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제공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이 오는 1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제17회 기획전 ‘3·1운동 이후 기독교 민족운동: 조선교육회·물산장려운동(1912)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한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최근 3년에 걸쳐 3.1운동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2년 전에는 3.1운동의 이야기를 열어가는 의미에서 ‘기·이천지역의 3·1운동의 역사’를 조명, 지난해는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아 북한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한 3.1운동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연장선의 마무리로, ‘3.1운동 이후의 민족운동’에 대해 초점을 둔다. 선교육회, 물산장려운동관련 사진자료 15점, 일제 식민지시대 기독교 및 신교육교재 40점이 전시되며 신교육태동, 교육형태, 물산장려운동 및 금주, 금연, 절제운동에 대해 소개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지구촌을 팬데믹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19로 인해 어느 때보다 박물관 운영에 위축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할 때일수록 지식·문화·정서에 대한 요구와 옛 역사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충족시켜 줄 박물관의 역할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전시회는 1919년 3·1운동을 지내고 시작된 조선교육협회(1920)와 물산장려운동(1920년)이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3·1운동 이후의 기독교 민족운동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의식 개혁에 이바지한 기독교교육과 외세에 대해 경제적 독립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물산장려운동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고자 『3·1운동 이후의 기독교 민족운동』을 주제로 기획전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조선교육협회에 대해 “식민지적 상황을 각성시키고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의 진흥을 통하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시키기 위한 목표로 세워진 실력양성 운동인 동시에 사회개조 운동이었다”고 소개했고, 물산장려회에 대해서는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조직한 단체로 식민지하에서 경제 독립운동을 지향하는 비폭력적인 저항방식을 통하여 식민지 조선인들의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민족경제자립’을 지향하는 물산장려운동을 이끌었다. 이는 경제 자급자족의 길이 민족이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하고 우리 민족의 생산기관을 발전시켜 민족산업을 일으키고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는 경제적 민족운동이었다”고 소개했다.

3·1운동 이후 기독교 민족운동: 조선교육회 · 물산장려운동(1912) 100주년 기념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제공
또 박물관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3.1운동은 칠흑같이 암울한 식민지 상황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현존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희망이자 메시아적 비전의 선포였다”며 “또한, 3.1운동은 양육강식의 제국주의를 종식시키고 정의와 인도에 기초한 민족자결을 통해 평화의 세상을 이루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며,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한 분투였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3.1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하며, 평화롭고 통일된 한반도가 바로 3.1정신의 완성이자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일치와 평화를 이 땅 한반도에 심고, 살아내는 삶, 그것이 바로 오늘의 3.1운동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어가야 할 정신이며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물관은 “3.1운동의 노도와 폭풍이 지나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민중들은 이념적인 분화로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로 나누어지게 되고 주로 민족주의 계열에 의해 추진된 1920년대의 실력양성운동은 민족운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며 “이 가운데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교육운동이다. 여기서 ‘기독교 민족운동’이라는 용어는 기독교적 사상과 이념을 토대로 국가와 민족공동체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극복하고자 펼친 운동을 말한다”고 했다.

이어 “이것은 기독교적 사상과 신앙을 통해 형성된 내적 논리가 민족운동의 동력이 되고, 기독교적 종교조직을 통해 형성된 인적관계를 기초로 민족운동에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며 “1920년대 기독교 민족운동은 국내 민족운동의 근거를 수립하여 기독교 세력이 각 부문별로 민족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