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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5장 9절

주님의 산상설교에서 화평에 관한 부분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원수된 관계를 화해를 시켜서 화평하게 만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가 아니라, 모든 상황을 평화롭게 만드는 피스 메이커(Peace maker)이기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일곱째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절)”

1.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서로 불화된 관계에서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평화는 샬롬(שלום)입니다. 샬롬은 사회적 상황에서의 평화와 관련되고 있습니다. 억압과 굶주림과 같은 위협적 상황을 전제로 한 평화를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샬롬의 평화적 개념은 사회적으로 억압이 없거나 전쟁이 없는 것이기에, 매우 현실적인 성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당시 선지자들은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화목하게 만든다’에서 우리는 심리적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심리적 평화는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평온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평화는 개인의 심리적 평화이면서 문화적 평화로 부를 수 있습니다. 화목하게 만드는 것에서,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진정한 섬김과 사회적인 약자에게 봉사하는 평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의 평화처럼 지배와 종속관계에 근거한 평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허용되는 평화, 즉 참된 평화를 말합니다.

주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는 점이 웅변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 평화는 사람을 강제적으로 지배하여 반발심을 조장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를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평화는 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긍하여 평화를 누리는 그런 평화입니다. 이는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2. 평화롭게 하는 사람

평화롭게 한다는 것은, 평화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이 평화롭지 못해서인지, 평화롭게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평화는 인류가 가장 고대하는 주제이지만, 아직도 그 평화는 이룩되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개인의 차원에서 정치 집단에 이르기까지, 협력으로부터 전쟁에 이르는 전체적 행위 영역의 스펙트럼 속에 생존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가장 보편적인 협력의 극단이 평화의 상태이며, 가장 파괴적인 분쟁의 극단이 전쟁의 상태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제 ‘평화와 전쟁’의 현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인류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고, 전쟁으로 평화를 유지하여 ‘전쟁과 평화’는 이제 바꿀 수 없는 두 얼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실로 평화는 그 종착이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평화가 정착되면 전쟁은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평화는 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전쟁은 문명의 탄생 이전부터 인간이 끊임없이 겪어온 경험의 일부라는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알고 보면 세계의 역사는 큰 전쟁의 기록이라고 할 만 합니다.

평화가 절대적인 선(善)으로 간주되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전쟁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이 세상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매우 필요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이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평화롭게 하는 사람이 귀한 이유입니다.

3. 화해를 잘 시키는 사람

화해를 잘 시키는 사람이 있고, 불화하도록 만드는 사람, 싸움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해를 잘 시키는 사람은 문제의 근원을 해소하여 평화롭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화해하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평화학자로 꼽히는 노르웨이의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적극적인 평화의 의미에서 폭력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폭력에는 직접적인 것과 구조적인 것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쟁, 테러, 폭행이 직접적인 폭력이고, 빈곤, 억압, 인종차별, 사회적 불공정 등이 구조적인 폭력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갈퉁의 말대로 하면 폭력적 요소를 없애고 나서야 비로소 평화, 즉 화목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에게서 폭력이란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확실히 화해를 잘 시키는 사람은 어느 한쪽의 편을 일반적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든 무시하지 않고 기분을 풀어주는 기술을 가진 사람입니다. 불화된 부부관계를 화해시키는 상담치료사처럼 말입니다.

유태인의 지혜서라는 탈무드에는 “서로 싸우는 두 사람에게는 상황을 냉각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때 쌍방의 주장을 시인해 줌으로써 서로 냉정을 되찾고 서서히 화해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평화롭게 만드는 사람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화평하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평화롭게 만들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화해를 잘 시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청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