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바리새인 시몬의 집 잔치’
▲루벤스, ‘바리새인 시몬의 집 잔치’. 한 여인이 눈물로 발을 씻기는 유명한 장면이다.
요즘 성경을 읽다가 제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같은 종교인들의 타락에 관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인들을 향해 강한 어조로 외치신 부분입니다.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여~!”

성경에서 표현하는 이런 말들이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이라 그냥 넘어가는 것이지, 요즘 말로 하면 “앞으로 너희들의 삶에 저주가 있을 것이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종교인들을 향해 저주의 메시지를 퍼부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진짜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너희들의 장래에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면, 듣는 우리의 감정은 어떻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란 ‘분리된 자, 구별된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 당시 엣세네파, 사두개파와 함께 유대교의 종파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심은 대단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출발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바벨론 포로기 이후 자신들이 망한 이유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는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다 보면, 두 가지 길이 나옵니다. 하나는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의식, 또 다른 하나는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식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에는 별로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나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인들의 그 불순한 마음, 불순한 동기, 오염된 삶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사소한 것은 지키면서 본질을 놓쳐버린 그들의 이중적 생활과 잣대를 강도높게 비판하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사람 눈에 드러나는 것에는 신경을 그렇게 쓰면서, 보이지 않는 것, 사람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에 소홀한 태도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왜 그런 삶이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눈 먼 바리새인이여’라는 표현까지 사용하셨습니다.

남보다 더 잘 본다고 굳게 믿었던 그들이었습니다. 곁눈을 뜨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실을 보며 비판의 강도를 지속했던 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종교인들을 향해서 눈이 멀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특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또한 종교인들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어떻습니까(물론 여기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우리를 보고 예수님은 과연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는 “화 있을진저, 눈먼 자들이여”라는 예수님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