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16:17)”.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4-1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영원 불변함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좋은 조건을 달고 약속이나 계약을 하고 서명을 했다 할지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든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불이익이나 위험한 일을 당할 경우에는 깨어지는 것이 세상의 약속과 맹세입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필자의 아들이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집들이 겸해서 서울에 집사람과 함께 가려고 했는데, 때마침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하여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 마침 딸아이가 방학을 맞아 친정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딸아이가 방학이 끝날 무렵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저희 부부와 함께 아직 가보지 못한 아들네 집으로 가자고 해서, 흔쾌히 그러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방학 기간 동안인 7월 달에 위 내시경을 하려고 예약을 하긴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방학이 늦어져 8월 7일 내시경 예약을 했던 터라, 내시경을 마친 다음 날 서울로 함께 가려고 약속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장마가 길어지면서, 산사태를 비롯하여 도로가 망가지고 강물이 불어나 논과 밭은 물론 집까지 쓸려가는 대홍수가 발생하여, 서울로 가기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차피 서울로 가야 하므로, 집사람을 비롯한 딸네 가족과 의논하여 내시경 하는 날 이른 아침에 집사람과 딸 가족만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딸네 가족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버지의 내시경 결과도 보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을 읽었기에, “괜찮으니 어서 출발하라”고 하여 딸 가족과 아내가 함께 서울로 떠나갔습니다.

마침 비가 오질 않아 매우 안전하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 역시 안심이 되어, 아들네 집들이를 잘 하고 오라고 위로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약속은 기후 하나로도 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시기와 때, 그리고 장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게 사람들의 약속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우리가 전적으로 믿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사람들과의 약속 역시 철저히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뢰하고 전적으로 믿는 예수님의 생애를 돌아보면,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시며 그 계획된 약속을 완성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십자가 군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의 일정이 매 순간 바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쁜 일정 속에 세례 요한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말하자면 동지와도 같았던 세례 요한의 죽음은, 참을 수 없는 먹먹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식을 듣자 배를 타시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십니다. 그곳에서 홀로 얼마나 통곡을 했을까요?

그러나 이런 예수님의 심정과는 무관하게, 군중들이 몰려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슬픔보다 사람들의 처지를 더 가엾게 여기시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십니다.

‘감정 처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정 처리를 완벽하게 하시는 분으로 보여집니다. 엄청난 감정의 폭풍 속에서도, 차분히 사람들을 먹이시는 일 또한 서슴없이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의 미숙함에 속상할 법도 하지만, 오천 명을 먹이시면서 제자들에게 담담히 이 기적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선물하신 후,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한 후 군중들을 돌려 보내십니다.

군중들을 돌려 보내는 일을 왜 제자들에게 맡기시지 않고 손수 하셨는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가니 각자 처소로 돌아가는 군중들이 걱정되셨을까요? 아니면 그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마음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따로 한적한 곳에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오르십니다. 저녁이 될 때까지 혼자 그 산에서 기도하시며, 아버지와 함께 오늘의 일을 나누셨을까요? 아니면 미처 다하지 못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마저 하셨을까요?

하지만 곧 호수에 맞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렁입니다. 기도 중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있을 제자들이 갑자기 걱정되셨는지, 서둘러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갑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갔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다”라고 소리칩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제자들은 두려움에 마냥 소리를 질러댄 것입니다.

또 한 번 제자들의 미숙함에 속상할 법도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의연하고도 철저하게 깨어 있으신 그 모습, 당신의 감정과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구별하시는 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들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약속을 철저하게 이행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약속의 완성을 위해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로마 총독인 빌라도로부터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못 박히시기까지, 한쪽에 있던 강도를 구원하십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곡히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고요하게 속삭이시는 외마디를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약속의 표징으로서 천둥번개가 이 세상을 뒤덮는 순간, 주님의 약속은 완성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모든 약속을 완성하시고 마지막 승천하실 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고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0)”.

이제 주님의 약속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이 약속을 우리 신앙인들은 철저히 믿고 신뢰해야겠습니다. 여태 잘 견디다가 마지막 이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하는 억울한 불행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헛된 권력과 명예, 그리고 교만과 탐심을 물리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을 비껴갈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믿음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철저한 약속을 기다리는 신앙인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한 코로나19 때문에 한여름에도 써야 하는 마스크로 인한 고통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주하게 된 것은, 과거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했던 우리 행동거지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기후 변화와 펜더믹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각자 깊은 성찰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약속의 땅을 더 이상 파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구와 모든 창조물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선택해야 하며, 우리 신앙인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함께 동참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실천하는 믿음의 군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