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복음 전도
두려움 없는 복음전도

존 레녹스 | 구지원 역 | 생명의말씀사 | 104쪽 | 6,000원

이 책의 부제처럼 전도는 ‘날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고, ‘선교적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은 비단 외국에 나가는 선교사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있든지 마땅히 가져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종말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과 영원한 화목을 이루라는 메시지만큼 희망적이고 절실한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명백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도의 또 다른 피할 수 없는 현실은 복음 전도가 두렵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 존 레녹스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기 위해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 알게 되었다. 노벨상 수상자와 두세 명의 은퇴한 교수가 학생이었던 자신을 연구실로 불러내, 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신에 대한 유치한 신앙’을 버리라고 압박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적 불구자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레녹스는 두려움을 잘 이겨냈다. 이겨냈을 뿐 아니라 옥스퍼드대학교의 뛰어난 수학과 명예교수가 되었고, 3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4-5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훌륭한 지식인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리처드 도킨스 및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대표적인 무신론자들과 공개 토론을 벌일 정도로 담대한 기독교 변증가가 되었다.

그 동안 국내 소개된 레녹스의 책은 주로 변증에 관한 전문적인 책이었지만, 그는 이 책 <두려움 없는 복음전도>를 통해 ‘변증학’에 대한 두 가지 오해를 갖지 말라고 권한다.

첫째로 ‘변증’이 헬라어로 ‘아폴로기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변증을 ‘사과’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둘째로 변증을 매우 지적인 활동으로 간주해 가장 똑똑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레녹스는 ‘변증’보다는 ‘설득력 있는 복음전도’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름받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독자들은 레녹스처럼 도킨스나 히친스 같은 지식인들과 견줄 만큼 뛰어난 지식을 쌓아야 복음을 두려움 없이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충분히 두려움을 이겨내고 설득력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것이 레녹스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골자다.

그러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레녹스는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아니라 거룩하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라고 권면한다. 사람에 대한 잘못된 두려움을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두려움으로 쫓아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다. 그러므로 선교적 삶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주의 영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존 레녹스
▲옥스포드 대학 수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존 레녹스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거대한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레녹스는 “그리스도인의 복음전도의 열쇠는 일대일 대화(19쪽)”라고 주장한다. 베드로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단지 복음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여, 상대방이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혼이 갈급해하고 목말라하는 것을 제대로 알 때 그것을 생명의 주와 연결할 수 있다.

그래서 레녹스는 질문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질문을 통해 일대일 대화를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지혜로운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궁금해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 그 소망을 채우시는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이 사용하신 방법은 최고의 예시이다.

갈수록 세상은 기독교에 적대적이다. 레녹스가 겪었던 것처럼 신앙은 유치한 것으로 취급받기 쉽고, 기독교 교리는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된 미신이라 비방을 받는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나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집요하게 묻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녹스는 그럴 때 정직이 생명이라고 조언한다.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다음에 만날 때 잘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괜히 아는 척을 하고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면 기독교의 온전한 진리를 도리어 우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약속을 잡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뒤, 온유하고 담대하게 설명하는 것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질문했든 악의적으로 질문했든, 상대방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더 유익하다.

또한 복음을 전할 때 편협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입만 열면 복음을 전하기보다, 상대방의 관심 분야를 잘 알고 그에 관한 대화를 흥미롭게 나누다 복음으로 화제를 옮기는 것이 더 지헤롭다. 언제든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면 화제를 옮겨 상대방에게 여지를 주는 것이 좋다.

레녹스의 이 조언은 복음전도가 긴급성을 가진 소명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신실하게 씨를 뿌리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레녹스는 또한 복음전도의 수단으로 성경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말과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는 씨,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를 소개하라고 권면한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다. 여러 주변 상식이나 기독교의 다양한 교리(가령 창조론, 종말론 등)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전도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이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시도하는 행위이다.

물론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대에게 복음전도는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기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은 교리나 사상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다. 그래서 레녹스는 성경을 함께 읽으며 그리스도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전도 방식을 추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전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복음과 일치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의 은혜를 충분히 경험하고 그 은혜 가운데 자라는 모습, 성령의 열매인 온유와 겸손과 자비를 옷 입고, 상대방은 존중하며, 악을 선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 말뿐 아니라 삶으로 충분히 상대방에게 설득력을 갖는 전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 모든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이 아닌가? 자신의 공덕과 노력으로 신의 기준에 도달하려 애쓰는 이들과 무능력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의롭다’, ‘온전하다’, ‘기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확실히 달라야 한다. 가지고 있는 소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요일 4:18)”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온전한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사랑받은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으니, 수고와 슬픔을 세상 사람들과 같이 겪는다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상은 두려움에 빠져 있다. 형벌이 있기 때문에, 막연한 공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세상에 들끓는 질병 앞에 소망을 가진 이들과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극명히 갈리는 것은 온전한 사랑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의 차이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소망을 가진 자로서, 온전한 사랑을 경험한 자로서, 세상에 담대히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주 되신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다. 레녹스의 이 책이 그 위대한 소명에 더욱 담대히 뛰어들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게 만드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