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진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북한에서는 다가오는 7월 27일을 전승절로 지킨다. 우리에게 이날은 정전협정일이다. 북한은 이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해마다 성대하게 치른다. 올해는 코로나 19 여파로 예년만은 못하겠지만 변함없이 전쟁노병들을 평양에 초청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치를 모양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탑’ 앞에서 김정은과의 기념사진 촬영이다. 전쟁노병들에게 있어 가장 영예로운 순간이고 자자손손 큰 자랑거리가 된다. 올해도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같은 행사의 최종 목적은 인민들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 발현수단이지만 전쟁노병들에 대한 실질적인 예우 측면도 있다. 북한은 그들을 조국의 금보다 귀중한 보배들로 떠받든다. 전쟁참전용사라는 긍지를 높여주기 위해 해마다 평양에 초청하여 전승절을 경축의 날로 보내며 국가적 차원의 연회를 베풀고 그들 품에 감사의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안겨준다. 이처럼, 전쟁노병들에 대한 존대 기풍이 사회 전반적으로 탄탄하게 자리잡혔다. 물론, 이들을 수령결사옹위의 화신들로 내세워 인민들로 하여금 충성경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전쟁 노병들을 존대하는 것이 사회적 풍토로 잘 조성되어있음도 맞는 사실이다.

북한은 6.25 전쟁 기간에만 533명의 공화국 영웅들을 배출해냈다. 그리고 저마다의 극적인 영웅 스토리들이 있다. 가공된 부분도 있지만, 후대들은 이들의 영웅 스토리를 들으며 조국애와 충성심이 배양된다. 북한에 최고의 전쟁영웅은 리수복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기를 거쳐오면서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전쟁영웅이다. 김일성 시기에는 리수복 영웅형이라고 불리던 호칭이 김정은 시기에는 리수복 영웅할아버지라 불리며 칭송을 받는다. 북한에 최고지도자들(김일성-김정일)의 동상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웅들의 동상들도 세워지기도 하는데, 리수복의 동상이 대표적이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교(리수복 순천화학공업대학교)도 있다. 올해, 북한 노동신문에 리수복에 대한 기사가 24회나 나왔다. 리수복은 전쟁 당시, 18세의 어린 무명용사였다. 북한은 그가 강원도 인제군 1211고지를 탈환하는데 있어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이 잘려나간 가운데도 몸으로 기어 올라가 폭탄으로 자폭하여 고지를 점령했다(1951.10.30.)고 선전하고 교육시키고 있다. 이밖에 방호산, 김기우, 리학문, 김군옥 등 많은 전쟁 영웅들이 내세워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6.25 하면, ‘잊혀진 전쟁’이라는 용어를 먼저 떠올린다. 사실, 청소년들에게는 잊혀진지 오래다. 10대에서 7명 중 1명만 그 시기를 맞췄다(중앙일보 6.24일자)는 것이 가히 충격적이지 않은가? 학교 교육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청년들에게도 잊혀지기는 마찬가지다. 20대에서 6.25 전쟁을 북한 책임으로 보는 이가 44%밖에 안된다는 통계다. 오래전부터 학교 교육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북한 어린이들은 희생된 전쟁영웅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또렷이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생존해있는 전쟁노병들에 대한 존경심도 매우 높다. 전승절에만 반짝하는 마음이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들에 대한 예우들이 다각도로 시행된다. 먼저, 그들의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져 준다.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일체 보장해준다. 질병시에는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사망시에는 ‘인민군렬사묘’에 안장해준다. 평양뿐만 아니라 각 도별로 인민군렬사묘를 꾸리고 있다. 이 같은 극진한 예우를 통해 전쟁노병들에 대한 존경심은 세대를 이어 날로 높아져 간다. 노동신문의 말을 그대로 빌려오면, “전쟁로병들에 대한 존대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도덕의리와 직결된 고결한 감정이며 후대들에게 있어서 말없는 교과서로, 거울로 된다.”(7.23일자)

아.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6.25 참전용사 중 국가유공자에 속하지 않은 이들이 다반수라고 한다. 또 보상금 및 수당이 월 1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반대로, 5.18 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최상급이다. 당사자에 대한 보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자녀들에게까지 엄청난 특혜를 주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 세상에 그들 자녀들에게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가해자인 국가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과 그들의 자손은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당시 사지를 넘나들었던 전쟁참전용사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이 정상적이라는 말인가.

얼마 전, 정부가 취한 조치들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전쟁참전용사들의 유해를 대통령의 행사에 맞추기 위해 하루 동안 비행기 안에 방치했다. 적의 총탄에 산화한 호국영령들 앞에 적국 (애)국가의 앞 소절을 버젓이 연주하기도 했다. 이런 기망과 모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살아있는 전쟁영웅에 대한 치욕도 끔찍했다. 여권은 서슴없이 친일파로 몰아붙이고 현충원 안장시 파묘법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결국, 전쟁영웅은 너무나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국가보훈처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되어 언제 파묘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우리들의 뇌리 속에 살아있는 전쟁영웅이 있는가. 과거 배웠던 육탄 10용사들에 대한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하다. 청년, 청소년들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6·25전쟁에 대한 기억들을 지우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북한과의 평화·우호적 관계 지향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며 김정은 정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둘러대겠지만 북한은 당당히 6.25 전쟁의 발발 원인을 남한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아주 거침없이 남한을 침략자로 몰아가며 교육시키고 있다.

“침략자가 전쟁의 불을 지른 6월 전쟁이 시작된 바로 그 6월에...” (노동신문 6.25일자)
“한 세대는 70년전 불타는 고지에서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전승을 안아온 세대라면...”

왜, 우리는 북한을 침략자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왜 역사를 굴절시키는가.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저자세로 나가는가. 이토록 국민들의 자존심이 짓밟혀도 된단 말인가. 그 어떤 이유로도 역사를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굴욕의 역사로 탈바꿈시켜서도 안 된다. 뒤틀어진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조국애를 고취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 방안들이 있겠지만 우리들의 전쟁영웅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