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 한성수 엮음 | 메이븐 | 300쪽 | 16,000원

나도 남도 기쁜 성장, 배움 통해 이뤄진다
가르친 대로 배우지 않고, 본 대로 배운다
몰래카메라보다 더 무서운 게 우리 자녀들

사람이 누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성장의 기쁨’이다. 성장은 자신에게도 기쁨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배움을 통해 이루어진다.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읽고 쓰는 법과 셈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상식을 배운다. 이 배움 들을 통해 성장해간다. 그런데 사람은 가르친 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본 대로 배운다.

신광철의 <몸에 새긴 인생지도: 몸통편>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은 가르친 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본 대로 먼저 배운다. 세상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느껴서 알게 된다. 결국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과 배우는 사람의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배우는 사람이 선택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착하게 살라고 하면서 비행을 저지르면, 아이들은 언행이 다르게 사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한 행동을 그대로 배운다.

미국의 샐시비어 박사는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따라 배운다>에서 이 부분을 강조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몰래카메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아이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모델입니다.”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 나무에게서 배웠다
나무 살리는 일, 고통받는 생명 보살피는 일
내가 나무 돌본 게 아니라, 나무가 나를 살게

배움은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스승이 된다. 특별히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무의사 우종영 씨다.

우종영 씨는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가 나무라고 하면서,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나무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로, 나무에게 배운 인생을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 실었다.

저자는 나무 병원 ‘푸른공간’을 30년 전에 설립해 지금까지 아픈 나무를 돌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도심의 아픈 나무부터, 몇백 년을 인간과 함께했지만 병충해와 자연재해로 상태가 나빠진 천연기념물 고목까지, 그의 손을 거쳐 되살아난 나무만 해도 수천 그루다.

어떻게 돌보는 나무마다 그렇게 잘 살려 내느냐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무를 살리는 일은 위태롭던 그의 삶을 붙들어 준 나무에 대한 보은이자 과거의 자신이 그랬듯 시련 앞에 고통 받는 생명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그는 곰곰이 되짚어 보니 내가 나무를 돌본 게 아니라, 실은 나무가 오히려 나를 살게 했다고 말을 한다.
또한 저자는 나무가 주는 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무는 세상 그 무엇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작은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팍팍한 삶에 잠시나마 숨을 고를 여유를 주고, 세상사에 휘둘려 조급해진 마음을 지금 이대로 괜찮다며 다독여 줍니다.”

인생의 어려운 질문에 부딪칠 때마다 나무에게서 해답을 얻었다는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인 나무의 깊은 지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

저자가 나무를 통해 배운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1.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나무는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명체다. 움직일 수 없는 탓에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생존하려면 주변의 변화에도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나무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나무의 선택에는 주저함이 없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양 곧바로 선택을 단행한다. 가만히 보면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천수천형(千樹千形)이란 천 가지 나무에 천 가지 모양이 있다는 뜻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유일무이한 모양새는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오늘’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계산하느라 오늘을 망치고, 스스로를 죽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2. 일단 잘 멈추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마치 동맹을 맺듯 ‘나도 그만 자랄테니, 너도 그만 자라렴’하고 함께 성장을 멈추고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결국 나무에게 있어 멈춤은 자신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주변 나무들과 맺은 공존의 계약인 셈이다.

인생은 늘 마음 같지 않게 움직인다.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언제부터인 모르게 방향이 틀어져 있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럴 때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숨을 돌려야 한다. 나를 점검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엉뚱한 곳에 이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3. 살다 보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생존을 위한 나무에게, 버팀은 한 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피할 길이 없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 위협도 고스란히 감내한다. 어떤 재난이 와도 도망칠 재간이 없기에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구책을 최대한 동원해 그 시간들을 버텨내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그러니 가시투성이 흉한 모습으로 변하면서까지 버틸 필요가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굴욕적인 겉모습까지 감내하며 끝까지 버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이 아니므로 오히려 칭찬해줘야 마땅하다.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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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은 씨앗처럼 용감해져야 한다.

씨앗 안에는 오래도록 씨앗으로 존재하려는 현재 지향성과, 껍질을 벗고 나무로 자라려는 미래의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힘과, 언제든지 싹을 틔우려는 상반된 힘이 씨앗 안에서 갈등하고 타협한다는 증거다.

긴 기다림 끝에 싹을 띄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씨앗은 결국 나무가 되지 못하고 그냥 생을 마감한다. 한 예로 자작나무의 경우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씨앗에서 싹이 트는 발아율은 고작 10% 남짓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씨앗만이 성목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싹을 틔우는 씨앗의 기적은 그저 맹목적인 기다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용기 있게 하늘을 향해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기다림은 결국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

5. 나이테에서 배우는, 기록하는 삶에 대하여

나무는 성장하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마치 자서전처럼 나이테에 고스란히 남긴다. 나이테가 간격이 넓고 연한 색이면 당시 환경이 풍족했다는 뜻이고, 반대로 나이테 간격이 좁고 색이 짙으면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시련을 겪었다는 뜻이다.

또한 세포분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봄에는 나이테에 밝은 자국이 남지만 봄 이후에는 더디게 자라기 때문에 어두운 자국이 남는다. 기후조건이나 영향 상태가 안 좋으면 나이테의 간격이 좁아진다. 그만큼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치렀다는 증거인 셈이다.

나무가 지난날을 고스란히 새긴 채 죽을 때까지 푸르게 살아가듯, 사람 역시 살면서 몸으로 겪어낸 모든 경험을 아름다운 흔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경험이든 그것들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어떤 날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다. 한 걸음을 내딛고, 한마디 말하는 데도 조금은 신중해지는 이유다.

무인도에 살게 되면 데려가고픈 ‘붉나무’
소금 귀한 시절, 열매 말렸다 대신 쓰기도
나무는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저자는 무인도에 살게 된다면 데려가고 싶은 나무가 붉나무라고 한다. 붉나무가 수형이 아름답거나, 목재로 쓰임새가 유용하거나, 꽃이 유난히 예쁘거나, 향이 매혹적이어서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나 쓰임새만 놓고 보자면 붉나무는 그다지 매력 없는 나무다.

붉나무는 야성적인 나무다. 도시 어디든 아주 좁은 틈만 있으면 대체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어느새 고개를 내민다. 하천 제방이나 도로 비탈면, 빈집의 마당, 오래된 보도블록 사이, 심지어는 축대의 빈틈까지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고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잘도 자란다. 그래서 저자는 붉나무를 ‘녹색 게릴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붉나무에 관한 알려지지 않는 비밀이 하나 있다. 아무 데서나 막자란다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예전에 붉나무는 천금목(千金木)이라는 귀한 이름으로 불렸다. 천금을 주어야 할 만큼 아주 귀한 나무라는 뜻이다. 그 비밀은 열매에 있다. 소금이 귀하던 시절 붉나무의 열매는 잘 말려뒀다가 소금 대신 쓰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아서 ‘내가 이 모양인 건 다 세상 탓이고 빌어먹을 환경 탓이고 남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녹색 게릴라 붉나무를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무를 보면, 나무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인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물을 스승으로 삼을 때, 배울 수 있다
사랑은 관심, 관심 가지면 만물들 말 걸어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그 속에 담아 놓으셨다고 말씀한다. 이는 모든 만물 속에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만물들을 나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동물도 식물도 하늘도 땅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스승으로 삼을 때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주신다. 만물을 통해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는 것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관심을 가질 때 만물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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