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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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장 1-3절

우주적인 규모로 시작되는 본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한다는 창세기와 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우주를 창조하는 내력이 기술된 것처럼, 여기서도 보이지 않는 영적 창조가 됨을 의미합니다.

조금 다른 것은 창세기는 보이는 세상의 창조라면, 보이지 않는 영적 창조를 합니다. 영원한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창세기와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영원한 말씀의 로고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선재성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미리 계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입니다.

인간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반드시 B.C와 A.D.로 구분합니다. B.C는 기원전으로 ‘Before Christ’ 그리스도 탄생 이전이고, A.D.는 기원후로 라틴어로 ‘Anno Domini’의 ‘주님 통치 이후’를 의미합니다.

이 서기(西紀)는 기독교 신학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교황 성(聖) 요한 1세에게 처음 사용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제는 서기가 우리가 사용하는 역사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서기의 사용이 어떻게 보면 우연이겠지만, 그 우연이 때로는 필연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모를 때 ‘우연’이라고 하지만, 알고 나서는 ‘필연’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세상에는 우연이란 없고, 필연만이 있다고 말합니다.

역사의 주인 되신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연히 세상에 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초부터 계셨다가 오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사람의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 아니라, “I am that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입니다.

본래 ‘존재하시던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成育身), 화육(化育)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존재하셨다는 주님의 선재성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이 그 시작이 아니라, 우주의 시작부터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영원한 말씀의 로고스가 그 선재성을 드러내는 이유입니다.

2. 그리스도의 영원성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신다는 존재성입니다. 2절은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입니다.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가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입니다. 이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란 말 그대로 세 가지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연관이 되고 통합된다는 말입니다.

성부(聖父)이신 아버지, 성자(聖子)이신 아들, 성령(性靈)의 세 위격(位格)이 하나의 실체입니다. 성모(聖母)가 아닌 것이 애석합니다만, 성령이 동일하게 성모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론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교회의 정통신앙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이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믿지 않으면, 모두 이단(異端)으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세 위격이 세 가지의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중에도 일인 삼역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세 가지 인격이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神)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을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영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한 존재는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계적으로 존재하기에, 한계적인 사랑을 할 뿐입니다. 이는 영원한 말씀의 로고스가 바로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이유입니다.

3. 그리스도는 창조의 주체

그리스도는 세상을 만드신 창조의 주체입니다. 본문 3절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의 명확한 구분은 존재의 속성에 있습니다. ‘지은 바 되었다’는 것이 피조물인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에게네토’입니다. 에게네토는 “…이 되어 간다.”는 becoming입니다.

주님은 지은 바 되는 피조물이 아니기에, ‘되어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신의 현격한 차별화입니다.

인간은 부족하기에, 끝없이 ‘되어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을 하고 연마하고, 담금질을 하면서 다듬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주님은 인간이 아니기에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셨지만,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시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주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도 옆에서 거드신 것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로 직접 함께 하셨습니다. 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 바로 주님을 증명하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곧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는 영원한 말씀의 로고스가 바로 창조의 주체인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영원한 말씀의 로고스는 바로 주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형편없는 저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렇게 복을 많이 받고 살고 있습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태초부터 계시는 주님을 깨닫게 하소서, 영원히 계시는 주님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