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부산행> 속편, 영화 <반도> (上)
좀비 콘텐츠 저주받은 죽음과 영벌 이미지 구체화
기독교적 영벌 이미지 표상 소재로도 자주 사용돼
신앙적 가치는 별로 없으며, 부활신앙에도 부정적
◈좀비와 미디어: 미디어 콘텐츠를 통한 좀비문화의 확산
영화 <부산행>(2016)의 속편, <반도>가 7월 15일 개봉했다. 현재 추이로 봤을 때 국내 극장수입으로만 손익분기점 돌파는 어려워 보이고, 해외 개봉 판권이나 2차 시장(VOD 등) 판매 등을 통해 손익분기점에 근접한 수준의 수익을 거둘 듯하다.
코로나 시국임을 감안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개봉 이후 속속 발표되는 영화평론가 및 관객들의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특히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서사의 창의성과 개연성 부재가 여전하게 지적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전편인 <부산행>보다 크게 떨어지는 속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반도>의 서사 및 영상 전반은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및 디스토피아 영화의 각종 클리셰들을 한껏 버무려 모방한 티가 난다.
미국 좀비물의 대명사인 TV 시리즈 <워킹 데드>(Walking Dead)를 비롯, 영화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시리즈에 나온 각종 좀비 영화의 내러티브 요소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좀비와는 상관없는 디스토피아 영화들, 대표적으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카체이싱 장면들이 카피되어 있다.
한 마디로 <반도>라는 영화는 작품 자체만으로 봤을 때, 기존의 좀비 영화 장르에 새롭게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는, 한국 산업 특유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따르는 영화라 말할 수 있다. 창의성, 실험성만을 따지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한국형 좀비물 <킹덤>이 훨씬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문화비평 관점으로 보자면, <부산행>부터 <킹덤>을 거쳐 <반도>에 이르기까지, 각 작품의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및 드라마가 한국 미디어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정한 의미를 갖는다.
원래 좀비라는 문화요소는 한국의 정신 문화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 문화가 한국 미디어 업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좀비 문화가 현재 전 세계 미디어 업계에 발휘하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입증한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형태의 좀비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것은 일본의 게임업계와 영미권 미디어 업계의 주된 공로라고 볼 수 있다.
1996년부터 일본 게임제작사 캡콤이 개발한 서바이벌 호러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이 시리즈를 영화화한 영미 합작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그리고 21세기 좀비 영화의 서사적 공식(바이러스 실험으로 인한 인간의 좀비화, 달리는 좀비, 정부 붕괴, 원래 알지 못하던 사람들끼리 생존을 위해 협력하고 희생)을 완성한 영국 영화 ‘28일 후’(2002)의 성공 이후, 미국 미디어 업계는 좀비 영화 및 TV 시리즈 제작에 상당한 공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영화 <새벽의 저주>(2004)와 TV 시리즈 <워킹 데드>(2010-현재)의 대대적인 흥행으로 이어진다.
게임 업계 역시 끊임없이 좀비 관련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2013년 역대 최고의 좀비 게임으로 평가되며 흥행에 대성공한 게임 개발사 너티독의 콘솔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1편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미국에서 흥행한 좀비 관련 미디어 콘텐츠들은 넷플릭스 등의 배급망을 힘입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 결과 일본과 한국에서도 미국의 언데드(the undead, 좀비, 구울 등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지칭하는 명칭) 영화나 TV 시리즈를 모방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일본의 대표 좀비물로는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2016)를, 한국의 대표 좀비물로는 위에 언급한 <부산행>과 <킹덤>을 지목할 수 있다.
◈좀비와 종교: 저주받은 영혼의 대중화된 이미지
문화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분석과 고찰에서 크게 앞선 미국 학계에서는 일찍이 이 좀비 문화의 전 세계적인 확산 현상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연구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는 기독교 신학계 및 철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죽음 이후의 삶, 그리고 몸의 부활이라는 기독교 내세신앙을 주된 모티프로 차용한 좀비 콘텐츠는 신학적으로든 종교철학적으로든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 이후, 그리고 부활 관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인간이해를 위한 귀중한 원(原)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위버 주립대학교(Weber State University) 철학교수이자 대중문화의 철학적 분석 방면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리처드 그린(Richard V. Greene)은 ‘불사(不死)의 악독함(The Badness of Undeath)’이라는 연구논문에서 왜 좀비 콘텐츠들이 죽지 않음, 즉 불사의 상태를 대단히 불쾌하고 악한 것으로 그려내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그린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불사 상태가 나쁘다는 생각을 이해하려면, 우선 사람들이 죽음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세에 대한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일단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 의식의 종결이고, 한 사람으로부터 삶의 가능성 전부를 박탈하며 욕망 충족을 좌절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죽음보다는 삶이 더 좋은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면 불사는 오히려 죽음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물론 불사의 상태는, 그것이 좀비나 뱀파이어가 누리는 괴기스럽고 비위상하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가능성 실현과 욕망 충족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가능성과 욕망의 성격이 원래 인간 상태였을 때와 달리 크게 변한다는 점이다.
좀비나 뱀파이어의 가능성과 욕망은 지극히 동물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서, 도저히 그 육체가 갖고 있던 원래의 인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죽지는 않았지만 살아있을 때보다 지극히 비참해진 상태, 존재의 격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가 좀비나 뱀파이어가 누리는 불사의 현실이다.
그런 불사는 인간의 품격을 가진 채 죽는 것보다도 훨씬 좋지 않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차라리 죽음이 나은 것이다. 이것이 그린이 밝히는 불사가 죽음보다 좋지 않게 생각되는 이유이다.
그린의 설명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두 가지 논점을 제시한다. 첫째는 좀비 미디어 콘텐츠들이 저주받은 죽음, 영벌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는 점이다.
원래 성경에서 보여주는 영벌의 이미지는 지옥불 속에서 받는 극한 고통이다. 표현 방식이 크게 다르긴 하지만, 좀비 콘텐츠들은 인간의 저주받은 상태, 그 인격이 끝없이 추락한 상태의 악독함과 고통을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는 영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측면은 뱀파이어 콘텐츠에서는 주기적인 흡혈 욕구가 주는 위험과 괴로움,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인격을 서서히 상실해가는 데서 오는 고뇌 등으로 표현되고, 좀비 콘텐츠에서는 끝없는 배고픔, 계속해서 썩어 문드러지는 육체, 지능 상실과 동물적 본능에만 지배되는 고통 등으로 표현된다.
근현대 뱀파이어 문화, 좀비 문화는 애초 기독교 문화권이었던 서구에서 크게 발흥했고(좀비 문화는 아이티에 끌려온 서아프리카 흑인들의 부두교에서 출발된 것이지만, 곧 서구의 공포, 괴기 대중문화에 흡수되었다), 그 때문에 저주를 받아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무한한 고통의 상태, 즉 기독교적인 영벌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소재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중문화 전반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좀비 문화는 기독교 신앙에 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독교 신앙과 문화가 아직 사회 전반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19세기와 20세기 초 서구에서는 좀비 문화가 지옥과 영벌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조금이나마 가치를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신론과 실존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좀비 문화, 언데드 문화는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볼 때 별다른 가치를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신앙에 반대되는 생각을 주입시키는 문제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영생이든 영벌이든 상관없이 은연중에 내세와 부활 신앙 자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준다는 점 때문에 문제시된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