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 13:8)”.

오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버렸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싹은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습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수확을 올렸습니다.

이 씨 뿌리는 비유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풀이를 하며 이해를 도우십니다.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버리는데, 길에 뿌려진 씨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가 없어 고난이 닥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마는 경우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버린 경우라고 풀이 해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늘 예배를 드리지만, 날마다 주시는 말씀이나 영적 말씀을 접하는 매일의 성경 읽기와 필사를 통해 듣게 되는 말씀이 씨가 되어 우리 마음 밭을 비옥하게 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열매 맺는 신앙, 열매 맺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 밭에 새겨 깨달은 사람만이 열매 맺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삶의 변화로 주님을 닮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가르칠 수 없다고 합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고는 슬쩍 비껴가는 말로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절로 결실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의 향기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공부와 그에 따른 이웃 사랑의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며, 친절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또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신앙인이 돼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의 삶의 공간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로 가득 들어차, 소유와 소비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소유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눌 때 그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절약과 검소의 정신으로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아주 작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가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계속되는 우한 코로나19 확진자들로 인해, 마치 기독교가 코로나 사태의 가해자인 양 매도하고 있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역을 비롯해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의 거리두기를 비롯하여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있지만, 유독 교회만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7월 12일) 필자의 전화에는 “(중대본)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규예배 외 모임, 행사 금지, 단체식사 금지, 상시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준수 바랍니다”라는 문자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간 예배까지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심히 우려를 표명합니다. 심지어 국무총리께서 정규예배 외에 소규모 모임을 제한 한다고 합니다. 구역예배, 성경공부, 와 점심식사까지 제한한다고 합니다. 국무총리께서도 교회 직분자인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이런 발상으로 교회를 탄압하는지 매우 유감입니다.

예배 시 찬양대 찬양은 소규모 연습을 통해서만 할 수 있고, 구역예배와 성경공부, 남녀 연합 선교회 모임, 수련회 등 소규모 모임 역시 예배의 일부분인데 어길 경우 3백만 원의 벌금을 부가한다는 폭력에 화가 치밀 뿐입니다.

언제부터 그들이 교회에 관심이 많아 주일 예배를 감독하는 간섭자들을 주둔시키고 교회를 감시하고 있는지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앞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압을 이어가지 않을지 매우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필자가 출퇴근하는 지하철과 버스는 매일 같이 붐빕니다. 어깨와 다리가 닿을 정도로 따닥따닥 붙어 앉아있는 것은 괜찮습니까? 특히 교회는 정부의 지침대로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은 물론, 의자 사이 철저한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유독 교회만을 표적삼아 협박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도 바깥 수많은 식당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고, 카페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식당과 카페들은 모두 괜찮은 걸까요?

소규모 모임이 없는 회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사 역시 소규모 모임을 하고, 브리핑도 합니다. 시청 근처를 둘러보면,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단체로 예약하여 공무원들로 가득 차 있음을 목격합니다.

교회를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의 가해자로 몰아 비신앙인들에게 기독교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주는 사회주의 체제의 신호탄이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우한 코로나19 확산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감염이니, 전문가들이 사전에 중국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9차례나 건의했지만 정치적인 논리로 이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청와대의 잘못이 더 큰데도,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전염을 시킨 것처럼 매도하는 데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음을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로마 네로 황제도 자신이 불을 질려놓고,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며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황제 자신의 정치 목적 달성에 이를 이용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멸시하고 박해와 탄압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하며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던 그 시절과 작금의 코로나 사태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제 대한민국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맞서 싸워야 합니다. 기독교 탄압은 곧 공산체제 사회주의로 가는 길목입니다. 이것은 벌써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나라를 위한 숭고한 정신과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해서도 안 되고, 물러서서도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교계 지도자들께서는 이 기회를 발판으로 뭉쳐서 기도하며, 맞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단상에서 하는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고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신 주님을 의탁하고 나아가는 십자가 군병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모든 크리스천들은 여기서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될 것입니다. 물러선다면, 향후 기독교의 미래는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일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에게까지 쓰라린 고통을 물려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처참한 시대로 변할 것임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또 다시 골고다 언덕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 없도록, 이 땅 모든 크리스천들은 믿음으로 뭉쳐,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사라지지 않도록 삼천리 금수강산 가득히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