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난중일기

이순신 | 송찬섭 역 | 서해문집 | 424쪽 | 13,900원

스크린 속 영웅들은 비범하지만
진짜 영웅 이순신, 특별하지 않아
특별한 업적 만든 건 평범한 사람

스크린 속 영웅은 평범하지 않다. 슈퍼맨은 태어남이 특별하다.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이다. 스파이더맨. 본인이 평범하니 물어주는 거미가 특별하다. 아이언맨은 상상도 못할 만큼 똑똑하고 생각지도 못할 만큼 부자다. 캡틴 아메리카는 특별한 생체 실험의 결과다. 특별한 일을 했던 영웅들. 그 중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최고의 영웅 이순신 장군. 그가 남긴 업적은 특별했다. 임진왜란 23전 23승. 임진왜란은 왜적이 10일 만에 한양까지 점령한 전쟁이다. 나라는 무력했고, 관리들은 무기력했다.

그때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첫 승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 임진왜란 무패. 게다가 13척의 배로 130척이 넘는 배와 싸워 승리를 만들어냈다. 그 유명한 명량해전. 이는 세계 수군 역사에서도 기적이라 불리는 승리다.

특별한 승리를 만들어낸 이순신. 그러나 그의 삶은 특별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의 일상을 보여주는 <난중일기>. 그 속에는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매일 출근해서 공문 처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조선시대 공무원의 삶이 들어 있다. 심지어 구국의 영웅답지 않게 잔병 치레도 많았다.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2-3일은 꼬박 앓아눕기 일쑤였다.

스크린 속 영웅은 특별한 일을 했던 특별한 사람들이지만, 현실 속 영웅 이순신은 특별한 업적을 만들어낸 평범한 사람이었다.

난중일기 명칭, 사후 200년 후 붙어
일기보다 일지, 매일의 간단한 기록
전투 있는 날에는 빠진 기록도 많아

임진왜란은 임진년(1592년) 4월 시작되었다. <난중일기>는 그해 1월 1일부터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록한 것이다. 그때부터 무술년(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 동안 쓴 일기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戰死)한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무술년 11월 9일에서 19일까지 이어졌다.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 중에도 일기를 기록했고, 전사하기 2일 전인 17일까지 일기를 썼다.

<난중일기>라는 이름은 이순신 장군 사후 200년이나 지난 후에 붙여졌다. 정조(正祖)는 임진왜란 발발 200주년이 되는 1792년(정조 16)에 이순신의 품계를 영의정으로 높였다.

아울러 이순신의 글과 그에게 준 글들을 모아서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했다. 이 때 편찬자들이 그의 ‘전란 중의 일기’를 묶어 편의상 <난중일기>란 이름을 붙였다.

<난중일기>는 내용으로 보면 일기(日記)보다 일지(日誌)에 가깝다. 기록 형식은 제일 앞에 날짜를 쓰고, 이어서 날씨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기록해 두었다.

“초 4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초 5일 맑다. 그전처럼 뒷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초 6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초 7일 아침에는 맑았는데 늦게서부터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더니 종일 계속되었다. 조카 봉이 아산을 떠났다. 남원 유생이 임금께 새해를 축하드리는 글을 가지고 가려고 들어 왔다.”
“초 8일 맑다. 객사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초 9일 맑다.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객사 동헌으로 나가 임금님께 올릴 새해 툭하의 글을 봉하여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이런 형태다. 그러다가 훈련이나 배 수리 등 특별한 내용이 있으면 추가된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일기 내용이 단순하고 지루하다.

명량
▲영화 <명량> 속 이순신 장군(최민식)의 모습.
무엇보다 한참 전투 중에는 기록이 어려웠는지, 전투가 있는 날이면 일기 기록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기대하는 박진감 넘치는 전쟁 기록은 많이 들어있지 않다.

심지어 13척의 배로 130척이 넘는 적에게서 승리한 명량해전조차 단순히 요약된 형태로 전투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일기라는 느낌보다, 일지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개인적인 감정 기록도 비교적 단순하게 되어 있다. 어머니에 건강에 대한 걱정과 자녀들에 대한 걱정, 나라에 대한 걱정을 짧게 표현한다. 원균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비록 짧지만 숨기지 않고 기록한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강하게 기록했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막내 아들 ‘이면’이 죽었을 때다.

“배에서 달려온 종 순화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딩굴었더니 하늘이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모두 다 적을 수가 없다.”

“면(막내 아들 이름)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이순신의 엄청난 승리, 평범함에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승리를 준비해
임진왜란 시작 이후에는 매일 회의

<난중일기> 속에 등장하는 이순신은 평범한 가장, 평범한 공무원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 엄청난 승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평범함이다. 이순신 장군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승리를 준비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수군의 군기를 세웠다. 군관과 관리들이 배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곤장을 쳤다. 이웃집 개를 잡아먹은 병사에게 곤장 80대나 때렸다. 수군 모집을 게을리 했다고 아전의 목을 베었고, 탈영병과 군량 절도범은 용서 없이 목을 베어 높이 걸어 두었다.

반일 영화 봉오동 전투 명량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계의 반일 조류를 촉발한 작품, <명량>의 한 장면.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나서는 거의 매일 회의를 이어갔다. 임진왜란 발생 이후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만남과 대화다.

“24일 맑다. 순천 부사, 광양 현감, 흥양 현감이 왔다. 저녁에 방답 첨사와 이응화가 왔다.
“25일 맑다.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26일 맑다. 순천 부사, 광양 현감, 방답 첨사가 왔다. 우수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리포 첨사도 왔다.”

그리고 전투가 없는 날에도 배 위에서 잘 때가 많았다. 일상의 한 순간도 대충 흘려보내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승리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 ‘일상’이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전에 일상에서 승리했다.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서 승리한 그는 적과의 싸움에서도 승리 할 수 있었다.

챔피언, 경기장 아닌 연습장에서 결정
매일 흘린 땀의 결과 시합에서 나타나
하루 죄를 이기는 평범한 성도가 영웅

<감성의 끝에 서라>라는 책에서 저자는 ‘추월의 길’ 대신 ‘초월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을 이기는 것이 ‘추월’이라면, 나를 이기는 것은 ‘초월’이다.

매일 일상의 삶에서 나를 이긴 ‘초월의 삶’을 산 이순신 장군은 왜적의 공격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믿음의 승리도 결국 일상에서 결정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딱 한번 기도하신 것이 아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하시기 전에도 늘 ‘이른 아침 기도’를 하셨다.

챔피언은 경기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연습장에서 결정된다. 매일 연습장에서 흘린 땀의 결과가 시합을 통해 나타나는 것 뿐이다.

진짜 영웅은 적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다. 하루 하루를 이기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 죄를 이기는 평범한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특별한 영웅이 된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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