매일 사랑받기 위한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계속된다. 고로 삶은 전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삶이라는 전쟁에서, 사랑받기 위한 수많은 전투는 흔하게 좌절된다.

동성애는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좌절됐을 때 택해지는 대체재이다. 이들이 경험하는 패배는 동성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결핍이다.

이들은 부모를 다른 동성에게서 찾고자 한다. 폭력적 아버지를 경험한 아들은 동성에게서 자상한 아버지를 찾으려 들 것이고, 기댈 수 없는 어머니를 경험한 딸은 동성에게서 따뜻한 어머니를 찾으려 들 것이다.

때문에 동성애 성향은 비정상적인 욕구라기보다는, 성장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정상적인 욕구이다.

가정의 파괴는 동성애자들을 탄생시킨다.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레즈비언),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게이), 동성과 이성 둘 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바이섹슈얼)이 있고, 심지어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트렌스젠더), 더 나아가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퀴어)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통칭 LGBTQ, 성소수자라고도 한다.

동성애는 죄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결코 이성애와 동등한 위치를 누릴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명확히 쓰여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은 단 두 가지. 남성과 여성이라고.

죄는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죄에 대해 능동적이지 않을 수 있다.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죄의 문제는 의지에 달렸다.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크리스천 동성애자‘라는 용어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크리스천임과 동시에 동성애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죄를 따를 것인가.

목욕탕 여장 남자
▲관련 중앙일보 보도 캡처.

지난 2월 15일,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남성이 서울 강남 한 목욕탕의 여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다 들통이 나버렸다. 이 남성은 경찰의 수사 후 검거됐다. 당연한 처사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별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고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며, 본인을 여자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나, 그의 가정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도 결핍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핍은 권리가 아니다. 결핍은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성소수자들은 결핍을 권리로 승화시키려 한다.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서다.

진리는 말과 글로 전달된다. 말과 글이 아니고서는 진리가 전달될 방법이 거의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수많은 입법 시도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말과 글이 금지되려 한다. 더 정확히는 진리가 ’혐오‘라며 금지되려 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여탕에 들어오는 남성들을 검거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진리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여탕이 위험하다. 아니, 진리가 위험하다. 진리를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위험하다. 내가 ‘진리’라고 썼을 때, 박수를 쳐달라고 강요하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그걸 ‘혐오’라고 읽겠다고 강제하지도 말아 달라.

정은이(1993년생)
성신여자대학교 졸업
차별금지법 반대 청년연대 회원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회원
(사)대한민국 통일건국회 청년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