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서재에서 만난 이재영 목사는 “설교를 만들어내기 힘들어 자괴감도 들고 목회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아트설교연구원 대표 김도인 목사를 대신해 목회자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본문: 신명기 32장 7절


기억해야 할 것

SBS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요식업 대선배인 백종원 대표가 골목식당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방송에서는 1년 전 백종원 대표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받았던 충남서산에 있는 식당들을 긴급 점검하는 부분이 방영됐다.

긴급점검을 받은 식당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한 부류는 백종원 대표와의 약속을 지키고 가격도 올리지 않고 여전히 장사를 잘 하는 식당이었다.

또 한 부류는 백종원 대표에게 실망을 준 식당이었다. 이 식당은 예전의 맛을 잃어버리고 손님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그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처음 마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잘 된다 싶으면 그 속에 욕심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이 들어간다. 욕심이 들어가니 처음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잊어버렸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하나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다. 그러면서 만일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리시겠다고 말씀했다. 우리는 처음 마음, 처음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역사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

타임머신이 실제로 존재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역사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이키고 싶은 일이 많다.

아담과 하와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을 되돌리고 싶지 않겠는가? 다윗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밧세바를 취했던 것을 되돌리고 싶지 않겠는가? 가룟 유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예수님을 팔았던 것을 되돌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타임머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는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 개인의 역사든 나라의 역사든 인류의 역사든, 마찬가지다.

역사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역사를 굳이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역사를 단순히 ‘과거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과거 사실에 대한 기록을 알기 위한 것이라면, 역사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 단지 대입 시험에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기계적으로 암기하면 된다.

나는 역사를 싫어했다. 학교 다닐 때 역사 공부는 단지 역사 속에 일어난 사실과 연대를 암기하는 암기과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역사 강사인 설민석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가버린 숫자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 현재의 교훈을 얻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가 버린 숫자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유시민 씨는 <역사의 역사>라는 책에서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 엮어 만든 ‘이야기’다. 사실 없이 역사를 쓸 수도 없지만, 그저 사실을 기록하기만 한다 해서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의 기록’은 역사 서술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에 관한 문자로 쓴 이야기’다.”

E. H. 카도 역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는 대화가 있다.

역사를 거울삼아야 하는 이유

말씀의 제목을 ‘역사를 거울삼아야 한다’고 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단지 과거에 일어난 사실로 아는 것으로 그치면 역사는 우리의 거울이 될 수가 없다. 역사와 대화를 나눌 때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사실과 사건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 현재의 나를 볼 수 있다. 미래의 나를 준비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는 과거에 누군가는 고민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은 과거에 누군가는 겪었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 속에 인물이 나의 멘토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전 생애가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다. 역사는 그저 지나간 흔적이 아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발자취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스스로 나의 민낯을 볼 수가 없다. 거울을 통해서만 나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나의 민낯을 보았으면, 그 다음 하는 일이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나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역사를 가만히 보라. 역사는 반복이다. 반복되는 역사를 가만히 보면 내가 어디에 지금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세계 유적 시리아 아파메아 로마 역사 폐허 고고학 고대 Archaeology
▲고대 로마 시대 시리아 아파메아 유적. ⓒ픽사베이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거울로 삼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에도 이 부분을 조금 나눴다.

사람들은 역사가 힘 있는 사람의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권력에 의해, 돈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다. 일반 역사든 구속의 역사든 마찬가지다. 개인 역사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시간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처음이요 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시간의 끝도 하나님께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역사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움직여가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역사가운데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다.

역사를 기억하라

우리가 역사를 거울로 삼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모세의 노래 중 한 구절이다.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이 장차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과, 그로 인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의 메시지다.

따라서 백성들 듣기에 거북할 수도 있는 노래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씀한다. 모세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역사를 거울삼기 위해서 해야 할 일 두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첫째, 역사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역사를 거울삼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다 잊어버리면, 역사를 거울삼을 수 없다.

이스라엘에 가면 ‘야드바셈(YadVashem,기념물과 이름이라는 뜻)’이라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놀라운 것은 그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독일인들이 방문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방문자들은 그 잔혹한 장면들을 도저히 계속 볼 수 없어 도중에 나가고, 일부 사람만이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그 박물관을 돌아본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독일인들을 안내하는 유대인 가이드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복수하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다시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독일 사람들을 이미 용서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야드 바셈 박물관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Forgive but never forget!(용서하라, 그러나 결코 잊지는 말라)”

유대인들은 독일인들을 용서했지만, 홀로코스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를 거울로 삼아 다시 무릎 꿇지 않기 위해서다.

6.25 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5가지 기적

올해는 6.25 전쟁이 일어 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6.25 전쟁은 우리민족에게 아픈 역사다. 그런데 백석대학교 이상규 교수가 쓴 글을 보면서 6,25 전쟁은 아픈 역사이지만 기적의 역사라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상규 교수는 월드뷰 2020년 6월호에 ‘6.25 전쟁의 다섯 가지 기적’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상규 교수는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의 역사 가운데 대한민국이 지켜진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5가지 기적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 미국의 신속한 참전이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Harry Truman)이었다. 한미 간에 방위조약도 없었기 때문에, 미국은 참전할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군의 남침 보고를 받고 이틀 후인 6월 27일 성명을 발표하고 참전과 파병을 결정했다.

