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공 아파트 부동산 남산 하늘 시내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크투 DB
NCCK 언론위원회(위원장 권혁률)는 ‘7월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부동산 정책과 행정수도 이전’를 꼽았다.

위원회 측은 “이번 선정은 ‘욕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오래된 숙제를 앞둔 현 시국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라며 “정부는 실수요가치보다 과다 산정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된 권력과 부를 분산시키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오래된 숙제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며 “그러나 코로나19로도 갈라지지 않았던 여론이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갈라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행정수도 이전, 지역균형 발전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책이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 동의하지 못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갈등을 치유하고 희망을 제시할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대기자, 김덕재 전 KBS PD, 김주언 열린미디어연구소 상임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가나다순). 다음은 위원회 측이 밝힌 신청 취지이며, 이번 달 필자는 심영섭 교수다.

계급의 위세품으로 전락한 부동산

집은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같은 공간에 서 있어도 주거할 집을 소유한 사람과 잠시 노동을 위해 머무는 사람은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다. 누구나 화려한 불빛의 강남에 진출하는 것을 선망하지만. 결국은 대다수가 “강남이라는 거대한 부잣집에서 일하다 밤이면 원룸이라는 문간방에 틀어박혀 그림자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지지자들조차 자신의 집값이 떨어질 수 있는 선택에 대해서는 머뭇거렸고, 서울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헌법재판소는 2004년 서울이 수도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어이없는 논리로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지켰다.

강남으로 대변되는 욕망의 도시, 서울은 그 주변부 위성도시까지 합하여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인구밀집지역이나 권력과 부가 모두 응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부동산은 계급의 위세품(威勢品)이자 포기할 수 없는 자산가치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그 거품의 시대가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부동산은 경제발전은 물론 사회발전마저 발목을 잡고 있다.

2017년 부패한 정권을 ‘촛불혁명’으로 몰아내고, 국민주권을 회복한 뒤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키고 기초자치단체 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할 수 있도록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준 2040 세대는 ‘부동산 문제’를 기점으로 정부여당에 등을 돌리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급확대’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2040 세대의 표심에 호소하고 있다. 집은 이제 현 정부의 미래를 좌우할 정치적 이슈가 된 것이다.

불안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사회 불평등의 원인을 찾고, 착취와 차별, 세습되는 가난을 극복하기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평등에 기초한 부동산 정책은 시도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평등이 지향하고자 하는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지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안과 희망은 심연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감정이다. 불안을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 불안을 이길 힘은 같은 심연에 자리한 희망이다. 희망은 방향이 확실할 때, 자발적으로 차오르는 감정이다.

부동산 정책은 코로나19로 영혼이 불안해 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이란 지금은 도달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도달할 목표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안정된 삶은 집이라는 토대위에 세워져 있다. 최소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에게는 그렇다.

행정수도 이전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 가운데 하나일 수 있고, 고위공직자들이 1가구 1주택을 보유하고자 실천하는 것은 목표로 가기 위한 실천수단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철학은 ‘그래서 개개인에게 이 불안을 딛고 일어설 희망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평등에 기초하지만, 지향하는 ‘평등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질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은 도피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갈 미래로 이끌어 줄 동력이다. 희망은 존재하지 않지만. 소멸하지도 않고 우리를 미래로 우리를 동력이다. 희망은 아직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소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불안이 희망을 제압하는 순간, 절망이 전체를 뒤엎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희망의 원리, 희망의 원칙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사 11:6-9). 어찌 보면 서로 탓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상황(렘 31:34)을 만들거나, 주리거나 배고프지 않아도 되는 상황(계 7:16)이 만들어지는 것이 희망일 것이다.

희망은 좌절하지 않는 의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는 다양한 대안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노동이 온전히 자신의 성취로 귀결되지 못하는 것은 노동자가 재화를 생산하더라도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재화만이 상품으로 의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축적 과정에서 자본의 편중과 자기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필연적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의 의미를 사회적 성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자본편중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을 행복한 결말로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좌절시킬 수는 없다. 희망의 원칙은 좌절하지 않는 의지에 있다.

서울에 기반을 둔 기득권 세력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관습헌법은 수도권의 권력과 부를 점점 더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부동산은 이러한 수도권 권력과 계급을 반영하는 물신으로 작동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핵심은 크게 지역격차 해소와 계층격차 해소, 세대격차 해소에 있다. 민주당은 내 집을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 임금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계급 간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으로 계약갱신청구권 보호와 전월세 상한제 도입, 전월세 신고제로 대표되는 주택임대차 보호3법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경직된 법률이 주택 미보유 세대의 생존권을 역으로 위협하는 문제점도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전세자금이 주택보유 세대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이동하는 사다리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전세주택이 사라지는 것은 또 다른 악순환일 수 있다는 비판이 등장한다. 또한 계층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임대차 3법이 오히려 걷어차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비판도 한다.

지역격차와 계급격차만큼이나 큰 문제는 세대격차이다. 신분상승의 기회마저 상실한 2040 세대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한다고 한다. 부모에게 상속받지 않고 2040 세대가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언론이 부추기는 세대갈등은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그나마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소수의 이야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2040 세대에게 서울은 “눈 내리는. 밤하늘 어디에도 .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는” 절망의 도시인 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갑작스런(!) 부동산 정책이 아닌 오래된 경국대전의 관습법이 지배한 욕망이 절망을 쌓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은 상속받은 재산과 여윳돈을 가진 2040 세대가 아닌 학자금대출을 갚아야 하고, 결혼을 꿈꾸기도 힘겨운 2040 세대에 맞춰져야 한다. 2040 세대와 신혼부부를 위한 적금형 청년주택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10년간 LH공사에 적금을 붓고, 만기 후 주택마련 기초자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전국적으로 청년주택을 공급을 고민해야 한다. 당장 태릉골프장부터 청년주택 공급을 위해 개발할 필요가 있다.

2040 세대에게 희망사다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에게 주는 희망은 세대 간 혐오와 지역, 계층갈등을 해소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만일 우리 사회에 아직도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가난과 불안에 영혼을 저당 잡힌 청년세대에게 정의로운 내일을 준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회 불평등의 원인은 착취와 차별, 세습되는 가난에만 있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불안에 저당 잡힌 영혼에서 출발한다.

마지막 퍼즐, 행정수도 이전

행정수도 이전은 오랫동안 추진되어온 정책이다. 여야가 따로 없는 국책사업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이래 역대 대통령과 주요 대통령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주장은 대동소이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세종시를 실질적 대한민국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의 공약은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공약이행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수도 건설이 완료되고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국토균형발전은 물론, 인구분산과 권력, 부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산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아무리 미래에 다가올 현실이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무엇을 해 왔는가? 부끄럽게도 부동산 재벌로 급성장한 세력의 일부는 한국교회일 것이다.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사 58:7)”이 기독교인이 실천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짓고, 그 속에 안주하면 권력의 성을 쌓아 올린 주체가 한국교회이다. 그곳에 과연 어떠한 희망이 있는 것인가?

교회는 인간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과 관계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늦었지만, 한국교회는 지금이라도 부동산 재벌이 아닌, 가난한 자들의 공간, 가난한 자들의 희망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각성이 이달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부동산 정책과 행정수도 이전’을 선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