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5장 10-12절

고난 십자가 예수 나무 성금요일 부활
▲ⓒ픽사베이
주님의 산상설교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에 관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의(義)는 옳은 일을 위한 것입니다만,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을 지칭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억울하게 고난을 받거나 투옥되고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보장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마지막 여덟 번째가 되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옳은 일을 위해 고난당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10절)”.

로마가 세계를 통치하던 시대에는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수많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네로 황제의 박해는 가장 유명합니다. 정신병자 같던 네로 황제는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인을 잡아다가 사자굴에 집어던지기도 해서, 그 잔인성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혹독한 박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이라는 지하 묘소에서 예배 모임을 갖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을 위한 박해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무려 300년 동안이나 네로, 도미티안, 트라얀 등의 3차 박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반드시 신앙 때문만은 아니지만, 우리의 역사에서도 옳은 일을 고난을 당한 사람이라면,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들고 싶습니다. 그는 6년의 감옥생활과 수십 년 동안의 망명, 연금, 감시를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정치를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숱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정치 보복을 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실천했습니다.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우리나라의 IMF(국제구제금융)이라는 경제위기의 국난을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와 인권국가, 경제와 사회복지 선진국, 정보화 강국으로 이끄신 분입니다. 옳은 일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2. 주님을 위해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

억울한 심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구조에서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커지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강한 억울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억울함이 신앙과 결부되어, 괜히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를 말합니다.

자신이 신앙을 갖고 지키는 일뿐 아니라, 그 신앙 때문에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나 아니라, 주님 때문에, 하늘나라, 교회를 위해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 때문에 괜한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암시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심리처럼, “주는 것 없이 밉다”는 식으로 믿는 사람을 괜히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그런 때에 흔들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 때 약해져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면서 주체성을 갖고 신앙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믿는 자의 고난은 행복하게 여길 일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을 기뻐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욕당하거나 억울함을 경험하게 될 때, 오히려 행복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어서 고난 받는 것은 수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일을 위해 심한 모함을 받는 사람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1-12절)”.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주님을 위해 투옥되고 모진 고통을 받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칼과 불과 굶주린 사자의 발톱에 찢기우면서도 끝까지 순교의 아름다운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저는 가끔 순교자 폴리캅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시저 황제가 보는 자리, 거기서 “주님을 배반하고 황제를 칭송하라!”는 집정관의 명령 앞에서, 폴리캅은 “내가 팔십육년 동안 그 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내게 절대로 해를 입히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왕이요, 나의 구주이신, 그분을 모독할 수 있는가?”하고 단호하게 신앙을 지켜 장작불에 타죽음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 대단한 신앙을 우리는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그 시절에 믿으라고 한다면, 제대로 믿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드물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가끔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 심하게 모함을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을 위해 또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온갖 모함이나 박해를 받을 때가 있음을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바로 큰 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거의 한 절로 끝나는데 비해, 이 부분에서는 3절이나 할애를 하십니다.

그만큼 견디기가 어렵기에 큰 복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상도 겸하여 주신다고 큰 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의를 박해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옳은 일을 위해 사는 사람은 참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 억울함과 모함을 당하는 사람은 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옳은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참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모함을 받아도 견디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옳은 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