둘째, 유엔 상임이사국의 참전 결정이다. 6월 28일 유엔은 제2차 안보리를 소집하여 유엔 연합군을 결성하여 파병할 것을 결의했다. 이런 신속한 회의와 결정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안전보장이사회는 5개의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6년 이래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대만), 소련이 상임이사국이었고 이들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만일 북한 편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유엔 연합군 파병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날 소련 대표인 야코프 말리크(Yakov Alexandrovich Malik)는 회의에 불참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파병을 결의하게 된 것이다.

셋째, 인천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작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기획했다. 그러나 미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수뇌부는 인천으로의 상륙 시도는 성공률이 5천분의 1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10m에 이르는 조수 간만의 차도 상륙을 어렵게 하지만, 수로가 좁아 대규모 선단(船團)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성공률이 5천분의 1에 불과했으나, 작전은 성공했다. 작전성공으로 인해 9월 16일에는 인천을 탈환했고, 인천 지역에 주둔했던 북한군 2천여 명은 거의 멸절되었다. 다시 전쟁의 기세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넷째, 흥남부두 탈출이다. 흥남부두 탈출은 기적이었고 기적의 항해였다. 아마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본 분들은 이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흥남에서 마지막으로 북한 피난민을 싣고 나온 배는 미국 국적으로 길이 196m, 폭 20m에 불과한 7,600톤급 민간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였다.

미군 대령이 배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에게 이 화물선에 태울 수 있는 여유 정원이 얼마냐고 물었을 때, 12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배에 1만 4천명이 탑승했다. 그 중에서 아기와 어린아이가 4천명이었고, 부상자는 17명이었다. 항해 중 다섯 아이가 태어났다. 피난민들이 완전히 하선한 후 라루 선장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항해 중 5명 탄생, 사망자 없음. 14,005명 무사히 상륙.”

다섯째, 한미방위조약의 체결이다. 조약이란 상호수혜 가능성이나 혹은 잠재적 가능성이 있을 때 체결되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방위에 기여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 모든 것을 배제하고 1953년 10월1일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었다. 이상규 교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기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것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 이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 끊임없이 하신 말씀이 있다. 신명기 15:15절 말씀이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량하시고 출애굽 한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아픈 역사도 기억하고 그 종살이에서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신 것도 기억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얼마동안을 노예 생활을 했는가? 무려 430년 동안 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 동안 압제를 당한 적이 있다. 430년 동안 종살이 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누가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해보았겠는가? 노예로 살던 민족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울 것을 상상이라도 해보았겠는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출애굽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사건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저와 여러분도 출애굽 사건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에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신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있으라.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겨내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역사를 거울삼기 위해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보고 생각하라

둘째, 역사를 거울로 삼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역사를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면서 생각해야 한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지난 3,000년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 뿐이다.”

오랜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역사를 바라보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사기의 역사는 반복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범죄 하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방민족을 통해서 징벌한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회개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셔서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 그 이후에 사사가 죽고 나면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 한다. 이것이 사사기의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사사기의 역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 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백성이라 여겨지지 않는가? 자신의 선조들이 그렇게 암울한 반복의 역사를 살았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순환의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는 이들이 역사를 보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생각이 없는 왕들

사사 시대를 지나면 왕정 시대가 도래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이었다. 그 대를 이어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솔로몬 왕 이후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나누어진다.

남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었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 솔로몬의 손에서 열 지파를 빼앗아 너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여로보암이 다윗이 행한 길을 따라갔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잘못 갔던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하나님께서 왜 솔로몬에게 열 지파를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준 것인가? 이방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그 전철을 그대로 따라갔다. 여로보암은 앞선 솔로몬의 역사를 보고도 생각이 없이 그대로 따라 간 것이다.

여로보암 이후 남북의 왕들의 평가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 부류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는 평가다. 또한 한 부류는 다윗의 길을 따랐다는 평가다.

남북의 왕들은 다윗의 삶의 결과와 여로보암의 삶의 결과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다윗의 길이 아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다. 역사를 보고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서 후손들이 해야 할 일

역사를 보면서 후손들이 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좋은 것은 본받고 이어가야 한다. 좋은 전통이나 좋은 정책들은 이어가야 한다.

둘째,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 곧 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된다. 잘못된 역사의 결과를 보고도 그 뒤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생각이 없이 사는 모습이다.

우리는 역사를 거울로 삼기 위해서 역사를 바라보면서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고 역사의 속에 인물들이 갔던 바른 길을 가야지 잘못된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성경도 역사다

성경도 역사다.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늘 비추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고 하는 것은 행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개인의 역사든 나라의 역사든 인류의 역사든, 역사를 거울삼아야 한다. 성경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나의 민낯을 보고 현재의 나의 위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방향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거울로 삼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기억해야 하고 역사를 보고 생각해야 한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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