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나눔인교회 담임).
신학생 시절(1983년) 채플 시간에 한 미국인 선교사가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말씀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1 4:20)” 그 말씀이 믿음의 수준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개척을 했습니다. 당시(1986년) 한국교회는 부흥의 불길이 있었습니다. 2,000년 세계 기독교역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마다 기적과 표적이 있었습니다. 정신병자가 치료되고, 불치병들이 치료되는 등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기적의 역사가 한국교회에 있었습니다. 전도 용어가 “예수 믿으면 부자 됩니다” “그 병도 예수 믿으면 고침을 받게 됩니다” 가난한 우리 민족에게는 희망의 소식이었습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불치병과 영양실조의 병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은 급속도록 번져갔습니다.

그 시기에 가장 많이 설교한 주제가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 사도행의 표적들과 고전 12장에 나타난 은사입니다. 각 교단마다 은사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이단도 많이 생겼고, 이단으로 정죄되는 목사들도 많았습니다. 방언이 구원의 증표라고 하는 교단도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유명한 목사님(부흥강사)들과 기도원들이 이단으로 정죄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저 역시도 병자를 치료하고,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고, 영분별을 하는 것이 좋은 믿음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안수만 하면 사람들이 넘어지고, 방언이 터지는 것이 큰 믿음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 부흥을 위해서 그런 은사를 사모했습니다. 삼각산은 물론 골짜기마다 산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분들이 믿음이 좋은 분들로 생각했습니다. 믿음과 은사를 잘못 이해를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성경을 점점 알아가고, 은사와 믿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목회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가장 큰 고민이 “왜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암 병도 고침을 받았는데, 갖가지 은사가 있는데 왜 저 사람은 성품이 변하지 않을까?” 제가 잘 알고 있는 분은 수십 년 동안 기도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표적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품과 기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그분의 주변에서 다 떠납니다.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과 행동에 많은 실망을 하고, 떠나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런 분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성경적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실체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핵심이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참 믿음은 하나님의 본체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정의할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문자 그대로 직역을 하면 내 꿈과 비전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증거”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 내가 목격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실체사건으로 목격한 믿음입니다.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입니다.“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 4:8)”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믿음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한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1 4:12)”

필자는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동일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랑의 실천도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아가페)을 실천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수준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분들 또는 교회의 지도자들, 10년 20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남편과 내 아내 특히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분들이 과연 믿음의 사람이라고 어떻게 정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의 교육, 성도의 교육 등도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교육도 부모의 훈육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보고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성경적 믿음이란 사랑입니다. 믿음이 있는(%)만큼 사랑도 그렇게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