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설화
창세기 설화

헤르만 궁켈 | 진규선 역 | 감은사 | 256쪽 | 16,500원

1. 오랫동안 기다렸던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의 <창세기 설화>가 드디어 번역돼 출간됐다(궁켈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처음이다).

궁켈이 누구인가? 바로 양식 비평을 주창한 학자가 아니던가? 그는 당시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으로 대표되는 자료 비평을 뛰어넘어, 텍스트 배후에 있는 오랫동안 형성된 구전 전승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그의 고민과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 바로 <창세기 설화>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2. 이 책은 궁켈의 창세기 주석의 서론 부분이다. 100년 전의 창세기 주석 서론이 지금도 적실한가? 이 질문에 대한 시원한 대답이 ‘역자 서문’에 담겨있다. 친절하게도 궁켈의 입장과 창세기 주석의 학문적 배경 등이 ‘역자 서문’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 전에 ‘옮긴이의 일러두기’에서 ‘설화’로 번역된 ‘자게(Sage)’의 개념을 밝히고 있는데, 이 개념 정의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핵심적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3. 저자는 ‘설화’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는 “설화는 ‘거짓말’이 아니라, 특별한 시의 일종이다. 설화는 민간 구술을 통해 옛적부터 전해 내려 오던 시적인 이야기로서,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29쪽)”이라고 주장한다. 이 개념 정리만으로도,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에 가까이 간듯하다.

4. 그렇다면 설화와 역사는 어떠한 점에서 구별되는가? 설화는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역사는 기록물을 목적으로 쓰였다고 궁켈은 주장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설화와 역사의 활동 영역이다. 역사는 거대한 공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만, 설화는 민중들의 관심에 연결되어 있다. 즉 설화는 역사성을 지닌 사건들이 핵심이 아니다.

5. 설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내용적으로는 현대의 관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형식적 측면에서 시적 어조를 지닌다. 이러한 운문적 형식은 인간의 여러 감정을 고양시킨다.

저자는 창세기의 양식이 산문과 운문과는 다른 형식임을 주장한다. 또한 민간 구술 전승을 기록했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설화는 온 민족의 산물이며, 따라서 ‘거대 집단의 공유재산’으로 여겨야 함을 역설한다.

6. 구술 전승의 특성으로 인해 저자는 이스라엘이 ‘전문적 이야기꾼’ 계층이 있었음을 가정한다. 각각의 설화들은 하나의 완성된 전체를 구성한다. 설화 이야기꾼의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은 최소화됐다.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단순성과 명료성’이다. 이를 통해 청자는 여유롭게 관찰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은 화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의 중요도에 따라 배치됐다. 주변 인물들은 짧게 다루며 중심인물에 대한 묘사 또한 매우 미약하다. 부수적 정보의 묘사에도 인색하다.

7. 설화의 등장인물 묘사는 매우 흥미롭다. 인물의 정신이나 생각에 집중하지 않는다. 주로 객관적 행위를 통해 인물을 묘사한다. 대화는 부차적으로 행위의 진행에 따라 약간의 도움을 준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과묵해 보인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마땅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창세기 gen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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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창세기를 주해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설화의 특성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화자의 관심사에 따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희미하고 미약한 정보들과 설명, 대화 틈에서 갑자기 상세하고 분명한 서술이 나타난다면, 주의를 기울여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를 구상하는 작업 가운데도 매우 실제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9. 설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전승들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 전승들의 교환과 합병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장시간을 거치며 여러 요인들로 인해 보편적 변화를 경험한다.

궁켈은 각 설화들이 어떻게 종교적이며 도덕적 혹은 제의적으로 변화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J, E, D, P 각각의 특성과 이 전승들이 어떻게 수집되고 편집되었는지를 상세한 예시를 통하여 추론한다.

10. 궁켈의 오래 전 이 외침은 여전히 많은 지도자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적실하다.

개신교 교회와 지도자들은 창세기가 설화로 되어 있다는 지식에 반대하여(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이 지식이 없다면 창세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 같다(40쪽).

모중현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열방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