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교수 (연세의대 명예교수)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 민성길 교수(연세의대 명예교수).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합헌을 선고한지 불과 7년이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임신 22주 이내의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불가피한 낙태에 대한 새로운 입법을 할 것을 권고하며 헌법 불일치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2020년 12월말까지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임신 22주 이내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는 새로운 법을 만들라는 것이다.

2020년 8월 법무부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위원장 김엘림)는 임신 주수와 무관하게 형법에서 낙태죄 조항을 삭제하도록 권고하였고, 법무부는 이에 따라 ‘낙태죄 폐지’를 정부 입법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 여성시민단체와의 면담에서 낙태죄 폐지법 처리를 약속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법무부와 추미애 장관의 낙태죄 전면폐지 움직임에 다음과 같은 의학적, 사회적 이유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바이다.

첫째, 태아의 생명권이 지켜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낙태 건수와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가지고 있다. 2018년 산부인과 의사회 추정 연간 약100만건의 낙태 시술이 시행되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9년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한 ‘출산율 1명대 미만’ 국가이다. 2019년에 태어난 약 30만명의 신생아보다 낙태로 인해 사라진 태아의 수가 몇 배가 더 많은 것이다. 이는 낙태죄가 유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만약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명목하에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낙태가 이루어질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태아는 약 5주경 심장박동이 시작되며 13주경에는 거의 모든 장기가 형성된다. 최근에는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체중 약300g의 초미숙아도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태아는 언제부터 생명인가? 태아는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 것이며 우리가 임신을 인지할 수 있는 시점은 보통 4-5주경이다. 크기가 작고 자궁 안에 있고 의사 표현을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생명이다. 태아는 가장 연약한 생명이며 그 생명권은 어떠한 상황에도 절대 침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낙태는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임신 주수에 상관없이 모든 낙태 시술은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낙태 시술은 자궁내 유착, 자궁천공, 자궁파열, 복막염, 불임, 출혈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임신 주수가 더 진행될수록 그 위험성은 훨씬 더 증가하게 된다. 임신 중기 이후의 낙태 시술은 출산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자궁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자궁수축부전 등으로 응급으로 자궁적출술을 시행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임신 10주 이내의 낙태도 불임이나 감염과 같은 심각한 의학적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신체적으로 큰 후유증을 인지하지 못한다 해도 그 정신적 후유증은 오랜 시간 동안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낙태 시술은 여성에게 크고 작은 합병증을 유발하고 일부는 영원히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셋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낙태죄의 폐지 여부는 법무부 장관이나 법무부와 여당이 합의하여 다수결로 통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헌법재판관들이 정답을 내놓을 수도 없다. 만약 수년 후에 다른 헌법재판관들이 다른 판결을 하게 되어 또다시 법을 바꿔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큰 혼란을 피할 수 없고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법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기 전에 각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낙태를 허용했던 미국의 경우도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최근 몇 개의 주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낙태를 제한하는 법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낙태죄를 없애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먼저 남자와 여자가 본인들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올바른 성윤리를 교육하며 계획하지 않은 임신의 경우에는 남자에게도 경제적 책임을 법적으로 물을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히 피임 방법을 가르치는 성교육으로는 절대 낙태 건수를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낙태죄 폐지를 추진하는 이들이 만약 낙태가 어떤 방법으로 시술되는지 한 번만 눈으로 보았다면, 그 시술로 인해 자궁 밖으로 나온 토막난 태아의 모습을 보았다면 지금과 같이 졸속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낙태 시술을 받게 되는 여성들은 바로 우리의 배우자이자 자녀이며 이웃이고 태아는 미래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자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전면적인 낙태죄 폐지 움직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낙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되어야 하며 새로운 법은 가장 약한 태아를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2020.8.21. 한국성과학연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