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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은지라(마태복음 27장 4-5절)”.

가룟 유다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입니까? 그도 베드로도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온전한 회개를 통하여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뜻을 믿고 함께했지만,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가벼이 한 안타까운 결과입니다.

자살(自殺)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목숨을 끊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0분에 한 명씩 목숨을 끊을 정도로 자살률이 높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OECD 회원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살은 개인 고유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영향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산업화로 인해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높다고 합니다.

산업화가 덜 이뤄진 국가들, 덜 잘 사는 나라들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낮고 행복지수는 높다고 합니다. 산업화는 경제적인 풍요로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 이유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1950-1960년대에는 자살률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가족들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며, 머지않아 우리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목표와 긍정의 기대감으로 꿋꿋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개개인과 이웃, 그리고 나라가 잘 살고부터는 오히려 귀중한 생명을 끊어 버리는 현실입니다. 못 먹고 살던 그 시대에는 이웃 간에 서로 정을 나누고 배려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이 아련한 추억으로 피어오릅니다.

자살의 유형을 보면, 심한 모욕감이나 누명을 썼거나 모함을 당할 때, 그리고 가정파괴나 심한 경제난, 사업실패로 인한 부도, 배신, 그리고 단체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을 때 등이 있습니다.

또 연예인들의 우울증과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 정치인들의 권력과 부패로 말미암아 사회에 지탄을 받을 때, 그리고 이성간의 사랑의 실패에서 겪게 되는 괴로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이를 모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불교에서는 승려들이 사회적 항의의 일환으로서 산 채로 분신하는 희생을 감행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자살을 도모한 여섯 명의 특정 인물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삿 9:54), 사울(삼상 31:4), 사울의 무기 든 자(삼상 31:5), 아히도벨(삼하 17:23), 시므리(왕상 16:18), 가룟 유다(마 27:4-5) 등입니다.

자살한 여섯 명 중 다섯 명은 죄를 지은 남성들입니다. 물론 사울의 무기를 든 시종에 대해서는 그의 성품이나 판단할 만한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성도들은 삼손의 죽음도 자살이 아닌가 질문합니다. 삼손 역시 자신의 행위가 죽음으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같은 맥락일 수 있지만, 삼손의 목적은 자기 자신이 아닌 블레셋 원수들을 죽이는 일이었기에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삿 16:30).

자살로 고귀한 생을 마감하는 성경인물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부정적인 인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 사울은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실 만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5:11).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의 편에 서서 왕인 다윗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모반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계략이 실패했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삼하 17:23).

그리고 가룟 유다는 스승이었던 예수님을 은 30냥으로 팔아넘긴 배신자입니다.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마 27:4)”.

가룟 유다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 가장 아픈 역사를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 했다는 평가를 들은 제자였습니다(마 26:24).

성경은 자살을 살인과 동일하게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살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고, 풀 한 포기도 그저 죽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욥은 말합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 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고 돌아 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자살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선물을 거절하는 죄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취해 자신의 생명을 끊어선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탁하지 않은 채 세상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사회가 주는 악영향을 통해 부정적 사고를 함으로써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살하라고 하신 말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의 자살은 더욱 끔찍한 일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영역이요 권한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그를 함부로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에덴의 낙원에서 죄를 짓고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낙원에서 아름다운 행복을 누리고 살았지만, 인간의 특성인 교만이 발동하여 최초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동산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먼 나라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의 크신 계획하심과 뜻을 믿고 험한 세상의 고통을 참고 인내함으로써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추대됩니다.

극단적 선택 없이 버텨낸 그는 결국 가족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큰 역사를 만든 성경 인물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큰 교훈의 롤 모델이자 주인공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삼손 역시 사사로서 큰 수모를 당했지만 결코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참고 인내하며 그에게 찾아온 기회를 요긴하게 잘 사용하였던 성경 인물로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박원순
▲성추행 혐의로 피소 직전 자살을 택한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모습. ⓒ유튜브
최근 몇몇 정치인들이 성추행과 성폭력 사건으로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어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국민들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치를 피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덕망있는 지식인으로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힘 있는 권력자들이 성추행과 성폭력 그리고 갑질을 하는 것뿐 아닙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와 낙태 합법화 문제, 그리고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책임을 교회에 전가하며 소모임까지 못하게 했던 탄압도 있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결코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다 공예배에까지 간섭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듯 기독교 탄압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기에,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은 결단코 나서서 막아내야 하겠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타살을 자살로 위장해 모든 사건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일 역시 자유 민주주의에서는 결단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도, ‘내로남불’ 로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이중 잣대는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닭 울기 전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깊은 통회와 회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회개하고 돌이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지 않았다면, 밤을 지새운 수고가 헛된 절망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한다면, 극단적 선택은 배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기쁨으로 가득한 천국 잔치에 당신을 초대하실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반드시 살아남아 회개하며,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창조질서를 흩트리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교만한 행위임을 깊이 깨닫고, 날마다 자신을 사랑함과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는 귀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도록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날마다 긍정의 찬송을 높이 부르며 저 천성을 향해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